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대통령이 지난 10일 터키 철강과 알루미늄 관세를 기존보다 2배 높였다. 이로 인해 철강 관세는 50%, 알루미늄 관세는 20%가 됐다. 그러자 이날 달러 대비 터키 리라화 가치는 장중 18% 넘게 추락하다가 14% 하락으로 마감됐다.

여기에 주말이 이어지는 동안 아시아 외환 시장에서 10% 가량 추가 하락하면서 올 들어 리라화 가치는 40% 넘게 떨어졌다. 이로 인해 외화부채가 많은 터키 은행·기업들이 디폴트(채무불이행)에 처할 위험에 놓였고, 이는 다른 신흥국과 유럽 은행권 주가의 하락 원인이 되는 등 글로벌 경제의 불안요인이 되고 있다.

▲ 뉴스워커_황성환 그래픽 담당

미국인 목사 석방 문제가 사태의 원인

트럼프 대통령이 터키 철강과 알루미늄에 대한 관세를 2배 올리겠다고 한 표면적인 이유는 터키에 억류돼 있는 미국인 목사 석방문제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7월 18일 트위터를 통해 “무고한 신앙인이 장기간 억류돼 있다. 즉각 석방하지 않으면 터키에 대규모 제재를 가하겠다”고 엄포를 놨다. 이에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은 지난 1일 기자회견을 통해 “물러서지 않겠다. 미국의 위협적인 언사를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응수하자 지난 10일 결국 관세 부과에 나섰고 리라화가 폭락하는 사태까지 이어졌다.

에르도안 대통령이 미국인 목사 문제에 강하게 대응하는 이유는 자신의 정권과 긴밀하게 연관돼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문제의 목사는 1993년부터 터키에서 선교활동을 해 온 앤드루 브런스(50)으로, 2016년 10월에 일어났던 에르도안 대통령에 대한 군부 쿠데타를 도왔다는 이유로 테러조직 지원 및 간첩죄로 터키 내에서 가택연금 및 출국금지 상태에 놓여 있다.

당시 실패한 쿠데타에 연루된 교사, 정치인, 기자 등 수 만 명이 그에 대한 보복으로 체포된 상태이기도 하다. 미국은 브런슨 목사에 대해 “터키 정부의 불공정한 구금의 희생자일 뿐”이라며 지속적인 석방을 요구했고, 지난 7월에는 트럼프 대통령이 트위터를 통해 경고를 했던 것이다. 그럼에도 터키 정부가 미국의 요구를 수용하지 않자, 지난 1일 터키의 법무 및 내무장관 등 2명에게 금융 제재를 가했다. 이에 에르도안 대통령도 “우리도 미국 장관들의 터키 내 자산을 동결하겠다”며 맞섰고, 트럼프 대통령은 철강·알루미늄 관세를 2배 올리는 조치에 이르렀다.

미국·터키의 이면적 갈등은 ‘중동 안보’

미국과 터키는 극단주의 이슬람국자(IS) 격퇴에 함께했다. 그러면서도 터키는 미국이 IS 격퇴를 위해 시리아 쿠르드족을 지원하는 것을 반대해왔다. 시리아 쿠르드족이 터키 반단체인 쿠르드노동자당과 연관돼 있다는 것 때문이다.

이로 인해 터키는 미국을 배제한 채 러시아·이란과 3국 정상회의를 하는 등 시리아 내전에 대해 독자적으로 해법을 찾는가 하면 미국이 제재를 가하고 있는 이란과도 물밑 교역을 지속하는 등 미국을 거슬리게 했던 것이다. 미국은 현재 이란 제재와 관련해 터키가 어겼다는 이유로 터키 국영은행 ‘할크 방크’의 메흐메트 하칸 아틸라 부사장에 대한 ‘이란 제재법 위반 혐의’ 재판도 벌이고 있다. 

터키 경제는 이미 악화된 상태

미국이 터키에 철강·알루미늄 관세를 2배로 물리게 된 배경에는 그동안 얽혀 있던 갈등 때문이지만, 터키 리라화 가치가 폭락하게 된 것은 이미 터키 경제가 악화일로에 있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2016년 쿠데타 사태 이후 에르도안 정부의 계엄령 실시로 외국 자본유출이 계속되면서 리라화가 폭락하고, 물가는 급등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터키의 부채가 많다는 점이다. 백악관 케빈 하셋 경제자문의원회(CEA) 위원장은 13일 MSNBC에서 “터키산 철강 관세를 인상하는 조치는 터키 국내총생산(GDP)에 작은 일부분에 불과하다”며 “터키 통화가치가 40% 급락한 것은 터키 경제의 펀더멘털이 제대로 안 돌아가고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터키는 최근 빠르게 성장한 국가 중 하나다. 지난해에는 중국과 인도의 성장률보다 앞섰고, 올해도 2분기 GDP는 7.22%나 증가했다. 그러나 터키의 이러한 성장세는 외화부채에 따른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세계 중앙은행이 경제 부양을 위해 투자하는 동안 터키의 은행과 기업들은 미국 달러화 표시 부채를 늘렸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터키의 부채는 GDP 대비 50%를 넘어섰다. 이중 25%는 올해 안에 상환해야 하는 단기부채인데, 리라화가 폭락해 터키 은행과 기업들 대거 디폴트 위험에 놓이게 됐다. 도이체방크는 터키 공식 발표와는 달리 터키 외화부채가 GDP 대비 70%에 이른다고 추정하기도 했다. 

문제는 터키의 위기가 터키에만 머물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는 점이다. 리라화가 폭락하자 세계 증시가 일제히 하락한 것이 그 방증이다. 특히 경제적으로 취약한 남아프리카공화국 랜드화와 아르헨티나 페소화 가치가 떨어졌으며, 중국, 브라질, 멕시코의 통화도 약세를 보였다. 유럽의 경우, 터키와의 무역규모가 약1천800억달러(약200조원)에 이르고 터키에 대한 대출도 많아 터키 리스크가 큰 편에 속한다. 따라서 유럽 증시도 일제히 하락했다. 

JP모건자산운용은 터키는 현재 ‘악화된 재정, 흔들리는 투자자 심리, 부적절한 경제 정책, 미국의 관세 위험’ 등으로 ‘페펙트 스톰’ 한가운데 있다고 지적했다. 이는 글로벌 경제에도 악영향을 미치고 있는 셈인데, 에르도안 대통령은 과연 뾰족한 해법을 내놓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저작권자 © 뉴스워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