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희정 전 충남지사 사건 1심 무죄 선고로 비동의간음죄’ 둘러싼 논란 재점화..20대 국회에서 법률안 발의됐으나 제대로 된 논의 없는 점에서 정치권 향한 지적도

[뉴스워커_김태연 기자] 안희정 전 충남지사 사건 1심 무죄 판결을 계기로 ‘비동의간음죄’ 도입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1심 재판부가 언급한 ‘노 민스 노(No means no)’ ‘예스 민스 예스(Yes means yes)’ 룰이 국내에선 적용되고 있지 않다는 점을 근거로 들어 피해자 진술이 사실임에도 안 전 지사의 무죄 선고가 불가피하다는 법조계 안팎의 해석이 법제화에 대한 방아쇠를 당긴 셈이다.

안희정 전 지사 무죄 영향 준 ‘노민스 노, 예스 민스 예스’의 부재

노 민스 노 룰(No Means No rule)은 상대방이 부동의 의사를 표시했는데도 성관계를 한 경우 이를 강간으로 간주하고 처벌하는 것을 뜻한다.

▲ 그래픽_황성환 그래픽 담당

이에 반해 ‘예스 민스 예스(Yes Means Yes)’룰은 더 나아가 상대방이 명시적이고 적극적으로 동의하지 않은 모든 성관계를 강간으로 처벌하는 원칙이다.

이러한 룰을 담은 국내법이 입법화되지 않았다는 게 안희정 전 지사 무죄에 영향을 줬다는 법조계 안팎의 해석이 나온다.

1심 재판부는 “피고인의 성관계 요구에 대해 김지은 씨가 명시적으로 의사를 표명한 적이 없고, 거부나 저항 정도에 이르지 않았지만 자기 나름의 방식으로 거절하는 태도를 보인바 있었다”며 “피해자의 진정한 내심에 반하는 상황이었다 하더라도 우리 성폭력 범죄 처벌체계 상 이런 사정만으로 피고인 행위가 성폭력 범죄라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즉 “두 룰이 합법화되지 않은 현행 법제 하에서 처벌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는 두 룰을 담은 국내법인 ‘비동의간음죄’가 법제화 돼야만 처벌할 수 있다는 대목도 된다.

단지 안희정 전 지사 무죄를 계기로 비동의간음죄 목소리가 커진 것은 아니다.

서지현 검사를 필두로 한 미투 운동을 계기로 비동의간음죄 도입에 대한 주장은 여성학계에서 지속적으로 제기돼왔다.

관련 법안들도 발의된 상태지만 이에 대한 논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 정치권을 향해 법제화를 촉구하는 주장들이 거듭되고 있는 이유다.

◆ 성폭력 관한 현행 형법은

안 전 지사 무죄를 계기로 한국의 성폭력 범죄 수사와 처벌이 피의자 중심에 놓여있다는 비판이 재점화되고 있는 분위기다.

형법 제 297조 강간죄 규정에 따르면 ‘폭행 또는 협박으로 강간한 자는 3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한다’고 돼 있다.

강간죄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폭행과 협박이 있어야 한다는 얘기가 된다.

일각에선 피해자가 성폭행 상황에서 적극적으로 저항하지 않았기에 강간으로 볼 수 없다는 판결은 과거와 마찬가지로 거듭돼 왔기에 시대착오 판결이란 비판을 제기하고 있다.

2005년 3월 한 고등법원 재판부는 “피해 여성이 술에 취해 성관계했더라도 적극적으로 저항하지 않았다면 준강간이 아니다”라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피해자가 필름이 끊어진 걸 이용해 A씨가 성관계를 가졌다”고 주장했지만 “피고인 B씨(여)가 술 취한 상태를 이용해 성관계를 가졌다고 확실히 단정하기 어렵다”며 1심 판결을 확정했다.

또한 “고소인이 술에 취해 이성적 판단이 흐려진 상태에서 A씨와 성관계 요구에 응했거나 적극 저항하지 않자 피고인이 동의하는 것으로 알고 성관계를 가진 것”이라며 무죄로 판결해 가해자 주장에 손을 들어 논란이 일기도 했다.

법조계 내에서도 폭행과 협박의 유무로 강간을 규정하고 있는 국내법은 국제 사회 권고 기준에 훨씬 못 미친다는 평가를 제기하고 있다.

벨기에의 경우 ‘동의가 없는 성관계는 수단·관계의 정도에 관계없이 강간죄를 구성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독일에서는 2016년 쾰른 광장에서 일어난 집단 성폭력 사건을 계기로 피해자들이 강한 저항을 해야만 성범죄가 증명될 수 있는 것에 반대하는 캠페인인 ‘ NeinHeisstNein(No means No)’룰이 추진되며 법이 개정됐다.

◆ ‘비동의간음죄’ 도입 발의만 7건..법제화 관한 논의는

20대 국회 2년간 발의된 형법·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개정안에 따르면 ‘비동의간음죄’ 도입에 관한 법안은 총 7건 발의돼 있다.

주된 내용은 형법 297조 ‘폭행 또는 협박으로’의 문구를 ‘상대방 의사에 반하여’로 바꿔 강간의 정의를 ‘상대방 동의를 얻지 않은 성관계’로 정정하자는 것이다.

하지만 해당 법안은 모두 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돼 있는 상태다.

비동의간음죄가 추진되지 않고 있는 국내 법 실정이 성폭력 피해자의 피해증명을 어렵게 하고 있다는 주장이 거세지면서 여성학계에서는 정치권을 향해 비동의간음죄 도입에 대한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KBS 보도에 따르면 18일 성폭력 혐의로 기소된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에게 1심 법원이 무죄를 선고한 것에 관련해 ‘미투운동’ 단체가 사법부 규탄 시위를 진행하기도 했다.

정치권 내에서는 피해자의 명시적 동의 없이 이뤄진 간음을 강간죄로 처벌하는 등 성범죄 성립 요건을 피해자 중심으로 완화하는 형법 개정안 발의를 놓고 입장을 검토한 바 있다.

4월 더불어민주당, 법무부, 여성가족부는 당정을 통해 비동의 간음죄 신설을 적극 검토하자는 입장을 정했다.

정의당도 최근 비동의 간음죄에 관한 법안을 내겠다는 입장이다.

정의당 이정미 대표는 16일 상무위원회에서 안희정 전 지사 판결을 두고 “정치권도 반성해야 한다”며 “미투 운동 직후 말은 무성했지만 법안 하나 제대로 처리조차 못했고 결국 사법부의 퇴행을 막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어 “사법부의 성폭력 면죄부 발행을 막기 위해, 폭행과 협박에 의해 강요된 성관계만 강간죄로 처벌하는 현행 형법을 개정하고, 동의하지 않는 성관계를 처벌할 수 있어야 한다”며 “故 노회찬 원내대표가 ‘비동의 강간죄’와 함께 성폭력범죄에 대한 포괄적 처벌강화를 위한 법안 준비를 완료한 상태다. 조속한 법안 발의를 약속드린다"고 밝혔다.

이처럼 선진화된 성폭력법을 촉구하는 민심의 지적이 정치권의 ‘비동의간음죄’ 법제화에 대한 움직임을 진전시킨 가운데, 소극적이었다는 지적을 받아온 피해자중심 문제해결을 위한 법제화가 이뤄질지 향후 귀추가 주목된다.

저작권자 © 뉴스워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