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성바이오로직스의 대대적 분식회계가 드러난 정황에 증선위의 거래정지 이후의 행보가 주목되고 있다. <그래픽 뉴스워커 황성환 그래픽 1담당>

[뉴스워커_김영욱 시사컬럼니스트] 40년 전인 1978년, 벤처투자자 밥 스완슨과 캘리포니아주립대 유전자 재조합 기술을 연구하던 허버트 보이어 교수는 캘리포니아의 한 맥주 바에서 자주 만나 맥주를 함께하며 친분을 이어갔다.

스완슨은 그 누구도 상업적 성공을 기대하지 않았던 보이어 교수의 유전자와 면역학 연구를 알아보고 창업을 제안하고 투자했다.

이 회사가 지난해 매출 20조원(173억 달러)을 기록한 1위 바이오 기업 ‘제넨텍(로슈 자회사)’인데 미국 바이오테크 산업의 전설로 통한다.

제넨텍 본사에는 창업일화인 맥주를 마시는 두 사람을 본뜬 조각상이 있다.

안목 있는 투자자와 혁신적 연구자의 의기투합으로 탄생한 제넨텍은 항체바이오 신약이라는 신(新)시장을 개척했다.

세계 최초의 유방암 치료용 바이오 신약 허셉틴을 비롯해 리툭산·아바스틴 등 매년 8조~10조원씩 팔리는 블록버스터 신약들이 제넨텍에서 쏟아져 나왔다.

지난해 말 IBK투자증권은 제약바이오 리포트를 통해 2018년은 ‘면역항암제 시대’가 상한가를 지속할 것 이라고 내다봤다.

현재 10여개 글로벌 제약사들이 면역항암제 상용화를 앞두고 있고, 국내에서는 제2의 제넥텍을 꿈꾸는 면역항암제분야 루키 기업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삼성그룹도 반도체 이후 바이오를 신사업 동력으로 주목하고, 바이오 의약품 위탁생산(CMO)을 목적으로 삼성바이오로직스를 설립했다.

이 회사는 미국 브리스톨, 마이어스,  스큅(BMS) 등 글로벌 제약회사들의 바이오의약품을 생산하고 있다. 2013년 매출 700만 원, 영업 손실 4500억 원, 당기순손실 15조 7,689억 원을 냈다.

지난 14일 금융위원회는 분식회계 의혹과 관련, 국내주가 순위 4위인 삼성바이오로직스의 대표이사 해임을 권고하고, 과징금 80억 원 부과와 회계처리 기준 위반 내용을 검찰에 고발했고 이날 주식 거래는 정지됐다.

한국거래소는 기업의 계속성과 경영 투명성, 공익 실현과 투자자 보호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상장 적격성 실질심사를 진행한다고 밝혀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상장폐지 여부가 초미의 관심사다.

2009년 2월 상장적격성 실질심사제도 도입 이후 회계처리 위반으로 상장 폐지된 사례는 없지만 삼성바이오로직스는 분식회계가 상장 전 이뤄졌다는 점에서 상장폐지가 되는 것이 옳다.

이번 사태는 표면상으론 삼성바이오로직스의 회계처리 문제지만, 이재용 삼성그룹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와 관련해 무관치 않다는 의혹이 있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삼성 그룹 핵심 계열사 삼성전자에 대한 이 부회장의 지배력을 강화하기 위한 편법적인 ‘병법(兵法)’이라는 지적이다.

분식회계를 한 이유가 현재 삼성그룹 지배구조의 틀을 만든 3년 전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과 관련이 있기 때문에 두 회사 간의 합병 무효소송의 변수로 작용할 가능성도 있다.

당시 제일모직은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최대주주였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과정에서 이 부회장 지분이 많은 제일모직의 가치가 고평가됐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는 상황이었다.

이때 합병비율은 1대 0.35, 제일모직 주식 1주를 삼성물산 주식 3주와 교환하는 합병으로 이 부회장은 합병 이후의 삼성물산 지분 16.5%를 가진 최대주주가 되었다.

이 합병으로 이 부회장은 삼성물산과 삼성생명, 삼성전자로 이어지는 지배구조의 ‘틀’을 만들었다는 지적이다.

이번 분식회계에서 제일모직의 가치를 수조원 올려 회계 처리하고 합병 과정에서 국민연금이 손해를 보게 되면서 결국 국민세금이 6,000억 원에서 8,000억 원 가량 손해를 보게 되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참여연대는 “삼성바이오로직스의 분식회계가 이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를 위해 불공정하게 진행된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합병을 합리화하기 위해 진행됐다”며 검찰에 철저한 수사를 촉구하고 나섰다.

금감원은 고의 분식회계 판단과정에서 손실을 본 투자자들을 보호해야 할 것이다.

관계당국은 한국 자본시장의 민낯을 드러낸 이번 사태를 통해 시장의 투명성과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한 후속 조치를 마련하는 데도 힘써야 한다.

재벌의 경영권 승계를 놓고 벌인 ‘노름판’에 휘청거리는 한국 자본시장이 안쓰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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