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년 여만의 재수사로 진실의 숨통 트게 된 ‘장자연 사건’

▲ 고 장자연씨의 이야기는 누구에게는 케케묵은 얘기지만 또 누구에게는 이 시대 슬픔을 대변하는 아이콘일 수도 있다. 다시 들춰내는 그 사건들 안에서 우리는 무엇을 봐야 하는지 생각해 볼 때이다. <그래픽 황성환 뉴스워커 그래픽 1담당>

[뉴스워커_김태연 기자] 진실이 묻힌 채 공멸할 뻔한 사건이 있다. 바로 연예계 성상납 실태를 고발하고 세상을 등진 고(故) 장자연씨의 얘기이다.
장자연 사건은 진실과 마주하려 할 때마다 큰 좌절에 부딪힐 수밖에 없었다.
당시 검찰은 성 상납을 받은 것으로 지목된 유력인사들을 무혐의 처분했고 이는 명백한 권력형 비리로 정의됐다.

그러나 사건은 기득권 세력의 어두운 배후와 그로부터 나타난 왜곡 세력의 철저한 외압으로 더 처절한 상흔만 남긴 채 그대로 종결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사건의 실태를 꼿꼿이 마주하려 한 대중들의 바람은 사건이 종결된 이후 9년여의 긴 세월 동안 퍼즐처럼 흩어져 있던 진실의 조각을 맞추려는 결의로 변모했다.
또한 사건은 ‘#미투’ 운동 확산 기류로 나타난 성폭력 고발의 초점이 담긴 궤를 함께 이어가면서 담대한 진실의 탑을 쌓고 있는 시점이다.

고인이 그토록 밝히려 했던 진실과 얼룩진 권력형 비리에 대한 사법정의를 실현시키고자 사건은 재수사를 통해 마침내 권선징악적인 구조를 형성하고 있다.
뉴스워커는 시사 기획을 통해 장자연씨의 얘기를 다시 꺼내들려 한다. 기획1을 통해 ‘진실이 묻힌 채 공멸될 뻔한 고(故) 장자연 사건이 사회에 던진 의의’ 편에서는 장자연 사건을 잊지 않기 위해 시계추를 되돌려 사건을 기억하고 그 의의를 되새기는 시간을 가지려 한다. <편집자 주>

◆ 증거 누락과 왜곡, 부실 수사 등..진실 가려진 채 그대로 종결되다

장자연 사건은 지난 2009년 메이저 언론사, 연예 기획자 관계자, 기업인 등에게 성접대를 했다고 폭로한 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연예인 고(故) 장자연 씨의 사건이다.
이 사건이 권력형 비리로 정의된 데는 당시 문제가 된 검찰의 부실 수사가 권력형 외압세력에 의해 주도되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당시 검찰은 장씨 소속사 대표와 매니저만을 폭행 및 협박 혐의로 재판에 넘기고 성 상납을 받은 것으로 지목된 유력 인사들은 무혐의 처분했다.

이로 인해 사건은 당시에도 부실 수사 논란이 일었지만, 권력형 비리가 경찰의 미온적 수사와 맥을 같이 하면서 진실을 규명하려는 절차 한 번 제대로 밟아보지 못한 채 그대로 종결될 수밖에 없었다.
장자연 사건의 진상 규명은 9년여라는 긴 세월 동안 여전히 초점을 맞추지 못하는 부분이 있는데, 당시 수사 과정에서 문제가 된 주요 증거 누락과 왜곡 등 경찰의 미온적인 수사 방식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지난 10월 28일 장자연 사건 중간조사 발표에 따르면 2009년 3월 경찰 압수수색 과정에서 장 씨 수첩 등 자필 기록과 명함 등 장 씨 행적을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증거가 초기 압수수색 과정에서 상당 부분 누락된 사실이 확인됐다.
조사단에 따르면 사건 당시 경찰이 장씨 주거지와 차량 압수수색을 하는 데 걸린 시간이 고작 57분밖에 소요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는데, 이 대목은 경찰의 미온적인 수사에 대한 의혹을 뒷받침하고 있다.

압수물 또한 컴퓨터 본체 1대, 휴대전화 3대, 메모리칩 3점, 다이어리 1권, 메모장 1권, 스케치북 1권이 전부였기에 당시 사건을 맡은 경찰이 과연 수사에 ‘확고한 의지’를 보였는가에도 의구심이 번진다.
증거누락 의혹으로 지적되는 부분은 이뿐만 아니다.
조사단은 장씨가 평소 글을 쓰거나 메모하기 좋아해서 침실 여기저기에 수첩과 메모장이 많은 것에 대해 거론했다.

