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력업체·건설사 모두 발을 빼던 시기, 자금줄 막힌 조합은 사업포기 일로까지

<침체라는 긴 터널 빠져나온 부산재개발>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 이후 전국의 부동산시장은 침체일로로 돌아섰다. 특히 부산은 과도한 주택공급물량으로 인해 위기의 불씨를 안고 있던 곳으로 이미 2006년 재개발수주전이 들끓던 때부터 일각에서는 위험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됐던 곳이다. 그 폭발의 도화선이 미국발 금융위기였다.

이후 부산의 재개발·재건축사업은 끝을 장담할 수 없는 침체에 들어갔다. 이로 인해 사업을 준비했던 곳은 물론 이미 사업이 추진되던 지역까지 힘든 시기를 겪게 된다. 하나 둘 협력업체가 떠나기 시작했고, 건설사까지 지원하던 자금을 일순간 중단해버리는 사태까지 벌어진다. 설상가상으로 2009년 초부터 불기 시작한 조합설립무효소송은 부산 재개발 재건축을 더욱 피폐하게 만들었다. 곳곳에서 조합설립무효소송이 제기되고 연이은 조합(인·허가청)의 패소로 사태악화의 정중앙에 들어서게 된다.

건설사에서는 언제일지 모를 시장 활기를 기약하지 못해 조합에 자금줄을 막고, 조합을 더욱 힘들게 했고, 2006년 문전성시를 이뤘던 재개발·재건축조합은 개점휴업사태로 까지 갔다.

그날을 회상하는 조합장들은 “정말 말도 못하게 힘들었다”고 했다. 한 조합장은 건설사가 자금줄을 막자, 사무실 운영은 해야 해 자신이 가진 차까지 팔아가며 운영비로 충당하는 현상까지 일었다.

이런 시기 대우건설은 달랐다. 조합이 힘들면 대우건설도 힘들다는 생각으로 2009년부터 최소한의 비용이지만 조합에 운영비를 지급하게 된다. 그 힘들었던 시기를 지나온 조합에게는 단비와 같았다고 한다. 부산시 남구 용호동을 재개발하는 용호2구역재개발 김영재 조합장은 “정말 대우건설이 아니었으면 지금까지도 고통의 터널을 빠져나오지 못했을 것이다”고 회상했다. 김영재 조합장은 “아직도 다른 건설사가 수주 한 현장에서는 운영비를 충당하지 못해 허덕이고 있다”며 “그들이 우리를 보면 너무 부러워한다”고 말했다.

용호2구역의 김영재 조합장과 차대호 이사는 모든 자금이 끊긴 시기 서로가 의지하며 하루하루를 보냈다한다. 하지만 더 이상은 안 되겠다 싶어 두 사람이 무거운 몸을 끌고 부산 본사에 하소연하러 갔다한다. 그 때 만난 사람이 이한승 소장이었다. 이 소장은 당시 본사에서 출장차 근무하고 있었는데 부산에서 서울까지 힘든 몸을 이끌고 올라온 두 분을 그냥 보내드릴 수 없어 따뜻한 점심 한 끼 대접하며 ‘자신이 부산에 내려가 용호2구역을 맡아보겠다’고 말했다는 것이 김영재 조합장의 말이다. 그런데 실제 거짓말처럼 들렸던 이 소장의 말이 얼마 후 현실로 나타났고 조합 운영비까지 받게 돼 너무 고마웠다고 한다.

※기사 후기: 대우건설의 부산성공스토리를 진행하게 된 것은 조합측면에서나 마케팅적 측면에서 또한 사업측면에서도 의미가 깊다. 당시까지 부산의 재개발에 대한 인식은 마이너스 100%에 가까웠다. 하지만 당리재개발과 다대1주공은 철거가 끝난 상태에서 사업이 미뤄진다는 것은 끝 모를 손실을 감내해야 함과 같다. 조합원 입장에서는 왜 사업을 진행하지 않느냐라는 볼멘소리가 나올 만 했다. 하지만 건설회사 입장에서는 분양 후 발생하는 리스크는 기업이미지 훼손뿐 만 아니라 관리비용과 건설비용까지 떠안아야 하기 때문에 추진할 수 없었던 상황이다. 그 속에서 조합과 건설회사가 서로 신뢰 속에서 합의점을 찾아 굳은 의지로 진행했기에 지금의 성공이 있었다고 평가된다. 결국 이 글의 요지는 자신을 낮추고 양보하는 마음 커야 한다는 것이다. 조그마한 이익에 묶여 이도저도 못하는 꼴이 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합일된 마음으로 사태를 극복해야 한다는 것을 부산의 ‘푸르지오’ 성공스토리가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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