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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워커_김영욱 시사칼럼니스트] ‘영리병원(營利病院)’이란 어원 그대로 영리를 목적으로 기업이나 민간 투자자의 자본으로 세워진 병원을 말한다. 투자개방형 병원이라고 한다.

비영리 기관으로 운영되는 다른 의료기관과 달리 주식회사처럼 투자를 받고 투자자는 병원 운영으로 생긴 수익금을 회수할 수 있다.

영리병원은 외국 자본과 국내 의료자원을 결합해, 주로 외국인 환자들에게 종합 의료서비스를 제공한다.

여태까지 우리나라는 의료법상 의료기관을 개설할 수 있는 조건은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 의사, 비영리법인 등이다. 반면 영리법인은 의료기관을 개설할 수가 없다. 다시 말해 우리나라에서 영리법인은 의료사업을 행할 수가 없다.

현재 국내 민간병원은 모두 비영리 의료법인으로 병원에서 나오는 이익은 연구비·인건비 등 병원에 재투자해야 한다.

그런데 지난 5일 제주도 서귀포시 토평동에 한국 최초의 영리병원이자 외국인이 이용하는 ‘녹지국제병원’ 의 개설이 허가되면서 논란이 되고 있다
 
원희룡 제주지사는 이날 내국인 진료는 금지하고, 제주를 방문한 외국인 의료관광객만을 대상으로 하는 조건부 개설을 내줬다.

원 지사는 제주 지역경제 살리기는 물론이고 이번에도 불허할 경우 1,000억 원대 손해배상 소송에 휘말려 한·중 외교문제로 비화하게 될 후유증까지 고려한 불가피한 조치를 단행한 것으로 보인다.

녹지국제병원은 2015년 정부 사업승인을 받아 작년 7월 준공한 후 개원 허가를 신청했으나 지금까지 여섯 번이나 퇴짜를 맞았다. 의료 공공성을 내세운 일부 시민단체와 주민들의 반대 때문이다. 지난 10월 공론조사위원회도 조사결과를 근거로 ‘불허’를 권고한 바 있다.

해당 병원의 진료과목은 성형외과·피부과·내과·가정의학과 등 4개 과로 한정했으며 병상이 47개에 불과한 소형 병원이다, 물론 국민건강보험과 의료급여법은 적용되지 않는다.

이같은 ‘조건부 개설 허가’가 발표되자 대한의사협회와 보건의료단체 등은 “의료 영리화의 신호탄이 될 것”이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공공의료체계 붕괴, 진료비 상승 등으로 인한 의료 양극화 등을 우려한다는 논거다.

문제는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외국인 의료관광객만 진료한다는 ‘조건’만으로 영리병원 확대를 막을 수 있느냐다.

의료계 한 전문가는 “병원 운영이 어려워지면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내국인 진료도 허용해달라고 요구할 테고, 다른 의료 자본들이 영리병원 설립에 필요한 법·제도 변화를 요구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첫 영리병원의 비싼 진료비 등 ‘나쁜 경영 행태’가 다른 병원에도 전파되는 ‘뱀파이어 효과(vampire effect)’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다. 

뱀파이어 효과란 흡혈귀에 물리면 흡혈귀가 되는 것과 같이, 하나의 영리병원이 생기면 그 근방의 다른 비영리병원의 의료비까지 동시에 올라가는 현상을 일컫는 말이다. 실제로 의료 민영화제도를 채택하고 있는 미국에서 이 효과가 입증된 바 있다.

영리병원의 상업적인 진료 행태를 일반 병원이 따라가다 보면 소모적인 의료비가 더 늘어날 수 있고, 나아가 건강보험체계까지도 뒤흔들 수 있다. 영리병원은 진료비를 마음대로 정할 수 있다.

미국에서는 영리병원 진료비가 비영리병원보다 19%가량 비싸다. 영리병원은 인력도 적게 뽑는다. 녹지국제병원도 총 134명을 채용했는데 이 중 의사·간호사 등 의료 인력은 58명에 그쳤다.

영리병원이 확대될 물꼬가 트이면서 한국 의료체계 전반이 무너질 가능성이 커졌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 시절에 ‘병원의 영리법인 설립 금지’를 공약했다. 제주도 영리병원 설립에 반대한다는 뜻도 밝혔다.

문재인 정부는 의료 영리화에 반대한다는 견해를 표방했지만, 제주도의 녹지국제병원 개설 허가 과정에선 손을 놓고 있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외국인들은 국내에서 최상의 진료를 받는 반면 우리 국민은 돈뭉치 싸들고 외국행 비행기를 타야만 하는 모순이 안타까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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