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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워커_김태연 기자] 삼성전자가 11년을 끌면서 사회적 고통을 남긴 삼성전자 백혈병 사태에 대해 공식 사과했다.

또 지난 7월 조건 없는 조정 수용을 기반으로 한 조정위원회 중재안에 대한 내용을 다시 한 번 확고히 했다.

이로써 지난 2007년 시작된 ‘삼성전자 반도체 백혈병’ 사태의 분쟁이 마침내 마침표를 찍게 됐다는 시선이 나온다. 삼성이 보상대상자들에게 전하는 공식적인 사과문은 사실상 이번이 처음이고, 지원보상위원회를 통해 피해자 측과 합의한 보상 및 지원을 구체적으로 이행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확실한 것은 유가족과 피해자들에게 삼성의 이 같은 사과와 전향적 태도는 극명했던 비극의 사슬과 억울함이 풀리는 순간이 될 수 있다.

삼성 역시 글로벌 평판에 치명적 오점으로 작용한 ‘죽음의 공장’이라는 긴 꼬리표를 이제 막 떼어낼 수 있는 사안이 될 수 있기도 하다.

다만, 이번 삼성의 조치를 바라보는 각양각색의 시선 속에는 이런 말도 나온다.
“이렇게 질질 끌 사안이 아니었는데, 왜 이제야”

“세계 초일류 회사인 삼성의 반도체 공장 직원들이 백혈병으로 사망하고 있다”라는 이야기가 괴담이 아닌 사실로 자리 잡기까지는 11년이라는 엄청난 세월이 소모됐다.

유가족과 피해자들의 눈물과 고통도 긴 세월에 비례했다. 그동안 반올림에만 320명의 노동자들의 직업병 의심 사례가 접수됐고, 그중 118명의 노동자들이 투병 끝에 사망했다.

삼성 반도체의 근무환경과 백혈병의 연관관계에는 노동자들의 존엄과 노동권이 담긴 문제였던 만큼 초민감성에 기반해 빠르게 책임을 인정해야 했음에도 삼성은 긴 세월 내내 일방적인 소통방식에 가까운 태도를 취해왔다.

지난 7월부터 삼성이 백혈병 분쟁을 봉합하는 과정은 마땅히 이행해야 할 시대적 과제에 불과하다. 그동안 삼성이 취해온 분쟁 해결 방식의 무게는 노동자들이 11년 동안 인과관계를 밝히지 못해 무고한 목숨을 잃어간 성질에 비해 단출했고 단순했다.

따라서 삼성이 이제와 보상방안 이행 등 확고한 태도를 지향하고 있다고 해서, 유족 및 피해자들과 삼성이 완전한 사회적 합의를 이뤄내는 끝맺음으로 바라볼 수는 없다. 삼성의 사과와 이행 방안 등 전향적 태도는 겨우 시작점에 불과하다.

삼성은 여전히 산재 검증 절차와 관련된 작업환경측정결과보고서를 모두 공개하지 않겠다며 각종 행정소송을 제기하고 있는 상태로 드러났다.

이는 노동자가 작업장 내에서 유해물질에 노출된 정도를 기재한 내용을 담고 있어 산재 처리과정에서 업무 관련성을 판단하는 데 중요한 논거가 된다. 삼성의 이같은 소극적 행보는 백혈병 분쟁 사태에서 사과와 보상 방안을 이행하겠다는 전향적 태도의 진정성을 퇴색시키는 사안으로 보인다.

지금 이 순간에도 삼성전자 외 다른 전자계열사들의 노동자들은 건강권의 사각지대에 밀려 나 있다. 삼성은 사회적 책임 일환으로 근로자들의 노동 조건을 보장하는 자세를 취하겠다고 했지만 계열사마다 처우 개선 동향은 여전히 제각각이다.

삼성이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자 한 계기에는 백혈병 분쟁 사태로 인해 조각난 삼성의 신뢰와 평판을 다시 끼워 맞추기 위한 성질이 담겨있으리라 믿는다. 삼성의 공식적인 사과와 전향적 태도가 단지 백혈병 사태를 수습하는 임시방편형 매듭에 그치지 않으려면 근로자들의 노동 권리를 보호하고 또 다른 산재를 예방하는 방향을 촉진시켜야만 한다.

그동안 백혈병 분쟁 사태가 삼성의 ‘격’과 동 떨어진 것이었다면, 이제 삼성은 글로벌 기업의 격에 맞는 선진 시스템과 근본적 산재 예방 체계를 구축해 나가야 할 것이다. 모든 노동자들이 직업병으로부터 안심할 수 있는 노동환경을 선사하는 것만이 삼성의 ‘격’을 올리는 것이자 삼성이 추구해야 할 방향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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