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워커_윤광원 경제칼럼리스트] 지난 15일 진행된 남북 고위급회담에서 합의된 것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내달 남북적십자회담을 열기로 한 것이다. 이산가족 ‘상봉 정례화’에 한 발 더 다가선 모양새다.

다른 하나가 문제다. 남북 철도‧도로 연결 및 현대화를 위한 ‘착공식’을 다음 달 말에서 오는 12월 초 사이에 열기로 한 것이다.

▲ 그래픽_황성환 뉴스워커 그래픽 담당

문재인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지난달 정상회담 직후 내놓은 ‘평양공동선언’에서 연내 동·서해선 철도 및 도로 연결을 위한 착공식을 갖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이번 고위급회담에서는 두 정상간 합의사항 이행을 위해 열린 것이다.

그러나 당장 많은 사람들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미국의 대북 제재가 ‘시퍼렇게’ 살아있는 상황에서 과연 그게 가능하겠느냐는 것.

당장 미 국무부는 남북관계와 북한 비핵화 문제의 진전이 함께 가야 한다는 원칙을 재확인하며, 강력한 ‘견제구’를 날렸다.
국무부 대변인실 관계자는 남북 철도‧도로 연결 착공식과 관련된 질의에 대해 "문재인 대통령이 밝힌 대로, 남북한의 관계 개선 문제는 북한의 핵 프로그램을 해결하는 것과 별개로 진전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중국인들은 냉엄한 ‘현실’을 이야기했다. 인민일보의 영자 자매지 글로벌타임스는 16일 “한국은 미국의 대북 제재 영향력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정지융 상하이 푸단대 한반도 연구센터 주임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미 행정부는 남북 간 화해가 너무 빨리 이뤄지는 것을 원치 않는다”며 “한반도 문제가 ‘표’를 얻는데 이득이 된다는 판단 아래, 중간선거와 재선 등 미국 선거에 계속 이용하길 원한다”고 말했다.

또 “불행히도 한국은 미국을 무시할 수 없으며, 미국은 ‘하룻밤’ 사이에 남북이 지금까지 이뤄놓은 모든 것을 ‘파괴’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남북은 이미 4·27 1차 정상회담 때 합의한 ‘판문점 선언’을 통해 경의선과 동해선 등 철도와 개성∼평양 고속도로 등 도로를 연결하고 현대화하는 데 합의한 바 있다.
그러나 남측 인원과 열차를 투입하는 북측 구간 철도 현지 공동조사는 지난 8월 유엔군사령부가 군사분계선 통행계획을 승인하지 않아 실행되지 못했다.
따라서 남북 철도·도로 연결 공사는 일단 남한 지역에서 주로 이뤄지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렇다면 아직은 ‘휴지조각’에 불과한 내용을 뭐가 그리 급하다고 착공식 일정에까지 합의했는지 모르겠다.

가뜩이나 미국의 조야와 언론들은 한국이 ‘선’을 넘지 않을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과연 정말 핵을 포기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 ‘삐딱’한 시선으로 주시하고 있다.

지난주에는 강경화 외교부장관이 남북경협에 필수적인 ‘5.24조치’ 해제 검토를 거론하고 나섰다가, 말을 주어 담느라 ‘홍역’을 치렀었다.

주지하듯이 5.24조치는 대부분이 대북 제재와 겹친다.

더욱이 ‘천안함 폭침’에 대한 독자 제재로 결정된 5.24조치 해제는 북한이 이에 상응한 조치, 최소한 김 위원장이 직접 ‘유감’을 표명하는 정도는 나와 줘야 국민감정을 거슬리지 않는다.

장관들은 왜 이렇게 조급한 것인가.

최소한 미국 중간선거 이후 열리는 2차 북미정상회담 결과를 보고 나서 움직여도 움직여야 하는 것 아닐까?

이런 성급함은 비핵화 ‘중도의 상응조치’를 설득해야만 하는 문재인 대통령에게도 부담이다.

이런 점도 간과해선 안 된다. 남북경협이 과연 기대만큼 우리 경제에 ‘획기적’ 보탬이 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도 있다는 것을...

남북 철도와 도로 연결은 남북관계 개선이라는 ‘상징적 결과’만 얻을 뿐, ‘실리’는 중국이나 러시아가 챙기지 말라는 법이 없다. 그들은 북한의 ‘혈맹’이다.

토목공사는 특별한 기술력이 필요한 게 아니다. 광물자원 개발도 마찬가지다.

제발 ‘김칫국’부터 마시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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