그러나 2009년 수사 당시 경찰은 증거물을 모두 압수하지 않고 다이어리 1권, 메모장 1권만 압수했다. 또 장씨 휴대품 안에 명함이 있었음에도 이를 압수하지 않은 것도 석연치 않은 점으로 거론된다.
특히 명함은 성명, 주소, 신분 따위를 적은 자료로 장씨 성상납 상대를 밝힐 수 있는 중요한 증거 자료가 됨에도 불구하고 이를 증거자료에 포함하지 않은 것은 증거 누락에 대한 소지가 다분한 대목이다.

이처럼 장자연 사건은 당시 경찰의 미온적 수사 형태에 착안해 보더라도 보이지 않는 외압세력과 진실을 가리려 한 교묘한 권력형 비리가 다수 얽혀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재수사가 진행되고 있는 시점에서 단순한 참고인 조사 등에 그친다면 증거 누락, 권력형 비리와 외압, 미온적인 수사 등에 대한 문제제기와 관련자 처벌이 이뤄지기 어렵다.

따라서 관련자들을 소환해 감춰져 있던 비리와 억압을 낱낱이 들춰내 문제를 제기함으로써 고인의 억울함과 매장된 진실들을 규명할 수 있어야 하는 시점이다.

◆ 연예계 성상납 실태를 폭로하는 기폭제로 변모하다

장자연 사건은 연예계의 어두운 이면 중 하나인 ‘성상납’이라는 불합리한 구조를 꼬집고 사회적으로 경종을 울린 데 의의가 있다.
성상납은 비대칭성 권력구조와 결합되어 있어 병역비리, 마약, 도박 등 연예계의 수많은 문제 중에서도 가장 밝혀지기 힘든 문제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장자연 사건을 필두로 권력형 비리가 얽힌 연예계 성상납 실태를 고발하려는 기류가 확산되면서 연예계의 어두운 이면은 지금도 수면 위로 드러나고 있는 시점이다.
실제 2013년 3월 방영된 ‘표창원의 시사 돌직구’ 방송에서는 세 명의 여자 연예인이 출연해 연예계 성상납이 실제 존재한다는 점을 알리면서 사회에 충격파를 던졌다.

또 한 연예인은 유력 인사로부터 술자리를 거부했다는 이유로 연예계에서 퇴출당할 수밖에 없었던 사연을 소개해 권력형 비리의 실태를 꼬집었다.
성상납은 힘이 없는 무명 연예인들에게 방송출연 등 소위 ‘뜰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는 대가성으로 성을 요구하는 구조다.

아무리 대가성을 바친다고 해도 그 과정에는 비대칭성 권력 구조를 이용한 착취와 인격 유린 등의 문제, 포주와 성 착취 구조를 일컫는 성매매의 구조적 문제 등이 내재되어 있다.
이 때문에 장자연 사건은 연예계의 어두운 이면을 낱낱이 고발하게 하고 권력형 비리의 중심에 있는 관련자들을 처벌할 수 있는 기폭제로 변모한 것으로 의의를 둘 수 있다.

◆ 미투운동 확산, 장자연 사건의 ‘권력형 성폭력’ 고발 위한 진실의 궤 맞춰나가다

장자연 사건이 오늘날에서야 다시 재조명될 수 있었던 것에는 미투운동의 영향이 크다고 할 수 있다. 올해 초 서지현 검사 성추행 사건을 필두로 미투운동이 확산되면서 이제 장자연 사건은 미투운동의 중심이 됐다.
이에 따라 진실을 철저히 규명할 수 있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장자연 사건의 진상 규명을 요구하는 관련 청원도 20만 명을 돌파한 시점이다.

미투운동은 그간 장자연 사건처럼 여성들의 분노와 좌절이 맺힌 성폭력의 현주소를 꼬집어냄으로써 권력형 성범죄에 숨죽이던 여성들이 목소리를 내고 합당한 명예를 회복하려는 기류로 확산되고 있는 시점이다.
이처럼 장자연 사건은 권력형 성범죄의 폐단을 상징함으로써 우리 사회에 단순히 휘발되고 마는 사건이 아닌 게 됐다.

지난 11월 5일부터 사건의 재수사가 시작된 시점이지만 여전히 갖은 외압과 관련자들의 무혐의 결론을 뒤집어야 하는 사법적 장치 마련의 고심 등으로 사건과 관계된 인물들의 합당한 처벌과 진상규명은 힘겨운 숙제가 되고 있다.
은폐되지 않을 진실을 사수하기 위한 대중들의 염원과 검찰의 수사 의지가 보다 명확히 촉구되어야 하는 시점이다.

※ 뉴스워커 시사기획 고 장자연씨가 남긴 것, 2부에서는 장자연 사건 관련자를 주목하고 언론사 사주 등에 대한 의구심을 보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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