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워커_국제문제] 미국과 중국의 무역분쟁이 APEC 정상회의 자리에서도 이어졌다. 미·중 간 세계무역기구(WTO) 개혁 입장에 대한 이견으로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공동성명 채택이 25년 만에 처음으로 무산되는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이는 다음 달 초에 있을 G20 정상회의 겸 열리는 미·중 정상회담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 미국과 중국의 무역분쟁이 APEC 정상회의 자리에서도 이어지면서, 다음 달 초에 있을 G20 정상회의 겸 열리는 미·중 정상회담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지 주목되고 있다. <그래픽_황성환 그래픽 1담당>

◆ 미중 간 무역분쟁으로 사상 처음 APEC 공동성명 없이 마무리

지난 18일(이하 현지시간) 폐막한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는 사상 처음으로 공동성명을 발표하지 못한 채 마무리 됐다. 미·중 간 WTO 개혁 입장에 대한 이견이지만, 결정적인 것은 ‘불공정한 무역관행’이라는 문구 때문이라는 것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 등 미국 언론에 따르면 “중국이 성명서 초안에 적힌 한 문장을 문제 삼았다”는 것이다. 중국은 초안에 있는 ‘우리의 모든 불공정한 무역 관행 등을 포함해 보호무역주의와 싸우는 데 동의했다’는 내용 가운데 ‘불공정한 무역관행’이라는 문구를 두고, 미국이 중국을 향해 사용한 용어라고 주장하며 성명서 채택을 거부했다는 것이다. 중국을 제외한 나머지 20개국 정상들은 모두 이 성명서 채택에 동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에서는 중국 외교관 4명이 이 문구를 빼기 위해 파푸아뉴기니 외무장관실에 난입했다는 보도도 있었지만, 중국의 겅솽 외교부 대변인은 “속셈 있는 사람들이 만들어낸 헛소문”이라고 일축했다. 그리고는 사상 처음으로 무산된 공동성명의 책임을 미국에 돌렸다. 중국이 공동성명 채택을 반대한 이유에 대해 “불공정한 무역관행이라는 문구 때문만은 아니며, 미국 우선주의가 이 같은 결과를 초래했다”고 주장했다.

또한 “중국은 WTO 개혁에 3대 원칙을 주장하고 있다”면서 “이는 WTO 기본 원칙을 훼손해서는 안 되고, 개발도상국의 합리적인 요구를 고려해야 하며, 상호 존중과 평등을 기초로삼아 질서있게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런데 “중국과 달리 미국은 매우 흥분하고 화가 난 상태에서 APEC 정상회의에 참석했다”면서 “미국 측 발언은 이견을 불러일으키고, 갈등을 만들고, 평화로운 회의 분위기를 망쳤다”고 비판했다.

한편 겅솽 대변인이 지적한 미국의 이러한 태도는 전략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일본 니혼게이쟈이는 19일 보도를 통해 “트럼프 대통령 대신 APEC 회의에 참석한 펜스 대통령이 철저하게 악역을 했다”고 한 것이다. 중국의 불공정한 무역관행, 지식재산권 절취, 국영기업에 대한 보조금 지급, 무분별한 일대일로 차관 지급 등을 놓고 거친 말을 퍼부은 것은 협상 우위를 점하기 위한 중국 압박용이라고 분석했다.

이렇게 미중 정상회담을 앞두고 무역 협상 우위를 차지하려는 양국의 전략 때문에 APEC 정상회의를 공동성명 채택없이 마무리되는 초유의 사태를 맞이했다.

◆ 다음 달 초 열리는 미중 정상회담 전망은?

다음 달 초 G20 정상회의를 기해 열리는 미중 정상회담에서 과연 그간의 무역분쟁이 해소될 수 있을까? 대체로 협상이 어렵다고 보고, 합의가 되더라도 일시적 긴장완화에 그쳐 양국의 마찰은 내년에도 계속 되며 장기화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지난 16일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백악관에서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중국이 합의를 원한다”며 “그들이 142개 항목에 달하는 타협안을 제시해 왔다”고 말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중국과 무역 분쟁에서 우위를 차지하고 있다고 판단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무역분쟁 이후에도 미국 경제는 탄탄한 성장세를 유지하고 있지만 중국은 성장세가 둔화되는 추세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중국을 압박해 양보를 얻어낼 수 있다고 보고 중국 측에 실무협상 전에 양보할 타협안을 먼저 제시하라고 요구한 것이다. 이에 중국이 142개의 타협안을 제시한 것인데, 과거에 중국이 내놓은 타협안에서 크게 나아지지 않아 협상 타결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즉 미국이 중국 측에 요구하는 ‘기술 이전’, ‘지적재산권 절취’에 관한 핵심 내용이 빠져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이 제시한 142개 양보안은 아직은 받아들일만 하지 않다”고 평가하면서 “그것은 꽤 완전한 목록이며 우리가 요구한 많은 것들”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3~4개의 큰 사안이 빠져 있으나 우리는 것도 또한 얻어낼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말한 ‘큰 사안’을 얻어내기 위해 미국측은 APEC 정상회의에서도 거친 언사를 보이는 등 계속 중국을 압박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트럼프 행정부의 중국에 대한 압박에도 불구하고 일시적 합의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 미국 내부에서 나오고 있다. 미국의 투자은행 모건스탠리는 18일 발표한 미중 무역대화 전망보고서에서 양국 간 ‘일시적 긴장 완화’를 전망했다. 중국의 시진핑 주석이 기업의 자신감 상실과 경제성장 둔화의 핵심요인이 미국간 통상 갈등 때문이므로 미국과 무역대화를 서두르고 있고, 중국 고위관리들은 미국의 불만 사항인 중국의 국유지원에 대해 혜택을 축소하겠다는 발언을 하는가 하면 시 주석은 지식재산권 보호를 다짐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근본적인 합의와는 거리가 있기 때문에 일시적 합의가 있더라도 향후 무역분쟁은 긴장이 고조되는 쪽으로 펼쳐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이와 비슷한 맥락에서 미국 전략문제연구소(CSIS)의 중국 전문가인 스콧 케네디는 ‘합의’기 되더라도 엄밀한 의미의 합의가 아닐 것이라고 말했다.

따라서 당초 미중 간 무역분쟁 발생 당시 나왔던 ‘장기화될 것’이라는 전망처럼, 미중 무역 문제는 쉽사리 해결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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