[뉴스워커_박경희 기자] 철강·알루미늄 등에 고율의 관세를 부과하며 유럽과 무역전쟁을 벌이고 있는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번에는 방위비로 유럽을 압박하고 있다. 또한 15일(현지시각) 스코틀랜드에서 가진 CBS와의 인터뷰에서는 유럽연합을 ‘통상에서의 적’이라고 표현하면서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미국으로부터 통상압박을 받는 중국과 유럽이 미국에 대항하기 위한 연합전선 구축에 나서고 있다. 국제질서는 미국과 나머지 국가로 재편되는 모양새다.

▲ 그래픽 뉴스워커 황성환 그래픽 담당

◆ 나토 정상회의에서 유럽에 방위비 GDP 대비 4% 요구

지난 11일과 12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정상회의에 참석한 트럼프 대통령은 회원국을 상대로 방위비 분담금 증액을 요구하고 나섰다. 29개 회원국으로 구성된 나토는 제2차 세계대전 직후인 1949년 옛 소련을 중심으로 한 공산권의 위협에 맞서기 위해 결성됐으며, 방위비의 경우 2014년 정상회의에서 GDP의 2% 이상을 국방비로 지출하기로 합의한 부분이다. 다만 이 기준에 못 미치는 국가는 2024년까지 달성하기로 합의한 바 있다.

지난해 GDP의 2% 이상을 방위비로 쓴 나라는 미국이 3.6%로 가장 많고, 그리스 2.2%, 에스토니아 2.1%, 영국 2.1%, 폴란드 2.0% 5개 나라다. 반면 독일은 1.2%, 프랑스는 1.8%에 그치고 있어 트럼프 대통령의 불만을 사게 된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미국은 냉전이 끝난 뒤에도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등에서 전쟁을 치르면서 국방비를 많이 지출하고 있는 편이고, 유럽국가들은 EU를 통해 주변국간 경제적 통합을 이루면서 전쟁 위험이 낮아져 국방비 지출을 줄인 것이다.

이에 트럼프 대통령은 경제적 규모만큼 방위비를 지출하라고 요구하고 나선 것인데, 이번 나토 정상회의에서는 GDP 대비 4%까지 늘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 트럼프의 의도는?

트럼프가 유럽연합에 국방비 증액을 요구하고 나서자 그의 의도에 대한 추측이 분분하다. 일각에서는 안보와 무역을 연계해 유럽을 압박하려는 의도로 보고 있다. 유럽을 압박해 미국 무기를 더 많이 판매하려는 의도라는 것이다. 이번 나토에서 영국과 캐나다는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 파견하는 재건 임무 병력을 늘리겠다고 했다. 또 나토 정상들은 유사시 30일 안에 30개 기계화 대대와 30개 비행편대, 전함 30척을 배치하는 체제를 2020년까지 갖춘다는 ‘30-30-30-30’ 정책도 추진하기로 했다. 이러한 성과가 있었기 때문인지 트럼프 대통령은 정상회의가 끝난 뒤 “내가 이겼다”고 기자회견을 했다. 더 나아가 “우리는 오늘 엄청난 진전을 이뤘다. 모두가 그들의 국방비를 증액하기로 합의했다”고도 말했다. 그러나 일부 회원국들은 기존 국방비 지출 증액 계획이 없다고 밝히면서 트럼프 대통령만의 일방통행임을 보여줬다.

한편, 뉴욕타임즈는 이러한 트럼프의 일련에 행보에 대해 유럽을 분열시킨 후 정복하려는 의도가 있다고 분석했다. “나토와 EU의 테두리에 있는 유럽 각국의 결속을 약화시키고, 나아가 중국이나 러시아가 하려는 것처럼 경제력과 군사력을 행사해 개별 국가들과 관계를 맺겠다는 의도”라고 보도했다. 같은 입장을 가진 프랑스 정치분석가 프랑수아 에스부르는 “유럽인들도 트럼프가 유럽의 다국적 질서를 해체하기 원한다는 것을 깨닫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은 영국이 EU와 완전히 결별해야 한다는 입장을 피력해왔고, 나토 정상회의 폐막 직후 영국으로 가 테리사 메이 총리와 정상회담을 가진 트럼프 대통령은 "영국이 EU를 떠난 뒤 대규모의 영미 자유무역협정을 추진키로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또한 15일(현지시각) 스코틀랜드에서 가진 CBS와 가진 인터뷰에서 영국에 “EU를 소송하라”고 제안하고, EU는 ‘통상의 적’이라고 표현했다. 또한 이 인터뷰 자리에서 ‘미국 최대의 누구냐’는 질문에 트럼프 대통령은 “우리는 많은 적이 있다고 생각한다. EU가 통상에서 우리에게 하는 것을 보면 적”이라고 말했고, 이어 “러시아는 어떤 면에 적이다. 중국은 경제적으로 적”이라고 언급했다.

◆ EU- 중국과 손잡을 듯

현재 미국으로부터 가장 많은 압박을 받고 있는 나라는 트럼프가 ‘적’으로 규정한 중국과 EU다. 때문에 중국은 미국이 무역전쟁을 시작하면서 EU와 연합하기를 원했지만 EU는 그간 일정 선을 긋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16일과 17일 베이징에서 열리는 중국-EU 연례 정상회담을 앞두고 중국은 EU에 ‘반(反) 트럼프’ 전선을 구축하자는 제안을 했다. 로이터 통신과 CNBC뉴스 등도 “중국이 오는 16~17일 베이징에서 열리는 중국-EU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무역정책을 비난하는 공동선언을 낼 것을 요청하고 나섰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그러나 EU는 중국의 제안을 거부할 뜻을 표명했다. EU의 한 외교관은 “중국은 EU와 함께 미국에 맞서기를 원하고 있다. 우리는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한 것이다.

EU는 중국이 시장을 개방하겠다고 약속한 것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을 갖고 있는 데다 중국이 동유럽에서의 경제적 영향력을 끼치면서 연합을 분열시키려 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이 유럽을 다각도로 압박하고 있는 상황에 직면하자, 유럽 일각에서는 EU-중국 관계가 글로벌 무역의 방벽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줄 수 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16일 오늘은 트럼프 대통령이 러시아 푸틴 대통령과 정상회의를 하고, 중국과 EU은 연례 정상회의를 하는 중요한 날이다. 정상회의 결과에 따라 국제질서가 새롭게 재편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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