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워커_국제정세] 미 트럼프 대통령이 러시아와 체결했던 중거리 핵전력 조약(INF) 파기를 공식화하자 러시아를 비롯한 중국, EU(유럽연합)은 물론 자국의 소속 당인 공화당에서도 비판하고 나섰다. 신 냉전시대가 부활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들이 나오고 있고, 러시아는 중거리 핵전력 조약을 유지하는 결의안을 유엔에 제출하겠다고 24일(현지시간) 밝혔다. 이로써 ‘중거리 핵전력 조약’은 국제사회의 또 하나의 쟁점으로 떠오를 것으로 보인다.

▲ 뉴스워커_황성환 그래픽 담당

◆ 미, “러시아가 중거리핵전력 조약(INF) 위반했다” 주장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20일 11·6 중간선거를 앞두고 지원유세를 하는 도중 기자들과 만나서 러시아와 체결했던 중거리 핵전력 조약(INF)을 파기하겠다고 밝혔다. 러시아 정부가 합의를 위반했다는 것이 그 이유다. 뉴욕타임즈(NYT)와 AP 통신에 따르면, 트럼프대통령은 “러시아와 중국이 새로운 협정에 합의하지 않는다면 우리도 해당 무기들을 개발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INF는 무엇일까. 1987년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과 미하일 고르바초프 당시 소련 공산당 서기장이 맺은 조약이다. 내용은 사거리가 500~5천500㎞인 중·단거리 탄도·순항미사일의 생산과 실험, 배치를 전면 금지하는 것을 담고 있어 두 국가는 1991년 6월까지 중·단거리 탄도·순항미사일 2천692기를 폐기하는 성과가 있었다. 그래서 냉전 시대 군비경쟁을 종식한 문서로 꼽히고 있다.

그런데 양국은 슬그머니 이 조약을 위반하기 시작했다. 러시아는 2003년 단거리 탄도미사일 ‘이스칸데르’ 시리즈를 개발하기 시작했고, 미국은 2000년대 들어 유럽 미사일방어(MD) 구축을 추진했다. 그러자 서로 상대방이 INF를 위반했다고 주장했다. 또한 미국은 지난해 2월에는 러시아의 SSC-8(9M729 시스템) 순항미사일 실천 배치가 INF 위반이라며 비판하고 나섰다. 이 미사일을 통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회원국들에 예고없이 핵 공격을 가할 수 있어 위협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러시아가 SSC-8(9M729 시스템) 순항 미사일이 INF 위반이 아니라고 주장하자, 트럼프 대통령은 INF 파기 가능성까지 거론하는 등 러시아와 갈등을 증폭시켰다. 이로 인해 국제사회는 미국, 러시아, 중국이 본격적인 핵 개발 경쟁에 뛰어드는 것 아니냐며 신냉전시대 부활에 대해서도 우려하고 있다.

◆ 중국 견제용?

트럼프 대통령이 INF 탈퇴를 언급한 또 다른 이유는 ‘중국’ 때문으로 풀이되고 있다. 로이터 통신과 뉴욕타임즈(NYT)에 따르면 중국은 INF 조인국이 아니기 때문에 제약없이 중거리 미사일을 개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중국은 실제로 군의 중국 본토 접근을 막기 위한 반접근지역거부전략(통칭: A2AD·Anti Access Area Denial)에 따라 최대사거리 1500㎞인 둥평-21D 등 단거리 미사일을 중국 동남해안에 배치하고 A2AD 전략에 따라 재래식 미사일 개발에 막대한 투자를 해왔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중국의 핵 증강에 대처하기 위한 미국의 신무기 개발을 INF가 제약하고 있다고 미국은 판단하고 있고 중국도 INF 협정에 가입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자유무역협정과 다른 성격의 협정이기 때문에 중국이 참여할 가능성이 낮다고 보고 있으며, 러시아와 중국 모두 미국을 태평양상에서 견제할 수 있는 기본적인 수단인 중거리 미사일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여기고 있다. 이러한 이유로 트럼프 대통령은 결국 INF 조약 파기를 공식화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뒷받침하는 견해를 미 국방부에서 중국 담당 국장을 지내고, 현재 싱가포르 국립대학 방문 연구원인 드류 톰슨이 24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기고글을 통해 내놨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중거리 핵전력 조약(INF) 탈퇴는 중국을 겨냥한 것이며 미·중 간 군사 대화가 시급하다는 것이다.

◆ 신냉전시대 부활에 대한 우려 커져

미국이 INF 조약 파기를 공식화함에 따라 러시아·중국·EU 등이 비판하기 시작했다. 우선 러시아가 가장 먼저 반발하고 나섰다. 러시아 정부는 지난 21일(현지시간) “매우 위험한 조치”라며 강력하게 반발하고 나섰고, 미국과 INF 조약을 체결했던 당사자 고르바초프도 “어떤 일이 있어도 오래된 비무장(비핵화) 합의를 찢어버려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비핵화나 핵무기 제한을 목적으로 하는 모든 합의는 지구상 생명을 구하기 위해 지켜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24일에는 세르게이 라브코프 러시아 외무차관은 “러시아는 INF 지지와 연관된 결의안 초안을 유엔총회 1위원회인 군축 및 국제안보 담당에게 제출할 것”이라고 밝혔다.

중국 또한 환구시보를 통해 “매우 위험한 한걸음을 내디딘 것”이라며 비판하고 나섰다. 이어 “최근 미국은 번번히 러시아가 INF를 위반했다고 질책해 왔다”면서 “이제 와 보니 이런 행동은 미국이 조약을 탈퇴하기 위한 핑곗거리를 만들기 위한 것”이었다고 비난했다.

EU도 미국과 러시아에 INF 조약을 유지하기 위한 건설적인 대화에 나설 것과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게 이 조약을 이행할 것을 촉구했다.

미국 자국 내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특히 소속당인 랜드 폴 상원의원, 밥 코커 상원 외교위원장도 “엄청난 실수”라며 우려를 하고 있다. 다만 코커 위원장은 “트럼프 대통령이 러시아의 INF 이행을 압박하려고 일종의 힘겨루기를 구사하는 것일 수도 있다”며 “우리는 이 조약을 유지하는 방법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라고 긍정적인 반응도 보였다. 또한 영국의 개빈 윌리엄스 국방장관도 “트럼프 미 대통령의 결정을 절대적으로 지지한다”면서 “이 조약을 위험에 빠뜨리며 쓸모없게 만든 측은 러시아”라고 파이낸셜 타임즈(FT)를 통해 말했다.

이렇게 미국의 INF 조약 탈퇴는 국제사회가 우려하는 것처럼 신냉전시대 부활인지, 미국과 중국이 무역전쟁을 넘은 군사적 견제인지는 지켜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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