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워커_김영욱 시사칼럼니스트] 몇 해 전 여름 한 HD드라마 전문채널에서 방송된 중국 최고의 청렴관에 대한 이야기를 그린 드라마 ‘염석전기’(廉石傳記)가 생각나는 하루다.

‘울림석’으로도 불리는 ‘염석’(廉石·소금돌)은 중국 삼국시대 오(吳)나라 관원이었던 육적(陸積)과 관련된 것으로, 청렴한 관직 생활을 상징한다.

육적은 중국 고사성어 회귤고사(懷橘古事), 육적회귤(陸積懷橘)의 주인공. 육적은 여섯 살 때 원술을 만난 자리에서 나온 귤 세 개를 가슴에 숨겼다가 떨어트렸다. 원술이 왜 귤을 숨겼느냐고 묻자 육적은 어머니께 드리려고 그랬다고 대답했다. 훗날 오나라 손권의 신하가 된 육적은 울림태수 시절 청렴한 생활로 칭송이 자자했다.

▲ 최근 함승희 전 강원랜드 사장이 법인카드로 ‘혈세 데이트’를 했다는 파렴치 논란이 퍼졌다. 공기업 법인카드를 내연녀로 추정되는 30대 손 모 씨와의 데이트를 위해 사적 용도로 썼다는 사건인데, 그녀에게 아예 카드를 손에 쥐어준 것이 아니냐는 의혹까지 불거지고 있다. <그래픽_황성환 뉴스워커 그래픽 담당>

육적이 임기를 마치고 떠날 때 짐이 너무 가벼워 배가 중심을 잡지 못했다. 큰 돌을 실은 뒤에야 배가 균형을 잡았다는 전설에 사람들은 육적을 칭찬하면서 이 돌을 ‘염석’이라고 불렀다. 염석은 백성을 지극정성 돌보지만 뇌물을 사양하고 탐관오리를 척결하는 청렴하고 공정한 관직 생활을 상징한다. 이 염석은 현재 중국 소주 문묘 박물관에 있다.

이 드라마에 대해 중국의 국가청렴위원회도 나서 ‘오늘날 중국 사회를 깨우치고 경고하고 정화시키는 드라마’라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이 드라마가 새삼 떠오르는 이유는 최근 함승희 전 강원랜드 사장이 법인카드로 ‘혈세 데이트’를 했다는 파렴치 논란을 접하고서다.

공기업 법인카드를 내연녀로 추정되는 30대 손 모 씨와 사적 용도로 썼다는 사건인데, 그녀에게 아예 카드를 손에 쥐어준 것이 아니냐는 의혹까지 제기되고 있다.

현재까지 확인된 강원랜드 법인카드는 모두 8장인데 그중에서 집중적으로 사용된 건 5장으로 알려졌다.

함 전 사장은 지난 2014년 12월 취임 이후 3년간 서울에서 636차례 법인카드를 사용했다. 그 가운데 내연 관계로 의심받는 포럼 ‘오래’ 사무국장 손 씨의 거주지인 서울 서래마을 근처에서만 300번 넘게 긁었다.

액수로는 9천만 원에 이른다. 심야, 공휴일, 주말, 특히 주말은 3천만 원 넘게 사용됐는데, 백화점이나 호텔 사용이 많았다. 이러다 보니까 함 전 사장은 2016년엔 근무지인 강원도 정선이 아니라 서울에서 관용차를 사용한 날이 205일에 달한다.

유명 빵집, 각종 고급 식당 등 시쳇말로 ‘서래마을 맛 집 지도’를 그려도 될 정도라고 하니 이것이야 말로 국민 혈세로 데이트를 한 것이 아닌가. 또 함 전 사장은 재직 중 17차례 해외출장을 갈 때마다 손 씨가 동행한 의혹도 제기됐다.

이에 함 전 사장은 “내 집이 반포동에 있다. 여기는 내 ‘나와바리’(자신만의 친근한 영역)다. 워낙 여기 맛 집들을 잘 아니까 주말에 외부손님들을 접대하기 편하다”고 변명했다고 하니 기가 찰 노릇이다.

앞서 그는 법인카드 말고도 특별회의비라며 서울 주요 호텔에서 수천만 원을 쓴 사실이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드러나기도 해 물의를 빚었다.

이 같은 의혹이 불거진 함 전 사장이 검찰 수사를 받게 됐다. 강원랜드 노조가 지난달 30일 함 전 사장을 검찰에 업무상 배임·횡령 혐의로 고발했고 검찰은 곧바로 사건을 배당했다.

강원랜드를 망가뜨린 함 전 사장의 추악한 비리는 명명백백 밝혀져 다시는 노동자에게 고통을 전가하는 공직자가 생기지 않도록 경종을 울려야 한다. 또 거기에 따른 응당한 책임을 함 전 사장은 반드시 져야 마땅하다.

함 전 사장의 도덕적 해이를 보면서 ‘육적의 청렴관’ 상징 ‘염석’이 다시금 가슴을 울리는 이유다.

※ 김영욱의 화요칼럼은 매주 화요일 아침 6시에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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