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워커_김태연 기자] 최근 ‘낙태 수술’을 둘러싼 보건복지부와 산부인과 의료계의 입장차 이골이 심화되면서 사회적 합의는 도외시된 채 엉뚱하게도 그 불똥은 여성 환자들에게 튀기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근 보건복지부가 불법 낙태 수술 시행 의료인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자 이에 반발한 일부 산부인과 의사들 사이에서 ‘낙태 수술 거부’ 카드를 꺼내게 됨으로써 되려 여성환자들이 피해를 떠안게 된 것이다.

보건복지부, 낙태수술 ‘비도덕적 진료 행위’로 분류하면서 논란 시작돼

낙태 수술을 둘러싼 논란이 재점화된 것은 지난 17일 보건복지부가 비도덕적 진료 행위 유형을 세분화하면서 시작됐다.

복지부는 비도덕적 진료 행위를 세분화하고 그에 따른 처분 기준을 강화하는 등 현행법 제도를 보완한 의료관계행정처분규칙 일부 개정안을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 최근 ‘낙태 수술’을 둘러싼 보건복지부와 산부인과 의료계의 입장차 이골이 심화되면서 사회적 합의는 도외시된 채 엉뚱하게도 그 불똥은 여성 환자들에게 튀기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뉴스워커_황성환 그래픽 담당>

하지만 이 개정안에 따르면 ‘낙태 수술’은 비도덕적 진료 행위로 분류된다.

이미 낙태 수술은 형법 제270조 “의사, 한의사, 조산사, 약제사 또는 약종상이 부녀의 촉탁 또는 승낙을 받아 낙태하게 한 때에는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에 따라 불법 행위로 분류돼 있는 상황에서, 이번 개정안은 ‘형법 제 270조를 위반해 낙태하게 한 경우’를 비도덕적 진료 행위에 포함 시키고, 이를 어긴 의사에게는 한 달 동안 자격정지 처분이 내려지는 것을 명시하게 된 것이다.

이에 따라 산부인과 의사회는 “산부인과 의사를 비도덕적이라고 낙인찍는 행위”, “낙태 수술에 따른 처벌의 의지를 명문화한 것”이라며 보건복지부를 강도 높게 비판하고 있다.

산부인과 의료계 반발 커져..여성단체도 ‘여성 건강 위협’, ‘낙태 음성화’ 우려

보건복지부 개정안 발표에 산부인과 의사들은 ‘낙태 수술 거부’를 선언하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는 상황이다.

결국 관계당국과 산부인과 간 입장차가 심화될 위기에 놓이면서 엄한 여성 환자들만 피해를 입게 됐다.

아시아경제 보도에 따르면 산부인과의사회는 28일 기자간담회를 통해 “복지부가 낙태 수술을 비도덕적 진료 행위로 규정하고 낙태 수술한 의사 자격을 1개월 정지하는 행정처분 규칙을 공포했다”면서 “입법 미비로 인해 많은 낙태가 행해질 수밖에 없는 현실과 사회적 합의가 이뤄지지 않는 상황에서 1개월 자격정지의 가혹한 처벌을 당할 수 없다”고 밝혔다.

또한 산부인과의사회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0개 국가 중 23개국에서 ‘사회적·경제적 적응 사유’로 인공임신중절을 허용하고 있다"면서 "우리나라와 동일하게 형법상 낙태죄를 규정하고 있는 일본조차도 모체보호법에서 '사회적·경제적 정당화 사유'로 인공임신중절을 허용하고 있는 상황에서 세계적 추세에 역행하는 정책"이라고 강하게 반발했다.

이처럼 산부인과 의사들은 ‘낙태 수술’을 비도덕적이라며 낙인을 찍는 이번 개정안에 수긍할 바에야 아예 낙태 수술을 전면 거부하겠다는 입장을 피력하고 있어 일각에선 이런 현상이 낙태 음성화를 초래해 여성 환자들의 피해가 이어지고, 더 큰 사회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를 내놓고 있다.

여성단체 역시 이번 보건복지부 발표에 낙태 수술에 관한 논란을 더욱 부추기고 여성의 자기 선택권을 침해하는 개정안이라며 비판했다.

또 이미 낙태 수술은 일부 병원을 중심으로 음성화된 상태로 개정안을 통해 정부 차원 단속이 강화될 경우엔 되려 낙태 음성화를 부추길 뿐이란 지적도 나온다.

이에 더해 정부의 조치와 의사들의 거부로 ‘미프진’ 등 검증되지 않은 임신중절 약의 유통이 활발해질 우려도 내놓고 있어 오히려 여성들의 건강권을 해치게 되는 악순환이 반복될 수 있다는 주장도 있다.

‘사실상 합의 거쳤다’는 보건복지부..“자격 정지는 이미 합의된 사안”

의료계 반발에 보건복지부는 사뭇 다른 입장을 보였다.

보건복지부는 의료계와 여성계 반발에 대해 지난 2016년 9월 의료법 개정 당시 비도덕적 의료 행위들을 법제화하면서 불법 낙태 수술을 포함시켰고, 2년간 심의 과정을 거친 끝에 지난 17일 공표하게 됐다고 해명했다.

2016년 당시 자격정지 1년을 추진하다가 이번과 같이 의료계 반발에 부딪힌 뒤 한 달로 줄여 사실상 의료계 합의를 받았다는 주장이다.

또한 보건복지부는 이번 개정안은 낙태 수술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것이 아니라는 입장을 견지했다.

국회 보건복지부위원회 전체 회의에서 박능후 보건복지부장관의 발언 내용 따르면 ‘진료 중 성범죄’ 12개월, ‘대리 수술’ 6개월, ‘일회용 주사기 재사용’ 6개월 등 개정안에 포함된 일부 비도덕적 진료 행위 처분 기준이 강화된 것은 사실이나, 낙태 수술은 개정 전과 동일하게 자격 정지 1개월을 유지해왔다는 것이다.

◆ 현행법이 여성들의 사회적 현실 반영하지 못 했다는 지적도 펼쳐져

보건복지부는 헌재 낙태죄 위헌 여부가 나올 때까지 의료 자격정지 행정처분을 유보하겠다고 밝혔지만 일부 산부인과 의사들은 낙태 수술 거부를 이어가겠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어 피해는 고스란히 여성 환자들에게 돌아가는 상황이다.

이런 사안에서 현행법 자체가 여성들의 임신과 출산의 현실을 반영하지 못 하고 있다는 지적도 뒤따르면서 낙태죄 처벌에 관한 형법과 모자보건법은 위헌 여부를 가리는 헌법소원 절차를 밟고 있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지난 4월 전국 만 16~44세 낙태를 고려했거나 경험한 593명의 여성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낙태를 고려한 이유에 대해 “경제적으로 준비가 돼 있지 않아서”란 답변이 29.7%로 가장 많았다.

또 “계속 학업이나 일을 해야 하는 상황이라서”라는 답변이 20.2%로 그 뒤를 이었고, “결혼할 마음이 없어서” 등의 답변도 3위를 차지했다.

이런 관점에서 여성계에선 “여성들이 낙태를 하게 되는 사회적 현실을 현행법이 충분히 반영하지 못 하고 있다”는 의견을 주장하는 상황이다.

결국 ‘낙태 제도’를 둘러싼 관계당국과 의료계 간 갈등과 논란은 한동안 이어질 것으로 보여 낙태죄에 대한 정당한 사회적 합의와 사법적 논의를 촉구하는 여성들의 외침은 정작 묻히고 있다는 지적이 더욱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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