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워커_박경희 기자] 우리나라 8월 첫째주 휘발유 평균가가 리터당 1,614원으로 3년 8개월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미국의 이란 제재 여파가 컸던 것인데, 연말에는 배럴당 90달러까지 오를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미국의 대이란 제재에 유럽과 중국, 인도 등이 동참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히고 있기 때문에 국제유가 급등 가능성은 크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예고한대로 지난 7일(현지시각) 대이란 제재를 시작했다. 2016년 1월 ‘이란 핵합의(JCPOA)’를 이행하면서 제재를 완화한 지 2년 7개월만으로, 이번 제재는 세컨더리 보이콧(제3자 제재) 성격이 짙다. 즉 이란 정부의 달러화 구매, 이란 리알화 관련 거래, 이란 국채 발행 관련 활동, 이란의 금·귀금속 거래, 흑연·알루미늄·철·석탄·소프트웨어·자동차 거래 등이 제재 대상이다. 이는 글로벌 기축 통화인 달러화 거래를 막아 이란 정권의 돈줄을 막겠다는 의도다. 2차 제재는 오는 11월 5일부터 실시되며, 원유수출 차단이 목적이다. 즉, 이란의 석유제품 거래, 이란의 항만 운영·에너지·선박·조선 거래, 이란중앙은행과의 거래 금지가 주요 제재 내용이다. 이는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직접 밝힌 대로 지금까지 부과된 제재 중 가장 강력한 제재이다.

▲ 뉴스워커_황성환 그래픽 담당

◆ 협정국들 동참하지 않겠다는 의사 밝혀..그러나 이란 내에서는 제재 효과 이미 나타나

미국의 이번 대이란 제재는 세컨더리보이콧 성격을 띠고 있지만 유럽을 비롯한 많은 국가들이 미국의 핵합의 파기에 비판해왔던 것처럼 이란 제재에 동참하지 않겠다는 뜻을 보이고 있다. 유럽연합(EU)은 미국의 대이란 제재에 맞춰 유럽 기업들을 보호할 ‘대항입법’을 발효한다고 선언했다. 자국법에서 허용되는 사항을 외국법 또는 외국 정부가 금지할 경우 외국법 또는 외국 정부의 명령을 준수하는 걸 금지하는 것이다.

중국과 러시아도 오히려 수입 규모를 늘릴 계획인 것으로 나타났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란 원유 최대 수입국인 중국이 오히려 수입 규모를 늘릴 계획을 갖고 있다고 미국 관료의 말을 인용해 보도한 것이다. 터키도 이란으로부터 천연가스 수입을 계속하겠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이미 이란 내에서는 제재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 우선 이란의 리알화 가치가 폭락하고 있다. 여기에 트럼프 대통령이 이란 제재가 재개된 7일 트위터를 통해 “이란과 사업하는 어느 누구도 미국과는 사업을 하지 못하게 될 것”이라며 이란과 거래하거나 협력하는 유럽 기업들을 미국 시장에서 쫒아내겠다는 협박을 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앨러스테어 버트 영국 외무부 차관은 BBC 방송 인터뷰를 통해 “기업들이 이란에서 계속 사업할지 말지는 ‘상업적인 결정’이라며 트럼프의 결정과 엄포에 비난의 목소리를 높였다.

이러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유럽 기업들은 이미 이란에서의 활동을 중단하겠다는 의사를 밝히고 있다. 우선 이란에서 가스전 개발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던 프랑스 에너지 업체 ‘토탈’과 독일 지멘스, 제너럴 일렉트릭(GE)는 지난 5월 이미 사업 철수 의사와 신규 거래 중단을 밝힌 바 있다.

여기에 독일의 자동차 제조업체인 다임러는 이란 제재가 시작되자 “적용되는 제재에 따라 이미 제한적이기는 하지만 이란에서의 활동을 중단하겠다”고 말했다. 독일 상공회의소연합의 마릔 반슬레벤 회장도 미국의 압력으로 합법적인 은행 채널이 붕괴될 것이라는 우려 속에서 독일의 기업들이 이미 이란에서 철수 중이라고 말했다. 또 이란에 100여대의 항공기를 190달러에 공급하기로 했던 에어버스는 계약을 포기할 전망이고, 보잉은 이란과 200억 달러 규모의 판매 계약을 계획하고 있었지만 지난 6월에 이를 포기한다고 밝혔다. 유럽의 금융기관들은 미국의 압박으로 이란 제재에 동참하는 분위기다. 파이낸셜타임스에 따르면 지금까지 유럽연합(EU)의 토탈, 푸조, 르노, 에어버스, 알스톰, 지멘스 등 50여개 기업이 이란과의 거래 중단 의사를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 국제 유가 급등하지 않을 수도

미국의 대이란 제재가 시작되면서 국제유가가 들썩이고 있어 한국도 간접적인 피해국가라고 볼 수 있다. 일단 폭염으로 식탁물가가 고공행진을 하고 있는데다 유가도 상승세를 보이고 있어 앞으로 소비 위축, 기업의 생산비용 증가 등의 피해가 있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현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국제 유가가 10% 오르면 석유제품 제조원가는 7.5%, 반도체, 전차, 자동차 등의 산업도 0.1~0.4%의 원가 상승 부담이 있다고 분석했다.

일각에서는 미국의 이란 제재에 따라 국제유가가 배럴당 90달러까지 오를 것이라는 전망을 하고 있다. 하지만 중국, 유럽, 인도 등 이란의 원유 수출 대상국이 제재에 동참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히고 있기 때문에 미국의 이란 원유수출 제재로 인한 국제유가 급등 가능성은 제한적일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프랑스, 독일, 영국의 경우만 해도 미국의 재재 대상이 될 수 있는 기업을 대신해 정부가 직접 이란산 원유를 수입하는 방법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진 상황이다. 중국의 경우, 중국 관영 영자 매체 글로벌타임스의 7일자 보도에 따르면 이란과의 거래에서 위안화 사용을 확대해 미국의 제재를 우회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렇게 중국, 유럽 등이 미국의 대이란 제재에 적극 동참하고 있지는 않지만, 향후 글로벌 경제가 어떻게 흘러갈지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안갯속 상황인 것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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