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김영재 부산남구 용호2구역 조합장>

“낙후된 용호동에 푸르지오 들어선단 소문에 인식 달라졌다”

26대째 살고 있는 김 조합장, 구 시가지는 풍수학상 가장
좋은 입지가져, 이곳 개발되면 주거나 인프라 등 으뜸지역

 

그는 마도로스였다. 젊은 시절 오대양 어느 곳도 그의 뱃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었다. 그는 선장이었다. 넓은 가슴으로 바다를 안았던 그가 지금은 472명의 조합원의 꿈과 염원을 안고 있다. 부산 남구 용호2구역재개발조합의 김영재 조합장. 그의 얼굴에 선명하게 새겨진 주름은 그의 깊은 삶과 힘든 재개발사업을 얘기해 주는 듯하다. 금융위기로 가장 힘들었던 2008년 6월에 조합장이 되었지만 그가 아끼는 애마까지 팔아가며 사무실을 운영해야 했다.

그래서 특별하다. 그는 대우건설이 참 고맙다한다. 더 이상 견디지 못할 만큼 힘든 시기에 대우가 옆에 있어주어서 말이다.
 

-대우를 어떻게 생각하나/

대우에 대해 긍지를 가지고 있는 편이다. 용호동에 대우 푸르지오가 생긴다는 소문이 퍼져 용호2구역을 달리 보는 편이다.

-부산에서의 대우는/

대우건설은 부산 쪽에 조금 늦게 들어온 듯하다. 알다시피 롯데 등이 많이 활동해 사업지를 많이 선점했으나, 용호2구역은 사업이 늦게 추진되다보니 대우건설을 시공사로 선정하게 되는 좋은 일도 있었다. 자부심도 가지고 있는 편이다. 대우건설의 푸르지오가 들어온다는 것을 우리 지역뿐 아니라 주변 사람들도 상당히 원했다.

-대우에 대한 주민의 기대는/

상당히 큰 편이다. 가까운 예만 들어도 우리 남구(부산)에 몇 개 건설회사 들어와 있지만 모두 뒤로 물러나있다. 이것이 나쁘다는 말이 아니라 현실이 그렇다는 얘기다. 그래서 그곳 조합은 상당히 힘들어하고 있다. 하지만 대우에서는 남다른 시각으로 충분히 된다는 일념으로 용호동에 투자하고 있다. 일례로 인근에 LG메트로시티아파트가 7000세대며 이제 푸르지오가 들어설 때면 LG아파트는 15년 이상이 된다. 우린 1000세대기 때문에 그쪽 주민 중 5~10%만 움직여도 충분히 승산이 있는 곳이 이곳이다.

-용호동은 어떤 곳인가/

사람 사는 곳은 참 좋은 곳이다. 용호동은 산으로 둘러싸여 이곳을 ‘복주머니’라고 부른다. (이 부분에서 인터뷰 참관인으로 있던 차대호 이사가 말을 곁들였다. 차 이사에 따르면 이곳이 복주머니 지형을 갖다보니 다른 곳에서 사업이 어려워 들어오게 되어도 이곳에서 다시 재기의 발판을 마련한다는 것이다. 차 이사의 요지는 이곳 땅이 풍수지리상 복 받은 지역이라는 것이다.) (다시 김 조합장의 말이 이어졌다.) 60년대 이후 부근 논·밭이 개발되면서 달라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기존 주거지는 낙후되어졌지만 대우가 들어오면서 위상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힘들었던 얘기 좀 해달라/

개인적인 이야기겠지만 2005년경에 재개발에 대한 바람이 불기 시작(그 당시 부산시에서는 재개발기본계획공람을 했다.)했지만 나는 사업에 관여를 하지 않았다. 그 후 2008년 6월에 조합 창립총회를 하면서 조합장으로 나오게 됐다. 주변의 많은 사람의 지지에 의해서였다. 고민은 많았지만 지지해주시는 분들이 많아 조합장에 당선됐다. (사무장이 차를 내왔다. 머리가 약간 벗겨진 남자가 차를 주니 다소 생소했다. 조합장은 “우리는 아가씨가 없다보니 사무장 차를 내온다면서 겸연쩍어 했다.)이렇다보니 추진위원장 하셨던 분이 다른 사람 이름으로 조합무효소송을 냈다. 이 때문에 1·2심 모두 조합이 패소했다.

(1심은 부담금에 관한 사항이었고, 2심에서는 일명 백지동의서 건이었다. 용호2구역은 대법원의 판결을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지만 지난 12일 서울 월계동재건축의 대법원 판결에서 ‘이 후 보완하면 유효’라는 판결을 내려 용호2구역은 문제없는 사업추진이 기대된다.)

(조합장의 말이 이어졌다.) 조합설립동의서는 추진위원회에서 징구했던 것이고 그 중심에 추진위원장이 있었는데 그 분이 이 같이 소송을 걸어 사업 뿐 아니라 모든 조합원을 힘들게 한다는 것은 이해하기 힘든 사항이었다. 이 때문에 갖게 됐던 고통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다.(이 사항에 대한 이야기는 15분 가까이 지속됐다. 그 만큼 그 문제로 맺힌 것이 많았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 이 이야기는 더 이상 쓰지 말아달라고 김 조합장이 부탁했다.)

-지금의 이한승 대우소장과 인연이 있었다고 들었다/

한참 힘들었던 시절이었다. 그 때 옆에 있는 차(대호)이사와 둘이서 서울 대우건설 본사로 찾아갔다. 너무 힘들어 하소연하기 위해서였다. (차 이사가 말을 거들었다. 차 이사는 부산사투리가 좀 더 강했다. 지금부터 차 이사의 말이다.)하도 답답해 무작정 본사로 찾아가니 마침 이한승 소장 저 양반이 우리를 반기더라. 우리가 부산에서 올라왔다하니 자기도 부산이 연고라며 우리에게 점심이라도 같이 한가락하자하더라. 그래가 얘기했지 우리가 이런 답답한 일이 있고, 힘드니 얘기 좀 들어 달라!, 그런데 이야기를 해보니 이한승 저 양반이 참 부드럽고 자상하더라. 그래 우리가 지나가는 말로 소장님이 우리 소장으로 왔으면 참 마음도 잘 맞고 좋겠다하니 이 소장 왈 “그래요! 그럼 내가 앞으로 소장한번 해 볼까요?” 하더라! 우리는 우스개 소리하는 가 했다만 그 뒤에 내려와 담당이 됐다. 그래가 유대가 있어가 자주 대화를 했다. 애로점 등을 얘기하고 그 뒤부터 잘 풀리더라! 그래 우리는 이 소장 저 양반을 상당히 고맙게 여기고 있다.(다시 김 조합장이 말했다.) 인근 지역 조합장끼리 가끔 만나 얘기도 하지만 그 분들 우리를 상당히 부러워한다. 비록 사업이 가진 않지만 운영비라도 지원되고 있어서.(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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