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워커_기자의 窓] 지난 8월 31일 기자들과의 만남에서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은 BMW 화재 사고를 예로 들면서 BMW 같은 기업들이 소비자 보호에 다소 소극적으로 나오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김 장관은 기업들의 이와 같은 움직임에 제동을 걸기 위해서는 현행 제조물 책임법에 규정되어 있는 징벌적 손해 배상 제도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징벌적 손해 배상 제도를 강화하자는 김 장관의 주장은 국토교통부 등 정부 기관에 한정되지 않고, 국회에서 입법이 활발히 논의되는 등 폭넓은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 지난 8월 31일 기자들과의 만남에서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은 BMW 화재 사고를 예로 들면서 BMW 같은 기업들이 소비자 보호에 다소 소극적으로 나오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김 장관은 기업들의 이와 같은 움직임에 제동을 걸기 위해서는 현행 제조물 책임법에 규정되어 있는 징벌적 손해 배상 제도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래픽_황성환 그래픽 담당>

안호영 더불어 민주당 의원은 지난 8월 31일 징벌적 손해 배상 제도를, 9월 3일에는 필요가 있는 경우 성능시험 대행자가 관계 기관, 법인, 개인 등에 자료 제공 요청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자동차 관리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안 의원은 제출된 개정안 제74조 제2항에서 자동차 제작자 등이나 부품 제작자 등이 제품에 결함이 있음을 알면서도 그 결함을 은폐, 축소하거나 거짓으로 공개함으로써 생명, 신체, 재산상의 손해를 입힌 경우 손해의 5배를 넘지 않는 범위에서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명시했다.

기존 민법은 가해자가 고의적으로 손해를 입혀도 실제 손해액을 초과하는 배상은 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는데, 이번 개정안은 손해액의 5배를 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실제 손해액을 초과하는 배상의무를 지울 수 있다는 것에 특징이 있다.

예를 들어 실제 손해액이 100만원 발생했다면 기존 민법 적용만으로는 100만원을 초과하는 손해 배상 의무를 지울 수 없지만, 해당 법률안이 적용된다면 실제 손해액이 100만원이라고 해도 고의적으로 결함을 은폐, 축소한 행위에 대한 징벌로 300만원, 400만원의 손해 배상 의무를 지울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안 의원의 개정안 제34조 제2항에서는 성능 시험 대행자의 자료 제출 요청권을 인정하고 있어 소비자가 자동차 관련 분쟁에서 자동차의 결함을 입증하려고 할 때 그 자료 수집 부담이 기존보다 낮아질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한편 신창현 더불어 민주당 의원은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 관련하여 지난 8월 13일 제조물 책임법에 대한 일부 개정안을 대표 발의 했다.

신 의원이 제출한 개정안의 특징은 기존 생명, 신체상 손해에 제한되던 징벌적 손해 배상 제도를 재산상 손해까지 확대한 것과, 기존 3배까지 허용되던 손해 배상액을 5배까지 확대한 것, 결함을 알고 있었던 때 뿐 아니라 알 수 있었던 때까지 확장한 것에 그 의미를 둘 수 있다.

해당 법률안들이 국회에서 통과될 경우 신 의원의 법률안은 제조물이란 비교적 폭넓은 범위에서 소비자 보호가 강화되고, 안 의원의 법률안은 자동차 분야라는 범위 면에서는 한정적 의미를 갖지만 구체적인 권리 보호와 소비자의 입증 부담 완화라는 측면에서 강점을 가질 것으로 기대된다.

‘레인 메이커(Rain Maker)’라는 영화에서처럼 미국의 일부 주는 징벌적 손해 배상 상한을 규정하지 않아 천문학적 손해 배상 청구도 가능하기 때문에 거대 보험사마저도 도산하게 하는 것이 가능하다. 이에 따라 징벌적 손해 배상을 강화하면 기업 활동이 매우 위축될 가능성이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하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현재 한국의 제조물 책임법에서 규정된 징벌적 손해배상은 손해액의 3배로 상한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거대 기업을 도산하게 할 정도의 천문학적 배상 청구는 불가능하며, 생명, 신체의 손해를 발생시킨 경우에만 징벌적 손해 배상이 가능하기 때문에 미국에서 발생한 사례를 한국에 그대로 투영하는 것은 무리다.

미국에서 노년 여성이 부주의로 커피를 쏟아 부상을 입었는데 주변 매장보다 커피 온도가 높다는 점, 과거 유사한 사례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기업이 안전 조치를 취하지 않은 점이 인정되어 64만 달러(약 7억 1600만원)의 배상금을 지급 받았던 이른바 ‘맥도날드’ 사건은 징벌적 손해 배상 관련하여 자주 언급되는 사건이다.

또한 2016년 폭스바겐 배기가스 조작 사건에서는 징벌적 손해 배상 제도가 적용되어 폭스바겐이 미국 당국과 소비자에게 지급해야 할 합의금은 153억 달러(약 17조 1207억 원), 이중 소비자에게 배상해야 할 금액은 100억 달러(약 11조 1920억 원)로 소비자 1인당 600만원에서 1170만원까지 지급해야 하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위와 같은 사례가 발생하기는 어렵다고 볼 수 있다.

현행 제조물 책임법에는 징벌적 손해 배상의 상한이 실제 손해액의 3배로 제한되어 있어 맥도날드 사건과 유사한 사고가 한국에서 발생할 경우 화상에 대한 치료비, 성형 수술비 정도가 지급될 가능성이 높다.

또한 폭스바겐 배기가스 조작 사건의 경우 중고 차량의 가격이 하락한 손해는 신체, 생명에 대한 손해로 볼 수 없기 때문에 징벌적 손해 배상 제도가 적용될 여지가 없어, 차량 가격분 정도가 배상이 이루어질 가능성이 높다.

즉 현행 한국의 징벌적 손해 배상 제도는 폭스바겐 배기가스 조작 사건, BMW 화재 사건 등에 비추어 현실을 잘 반영하고 있지 못하다는 평가가 가능하다. 따라서 국토교통부, 국회를 포함한 징벌적 손해 배상 제도의 강화 움직임이 잘못된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하지만 징벌적 손해 배상 강화와 함께 발생할 수 있는 부작용에 대한 고려도 분명히 이루어질 필요는 있다.

일각에서는 징벌적 손해 배상을 강화하면 기업과 소비자 간의 분쟁이 급증할 것으로 전망하는데, 특히 중소기업들에 대한 부정적 영향이 크게 우려된다.

자본력이 충분한 대기업의 경우 대부분 회사 내 법무 팀을 운용하고 있어 법적 분쟁이 발생해도 기업 경영에 큰 문제는 없지만, 중소기업의 경우 법적 분쟁이 발생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경영에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크다. 극단적인 경우 중소기업은 제품의 결함을 알지 못했어도 법적 대응능력 부족으로 억울하게 손해 배상 책임을 지거나 그로 인해 도산을 할 가능성도 있다.

즉 징벌적 손해 배상 강화는 폭스바겐 배기가스, BMW 화재 등과 같은 현실에 대응하기 위한 올바른 기조라고 할 수 있지만, 그로 인한 중소기업의 경영 위축 가능성과 같은 부작용은 제도 강화 전 고려해야 할 사항이라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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