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의료정보는 개인정보의 종합체라 할 수 있다. 그 만큼 많은 정보와 세세한 개인정보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한데, 이런 의료정보가 허술하게 다뤄지고 있다면 당신은 어떤 생각이 들 것인가. <그래픽_황성환 그래픽 1담당>

[뉴스워커_김태연 기자] 4차산업혁명이란 거대한 변혁을 마주한 오늘날이지만 화려한 발전상 뒤로 국민들의 근심 걱정도 늘고 있다. 정보 활용이 맹점이 된 기술혁신을 뒤따라가지 못하는 정보 보안 문제와 개인정보에 관한 낮은 감수성은 수많은 개인정보 유출 사태를 막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개인정보 가운데에서도 가장 각별히 관리되어야 하는 것은 의료정보다. 의료정보는 개인의 단순한 인적사항부터 구체적인 치료정보 등이 담긴 개인 정보의 결집체다. 또한, 의료정보는 4차산업혁명을 선도할 빅데이터 기술, 그에 따른 개인맞춤 진료의 발전 속에 깊이 편승돼 있다.

이처럼 국민의 귀중한 의료정보는 진료와 검사 정보 그 이상의 유의미한 정보로써 작용하고 있다. 따라서 의료정보 누출에는 더욱 각별한 신경을 기울여야 하기에 “의료정보에 소유권 개념이 형성되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등장한 지 오래다.

이렇듯 특별한 관리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는 의료정보지만 최근 한 매체의 취재 결과에 따르면 경찰이 수사를 위해 일부 여성들의 의료정보를 사전 동의 없이 전용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각종 커뮤니티 등의 공분이 거세지고 있다.

보도에 따르면 경찰은 지난해 9월 A산부인과에서 낙태 수술을 한다는 진정을 접수한 후 11월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받아 건강보험심사평가원으로부터 해당 병원을 이용한 여성 26명의 인적사항과 의료정보 등을 확보한 것으로 드러났다.

실제 경찰의 낙태죄 수사 과정에서 취조를 받은 일부 여성들은 본인의 의료정보를 경찰이 어떤 경로로 확보했는지에 대해 의구심을 드러낸 바 있다. 이들 중에서는 낙태 수술과 관련이 없음에도 개인의 산부인과적 질환 등에 대한 사항을 경찰에 설명해야 한 것으로 전해진다.

정부 기관인 경찰이 여성 건강권과 맞닿은 의료정보를 사전 동의 없이 전용한 것은 경찰의 본분에 가깝다는 점에서 문제가 없다는 일각의 의견도 있다. 형법상 진정이 접수된 후 수사 단계를 밟는 것은 경찰의 기본 사명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사건은 단순히 수사를 위해 개인의료정보를 전용했고 문제가 없다는 식으로 받아들여지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실제 헌법재판소 ‘헌재 2018. 8. 30. 2014헌마368’ 판례에 따르면 “수사기관이 요청하더라도 의료정보를 제공하는 공단 등은 병원 진료 내역 등이 담긴 의료정보를 무조건 제공해서는 안 된다”며 기본권 침해의 직접성 인정 판단 아래 위헌 판결을 내리기도 했다.

이처럼 의료정보는 개인정보자기결정권과 결부된 소지가 크다. 하지만 오늘날 의료정보에 대한 자기결정권과 소유권 개념은 별도 법령에서조차 규정돼 다루어지지 않고 있다. 이는 이번 사건과 같이 개인 의료정보를 정보 주체 동의 없이 열람, 전용함으로써 건강권을 위협하는 형태가 언제라도 나타날 수 있다는 잠재위험을 보여주는 사안이다.

4차산업시대로 갈수록 개인의 의료정보는 사회 각 도처에서 대량으로 생성·활용될 수밖에 없다. 이는 공권적 판단 아래 각종 국가기관에서 의료정보가 무분별하게 열람될 여지를 낳는 사안이다. 의료정보가 무분별하게 열람 또는 노출됨으로써 국민 건강권이 침해되는 상황이 초래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의료정보는 신중론 속에 각별히 관리될 필요가 있다. 나아가 의료정보 취급방침이 적정성을 갖추고 있는 지에 대해서도 깊은 논의가 생성될 필요가 있다. 이 모든 것은 “의료 정보의 정보 주체가 ‘국민’이다”라는 소유권 개념이 확고히 정착되는 것에서부터 시작될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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