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내외 다양한 아티스트와의 교류를 통해 한국 연극계에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고자 노력하는 (재)국립극단은 한국과 일본을 넘나들며 평단과 대중의 호평을 동시에 받고 있는 정의신 작가·연출가와 협력을 통한 합작공연을 올린다.
소래강 제일 하류에 위치한 남촌도림동 지명의 어촌. 북쪽은 논밭, 남쪽은 <백만 평 앞바다>라고 불리는 광활한 황무지가 펼쳐있으며 그 너머는 바다다. 황무지와 바다로 고립된 이 작은 동네에 사는 사람들의 생활은 남루하다. 망가지고 볼품없는 배를 강매하는 할아버지, 매일 격렬하게 싸우면서도 도박판에서는 사이좋은 부부, 첫사랑을 잊지 못하고 배에서 홀로 살고 있는 늙은 선장, 부모에게 버림받고 길에서 음식을 주워 먹으며 무덤가에서 뛰노는 소녀, 영화를 처음 접한 아이, 힘 쓰는 일 외에는 할 줄 아는 게 없는 일용직 노동자...그들은 무례하고 무지하며 노골적이다. 이 작품에는 특별한 사건이 없다. 가난한 마을 속에서 본능적으로 삶을 살아가는 각자의 사연이 소란스럽게, 또는 담담하게 펼쳐질 뿐이다. 그러나 그들의 뻔뻔한 삶 속에는 인간 본성에 숨겨진 야성과 생활력이 자연스럽게 녹아있다. <푸른배 이야기>는 30년 전, 이 가난한 어촌마을에서 3년 동안 머물렀던 작가가 다시 이곳을 찾아가면서 마을 사람들의 삶을 옴니버스 형태로 이야기한다.

개성이 뚜렷한 마을 사람들은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삶을 비관하지도 않는다. 순간순간 본능적으로 생활할 뿐이다. 하지만 작가는 저질스럽고 교활해 보이기도 하지만 그 이면에 존재하는 소박하고 순수함을 주목한다. 더럽고 누추한 옷이 벌어진 틈으로 보이는 그들의 육체는 건강하다. 그것은 본능에 충실한 순진함이요, 삶에 가장 가까이에 밀착된 생활력이다. 정의신은 그들만의 삶으로 특수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가진 자연 그대로의 꾸밈없는 본성과 생을 대하는 자세에 에 대한 이야기로 확대시킨다.

기억하는 방법으로 삶을 증명하려는 의지

30년 만에 찾아간 마을은 달라져 있었다. 매춘금지법으로 뚝방집은 망했고 양식집은 여관으로 변했으며 강변에 있던 수풀이나 황무지 터에는 아파트들이 들어섰다. ‘나’는 예전에 자신이 살았던 집터를 찾아보지만 그것도 여의치가 않다. 마을 사람들도 마찬가지. 사람들은 죽거나 타지로 떠났고 남아있는 이들도 ‘나’를 기억하지 못한다. 자의든 타의든 삶터를 잃어버리고 내 삶을 증명해줄 사람조차 없는 상황에서 내가 의지할 수 있는 건 기억뿐이다.

산업화와 현대화는 삶 터 뿐만 아니라 삶의 부분까지 지운 셈이다. 그러나 작가는 슬픔과 회환으로 좌절하는 대신 기억하고 기록하는 방법으로 지나간 것들을 마주하고자 한다.

“잊을 리가...잊을 수 있다면 슬퍼지지 않고, 잊을거면 쓰지도 않아. 저 동네를 생각하면 지금도 이 가슴에 등불이, 먼 앞바다 배에서 켜지는 것과 같이 작은 불이 켜지고 아주 조금 따뜻하고 훈훈한 기분이 들어. 잊지 않아. 저 동네는, 저 동네 사람들은 내 안에서 지금도 살아있어.”

<푸른배 이야기>는 야마모토 슈고로의 소설 <아오베카 모노가타리>에서 정의신이 모티브를 얻어 무대공연으로 형상화한 작품이다. 소설 속에서 백만 평의 넓은 갯벌을 가진 소박한 어촌마을은 현재 도쿄 디즈니랜드가 위치하고 있다. 정의신은 이를 착용, 인천시 남촌도림동을 <푸른배 이야기> 배경의 실제 모델로 삼았다. 소래길, 남동로, 호구포가 맞닿는 남촌도림동은 송도신도시가 개발되면서 구획정리 사업과 함께 전형적인 현대적 도시로 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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