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선 노림수? 오히려 ‘무리수’ 될 듯

▲ 그래픽_뉴스워커 황성환 그래픽 1담당

[뉴스워커_국제정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15일(이하 현지시간) 멕시코 접경지 국경방벽 건설을 위해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했다. 민주당과 국경장벽 건설을 위한 예산문제로 갈등을 빚다가 35일 간이라는 역대 가장 긴 기간 동안 셧다운(연방정부 일시적 업무 정지) 사태가 이어지기도 했다. 15일까지 국경장벽 예산 문제에 대해 민주당과 합의하지 못할 경우 또 다시 셧다운 사태로 이어질 위기에 놓이자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이 요구한 57억 달러에 훨씬 못 미치는 13억 7500만 달러에 서명하고, 동시에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했다.

◆ 국가비상사태 선포로 국경장벽건설 예산 80억 달러 충당 가능

트럼프 대통령은 15일 “멕시코 국경 지역에서 벌어지는 마약, 폭력조직, 인신매매 등은 미국에 대한 침략”이라면서 국경장벽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리고는 곧바로 국가비상사태 선포문에 서명해 상․하원에 전달했다.

미국과 멕시코 국경은 3140㎞이며, 이중 1040㎞ 구간에만 장벽이 있다. 나머지 구간에도 장벽을 설치하겠다는 것인데, 의회가 승인한 13억 7500만 달러로는 약 88km 정도의 장벽만 설치 가능한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나머지 구간 설치를 위해 트럼프 대통령은 국가비상사태 선포를 통해 예산을 확보할 것으로 보인다. 구체적으로 군 관련 건설 사업 예산 36억 달러, 마약 단속 예산 25억 달러, 재무부의 자산몰수 기금 6억 달러 등 총 80달러를 더 충당할 것으로 보인다.

◆ 적법성을 둘러싼 소송 이어질 듯

상황이 이렇게 되자 민주당이 가장 먼저 반발했다. 펠로시 의장과 척 슈머 상원 원내대표는 성명을 통해 “대통령의 행위는 건국의 아버지들이 헌법에 부여한 의회의 돈지갑(예산) 권한을 명백히 위반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의회는 의회에서, 법원에서, 대중 속에서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해 헌법적 권한을 지킬 것”이라고 투쟁을 예고했다. 그러면서 국가비상사태 선포를 무효화하기 위한 상‧하원 공동결의안 채택을 추진하기로 했다.

이에 백악관은 국가비상사태를 무효화하기 위한 의회 결의안이 채택되더라도 트럼프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것이라고 밝혔지만 상‧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할 경우 대통령의 거부권이 의미가 없어진다. 하원에서 결의안이 통과되면 상원이 18일 이내에 표결을 하게 되는데, 상원에는 대통령 소속인 공화당이 더 많아 트럼프 대통령에 일견 유리해 보이지만 국경장벽 문제가 국가비상사태까지 선포할 사안을 아니기 때문에 이탈표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따라서 트럼프 대통령의 의도대로 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게다가 벌써부터 적법성을 둘러싼 소송 움직임이 있다. 민주당은 비상사태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 등 법적 소송을 예고함과 동시에 민주당이 위원장을 맡은 하원 법사위원회는 비상사태 선포 결정의 근거를 알아보기 위해 청문회를 열 예정으로 오는 22일까지 트럼프에 관련 문서를 제출하라고 요구했다.

비영리단체인 ‘퍼블릭 시티즌’은 컬럼비아 특별구 연방지방법원에 장벽 건설 지역의 토지를 소유한 3명을 대리해 소송을 냈다. 트럼프 대통령과 국방부가 다른 목적으로 배정된 자금으로 국경장벽을 건설하는 데 사용하지 못하게 해달라는 것이다.

공화당 내부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존 코닌 상원의원은 “권력 분립을 악용해 의회 관련 없이 특정 프로젝트에 돈을 쓰겠다는 건 중대한 헌법상의 문제”라고 지적했다. 랜드 폴 상원 위원도 “우리 정부는 권력 분립을 규정한 헌법을 갖고 있다”며 “세입과 세출 권한은 의회에 주어져 있다”고 말했다.

◆ 트럼프의 국가비상사태 선포 왜?

국가비상사태 선포는 미 헌법에 명시된 대통령의 권한이긴 하다. 1976년 의회가 전쟁 등이 닥쳤을 때 행정부가 위기에 빠르게 대처할 수 있도록 국가비상사태법을 만들었으며, 이후 비상사태는 52차례에 걸쳐 선포됐다. 대부분 1979년 이란 인질 위기, 2001년 9.11 테러 등 대외적인 문제였고, 국내 문제는 4번뿐이었다. 그나마도 1993~1994년 대량파괴무기(WMD) 억제, 2009년 신종플루(H1N1) 대응 등 초당적인 이슈였다.

그러니까 이번 사안은 비상사태를 선포하기에는 정쟁의 이미지가 크기 때문에 민주당과 공화당 내부, 시민 단체 등에서 국가비상사태 선포에 대한 반발이 심할 수밖에 없고, 심지어 CNN은 “국가비상사태 선포는 중대한 헌법 위반이 될 수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 자신도 이번 사안이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할만한 사안이 아니라고 인정하고 있다. 지난 15일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할 필요가 없었지만 미국-멕시코 국경지역에 빨리 국경장벽을 건설하기 위해 그렇게 했다”고 말했다. 또한 “과거 정부에서도 국가비상사태 선포가 있었다”며 “소송도 예상한다. 대법원에서 우리가 이길 것”이라고 말했다.

스스로 적법하지 않다고 인정한 셈인데, 그럼에도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한 이유는 무엇일까

일각에서는 재선의 노림수라고 분석하고 있다. 지지층을 붙잡아 두기 위해 장벽건설 카드를 쓴 썼다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달 장벽건설 예산을 두고 셧다운 사태까지 갔음에도 별 소득없이 펠로시 민주당 의장과 셧다운 종식에 합의하자, 미 언론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의 완패’라는 분석을 했다. 또한 2016년 대선에서 러시아와 내통했다는 의혹에 대해 민주당이 공세 강화하면서 트럼프 대통령이 수세에 몰리자, 자신의 대선공약이면서 핵심 현안으로 떠오른 이민 정책을 발판 삼아 재선을 노리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로 인해 정국이 혼란의 소용돌이 속으로 들어간 셈이어서 재선의 ‘노림수’가 오히려 ‘무리수’가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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