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워커_박경희 기자] 미국의 대(對)이란 제재일(다음달 6일)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벌써부터 제재 위력이 나타나고 있는 모양새다. 지난 주 비공식 외환시장에서 이란의 리알화 환율은 28일(현지시각) 1달러당 9만7500리알에서 29일에는 10만8500~11만6000리알로 치솟았다. 하루 만에 환율이 13.4% 치솟으면서 통화가치도 급락했다.

11월에는 달러화 자금줄인 원유수출도 막을 예정이어서 리알화 환율은 지금보다 더 오를 가능성이 크다. 이러한 이유로 올해 이란의 경제 성장률은 1.8%에 그칠 것으로 예상되고 있으며, 미국과 이란이 갈등이 심화돼 군사적 충돌까지 갈 경우 오일쇼크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다만 한 가지 다행인 것은 러시아가 OPEC와의 감산합의를 깨고 더 많은 석유를 생산할 것으로 보인다.

▲ 뉴스워커_황성환 그래픽 담당

◆ 미국-EU 대립으로 번지는 이란 핵합의

달러화 대비 이란 리알화 환율은 지속적인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란 핵합의를 탈퇴를 선언한 5월 8일 이후 74% 상승한 셈이다. 또 올해 초와 비교하면 158%나 상승했다.

문제는 오는 11월부터 원유·천연가스 수출 제재도 예고하고 있어서 이란 경제가 상당한 타격을 입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미국과 유럽연합(EU)이 동시에 제재를 가했던 2012년 이란의 가치는 한 달여 만에 3분의 1로 폭락했고, 당시 미국이 이란산 원유 수출을 제재하면서 이란 경제가 급격하게 악화된 바 있다.

그러나 그 때와는 상황이 좀 다르다. 우선 유럽이 미국에 동참하지 않고 있다. 미국은 이란과 거래하는 유럽기업을 제재하는 세컨더리 보이콧 적용 의지를 밝혔고, 미국은 이란에서 활동 중인 유럽기업에 대한 제재를 면제해 달라는 유럽국가들의 요청도 거절했다. 그러자 프랑스 영국, 독일 정부가 이란 핵합의를 유지시키기 위해 미 달러화에 독립적인 금융채널을 모색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유럽 중앙은행들이 유로화·파운드화 또는 다른 통화로 거래되는 이란 중앙은행 계좌를 활성화하거나, 수년간 휴면상태였던 계좌들을 재가동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이다. 이를 통해 이란이 쉽게 원유수출 수익을 자국으로 보내게 하거나 이란 자동차 산업에 필요한 예비 부품과 같은 중요한 제품을 유럽에서 살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이에 미국 공화당의원들은 유럽 주요 국가들에 편지를 보내 “우리는 유럽 국가들이 미국의 제재에 따를 것을 요청하며, 미국의 제재 결정을 회피하거나 훼손하려할 경우에는 심각한 결과를 낳을 것을 경고”한다고 위협했다.

◆ 미, 아랍판 나토(NATO), ‘중동전략동맹(MESA)’ 설립할 듯

미국이 이란 핵협정에 탈퇴하면서 미국과 이란은 말 폭탄을 던지며 서로 위협하는 양상을 띠고 있다. 이란의 하산 로하니 대통령은 지난 22일 자국 외교관들을 대상으로 한 연설에서 미국을 겨냥해 “사자의 꼬리를 갖고 놀지 말라, 그건 후회를 가져 올 뿐”, “이란과의 평화는 모든 최선의 평화가 될 것이며, 이란과의 전쟁은 모든 전쟁의 어머니 같은 게 될 것임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이란 정부는 “현재 많은 해협의 안전을 보장하고 있으며 봉쇄할 수 있는 해협도 많다”면서 미국이 이란의 원유 수출을 막으면 호르무즈해협 봉쇄 카드를 꺼내겠다고 위협했다.

전 세계 바닷길로 유통되는 원유의 3분의 1이 이곳을 지나기 때문에 호르무즈 해협이 막히면 세계 원유 수급에 차질이 불가피해진다. 따라서 이란은 미국과 갈등을 빚을 때마다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하겠다고 협박하곤 했다. 물론 실행된 적은 없다.

트럼프 대통령도 이를 맞받아쳤고, 전쟁도 불사할 듯 서로를 위협하고 나섰다. 미국은 더 나아가 이란을 견제하기 위한 새로운 정치·안보 동맹인 이른바 ‘아랍판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설립에 나섰다. 로이터 통신이 28일(현지시각) 보도한 바에 따르면 미 백악관이 걸프협력회의(GCC) 6개 회원국 및 이집트·요르단과 함께 ‘중동전략동맹(MESA)’이란 이름의 기구를 만드는 방안을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사우디아라비아와 쿠웨이트, 아랍에미리트(UAE), 카타르, 오만, 바레인 등 6개 나라가 참여하고 있는 GCC는 오는 10월 11일 ~13일 워싱턴에서 이와 관련된 논의를 위한 정상회의가 열릴 전망이라는 것이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관계자는 “MESA는 이란의 공격과 테러, 극단주의 대한 방어벽이 되고, 중동의 안정을 가져올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렇듯 이란 핵협정을 두고 미국과의 관계에 따라 서로 대립적인 양상을 띠기도 하고, 새로운 국제 질서가 짜여지고 있다.

◆ 국제유가는 어떻게 움직이나…4주 연속 최고치 갱신

문제는 국가유가다. 지난 주간 우리나라 전국 평균 휘발유 가격이 4주째 상승해 연중 최고치를 경신하며, 9주째 1600원대를 유지하고 있다. 이는 미국의 원유 및 휘발유 재고 감소뿐만 아니라 이란의 지원을 받는 예맨의 루티 반군이 사우디의 원유 소송로인 바브알만다브해협에서 사우디 유조선 두 척을 공격하는 바람에 이곳을 통한 원유 수송을 잠정 중단해 국제유가의 상승세가 이어졌다. 2년 전만 해도 배럴당 25달러대였던 유가가 어느새 60달러대 후반에서 70달러 대를 바라보는 상황에 이른 것이다.

석유애널리스트이자 에너지 헤지펀드 어켄캐피털의 파트너 존 킬더프는 이란의 석유 금수가 시작되면 유가는 배럴당 90달러대 이를 것이고, 미국과 이란의 군사적 충돌로 호르무즈해협이 봉쇄되면 유가가 배럴당 200달러까지 치솟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다만 다행인 것은 러시아가 사우디아라비아 등 석유수출국기구(OPEC)와 합의한 증산규모보다 더 많은 석유생산을 예고하면서 OPEC와 러시아 등 비 OPEC 산유국들이 맺었던 감산 체제가 사실상 폐기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이란 입장에서는 호르무즈 해협 봉쇄 협박이 무의미해지기 때문에 경제적으로 더욱 압박 받을 것으로 보인다.

저작권자 © 뉴스워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