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그룹 본사 3000여 명 집결 농성, 사측 “오래전 일이라 확인불가”

[기자의 窓] 십 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 말이 있지만 변하지 않는 것도 때론 존재한다. 현대제철은 십수 년이 훌쩍 넘는 동안 노조와 갈등의 골은 첨예하게 깊어지는 듯하다.

지난 11일 현대제철 금속노조 비정규직 근로자들이 서울시 서초구 현대자동차그룹 본사 앞에 3000여 명이 집결해 농성을 벌였다. 급기야 현대제철의 불법파견 은폐와 노조파괴 등 부당노동행위 의혹에 대한 고용노동부의 특별근로감독과 비정규직 차별 중단을 촉구하며 공동파업에 돌입했다.

▲ 지난 11일 현대제철 금속노조 비정규직 근로자들이 서울시 서초구 현대자동차그룹 본사 앞에 3000여 명이 집결해 농성을 벌였다. 급기야 현대제철의 불법파견 은폐와 노조파괴 등 부당노동행위 의혹에 대한 고용노동부의 특별근로감독과 비정규직 차별 중단을 촉구하며 공동파업에 돌입하고 있는 모습이다. <사진 속 인물_우유철 현대재철 대표 / 그래픽_진우현 그래픽 담당>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현대제철에 흡수합병된 현대하이스코가 과거 하청노조를 탄압하고 해체를 시도했다는 정황을 나타내는 문건이 공개돼 논란은 가중되는 상황이다. 지난 13일 한 매체가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2005년 당시 현대하이스코 하청노조가 출범한 뒤 사측이 조직적으로 노조를 와해시키려는 정황이 담긴 문건들이 공개됐다.

자료에는 2006년 10월 현대하이스코가 법무법인의 자문으로 ‘협력사 노조관리 방안’을 마련, 노조를 4단계로 무력화시킨다는 시나리오가 적혀 있었다. 또 하청업체 폐업에 따른 실직자가 재입사를 포기하도록 회유하는 전략도 4단계에 걸쳐 짜여 있었다.

현대제철 측은 현대하이스코가 노조탄압을 한 정황의 단초가 되는 문건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관계자들이 모두 퇴사한 상태고 오래전 일이라 사실확인이 어렵다”는 입장으로 일관하고 있다. 또 “과거 문건을 근거로 노조가 주장하는 것 뿐”이라고 일축했다.

그러나 문건에는 관계자들의 구체적인 실명까지 거론되며 하청노조 조합원들의 정치적 성향과 활동내용, 동향 등 세밀한 정보들이 담겨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만일 현대하이스코가 노조에 관여할 일이 없다면 과연 조합원들의 개인 정보까지 수집할 이유가 무엇이 있을까.

또 현대하이스코의 노조 탄압을 주도했던 권모 이사는 현재 당진공장 하청업체 부사장직을 맡고 있고, 김모 부회장은 현대종합상사 부회장에 올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하이스코의 명맥을 이어가는 현대제철이 과거 규명에 대한 의지가 있다면 충분히 관계자들을 접촉해 확인이 가능한 부분으로 보인다.

게다가 현대하이스코는 지난 2005년 8월 금속노조 비정규직지회 조합원들이 속해 있는 ㈜금산, 한일기업, ㈜태광계전 등 4개 하청업체를 연달아 폐업시켰다는 의혹에 쌓여 있다. 금산과 한일기업은 조합원이 각각 30여 명이 속해 있어 노조의 조직률이 높은 업체였다. 비정규직지회가 설립될 2005년 6월 조합원은 240여 명이었으나 석 달 뒤인 9월에는 140여 명으로 줄어들었다고 노조는 밝혔다.

헌법상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제5조와 같이 근로자는 자유롭게 노동조합을 조직하거나 이에 가입할 수 있다. 노동조합은 노동자의 권익을 보호하고 근로조건의 유지 및 개선 등 근로자의 권익 향상을 도모하는데 의의를 둔다. 그러나 노조에 속한 조합원이라는 이유로 곳곳에서 ‘노조와해’ 공작 전모의 정황이 포착되고 있는 상황인데 현대제철은 과거사로 치부하고 부동의 자세를 취하고 있다.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는 현대제철의 지난한 노사관계 격차가 개선되지 않는다면 노조투쟁의 안타까운 희생양은 점점 불어날 것이 뻔하다. 현재까지 알려진 의혹과 문건들은 현대제철의 노조탄압, 부당노동행위 등 민낯을 낱낱이 파헤치고 있다. 강산이 변하는 동안 진상규명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현대제철의 노조와해 의혹은 이제 당국의 철저한 조사를 받아 마땅해 보인다.

이제 곧 국정감사가 시작된다. 그 증인석에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등은 우유철 현대제철 대표를 거론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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