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약자가 표적이 되는 세상은 불안하기만 하다.<그래픽_황성환 뉴스워커 그래픽 1담당>

[뉴스워커_김태연 기자] 약자를 표적으로 한 폭행·살인 범죄 등이 잇따르면서 안전에 대한 정책적, 사법적 입장을 성토하는 목소리가 늘고 있다.

지난달 31일 발생한 거제 살인사건에서 피해자는 우리 사회에서 힘없는 삶을 살아가는 사회적 약자였다. 180cm의 건장한 20대 남성이 아무런 이유 없이 그에게 폭행을 가해 무고한 목숨을 앗아가는 참극은 현실성이 없을 정도로 참혹했다.
지난달 24일에는 강원도 춘천에서 혼수 문제로 다투다 여자친구를 살해한 20대 남성이 있는가 하면, 서울 강서구의 한 아파트 주차장에서는 40대 여성이 전 남편에게 살해당했다.

세 건의 사건 모두가 방어력이 약한 여성을 상대로 한 표적 범죄였다.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범죄의 대상이 된 것이다. 최근 들어 유독 약자 표적 범죄율이 상승하고 있다는 점을 들어 현상적 측면에서 범죄의 근본 관점을 뜯어봐야 한다는 시각이 높다. 사회적 위험으로 인지해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불행포르노라는 말이 있다. 다른 사람의 불행을 안타깝게 여기는 일과 제 3자의 시선으로 멀리서 소비할 때, 자신의 일이 아니라며 묘한 안도감이나 클리프행어를 느낀다는 신조어다. 이 단어는 상대의 불행과 참극을 멋대로 소비하지 않아야 한다는 뜻도 된다.

최근 들어 여러 약자 표적 범죄와 관련한 글과 기사에 ‘불행포르노’를 소비하지 않아야 한다는 지적이 오간다. 왜 이런 반응이 나오는 걸까. 바로 범죄는 이 순간에도 시시각각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범죄를 사회의 영속성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게 됐다. 윤리도덕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사회에서 양심과 도덕이 찰나에 비껴나가는 순간 발생하는 것이 범죄기 때문이다. 곧 어떻게 봐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흔한 일이라는 것이다.

결국 불행포르노가 구사되는 반응은 늘 있어온 범죄 사건에 하나하나 엄정한 잣대를 부여하다 보면 우리가 지쳐 떨어져 나갈 수 있다는 경고의 일환이자, 계속해서 범죄의 부도덕을 답습하고 공론화하다보면 끝이 없는 아득한 평행선을 달릴 수밖에 없게 된다는 것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하지만 부도덕과 범죄는 방치할수록 곪아 오르고, 비슷한 범죄 양상이 누적되는 현상을 낳게 된다. 단지 불행포르노로 여기기에는 앞으로 다가올 손실이 더욱 크다는 점을 인지해야 할 때다. 보다 생산적으로 안전에 대한 고민을 다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새벽 4시가 다 되도록 건물 곳곳의 네온사인이 꺼지지 않는 안전하고 살기 좋은 대한민국이다. 하지만 이런 다짐이 무색해질 만큼 약자 표적 범죄가 편중되는 현상은 우리 사회가 ‘안전’에 대한 생각과 고민을 놓치고 있다는 위험한 결론을 도출한다.

정부는 생애주기별 국민안전교육 5년 단계별 이행안을 실시하고 있다. 사람과 생명의 가치를 소중히 여기며 각종 재난 및 안전사고가 없는 안전한 사회를 만든다는 게 주된 골자다.

하지만 실시간 검색어와 여러 뉴스 기사에 오르내리는 범죄에 대한 일상화된 두려움은 약자들의 숨통을 옥죄어오는 것을 넘어 그들의 남편, 자녀, 친구, 연인이라 할 수 있는 전 국민의 일상을 해롭게 하고 있다. 안전에 대한 고민과 다양한 정책들이 국민의 일상 속에 현실적으로 반영되지 못 하고 있다는 유감스러운 심정을 품게 만들 수밖에 없는 모습이다.

실성한 초점이 향하는 범죄에 직면한 사람에겐 내일이 없다. 안전에도 내일이 없다는 말이다. 일상의 두려움은 언제 어디서 범죄로 변모해 급습해 올지 모를 일이다.

약자 표적 범죄가 단순히 한 사회에서 발생하는 당연한 범죄율로 치부할 수 있을까. 국민의 생존과 직결되는 안전에 대한 고민은 모자람이 없어야 하며 더욱 절실하다. 약자 표적 범죄를 막을 수 있는 사회적 시스템과 법적 효율성을 따지는 일은 결코 헛된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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