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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워커_국제정세] 심각한 경제난을 겪고 있는 베네수엘라에서 닷새째 정전이 이어지는 참사가 일어났다. 직접적인 원인은 베네수엘라 전체 전력 3분의 2를 담당하는 ‘엘 구리’ 수력발전소의 고장인데, 마두로 대통령은 발전소가 전자기 공격을 받았다고 주장하고, 임시 대통령을 자처한 과이도 국회의장은 정부가 전력망 유지에 실패했기 때문이라고 비난하고 나섰다. 결국 과이도 의장은 11일(이하 현지시간)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했다. 이로써 베네수엘라는 외국 군 개입으로 현 마두로 정권을 쫓아내고 정치․경제 등의 문제를 해결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 베네수엘라 대정전 원인은

7일 시작된 대정전은 베네수엘라의 거의 대부분 지역에 전력을 공급하는 남부 대형 수력발전소 ‘엘 구리’가 문제가 생겨 발생했다. 일부는 복구가 되기도 했지만 9일에 볼리바르주의 대형 발전소에서 원인 불명의 폭발이 발생하면서 전국 23개주 가운데 16개주에 전력이 공급되지 않고 있으며, 6개주는 부분 정전 사태를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9일 파이낸셜타임스(FT)는 이번 정전으로 “전 국토 96%가 암흑세계가 됐다”면서 “이로 인해 투석치료를 받지 못한 환자 15명이 숨졌다고 보도했다. 또 현지 언론 엘 나시오날은 최근 넉 달간 병원에 전기공급 차질로 79명이 숨졌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이 외에도 통신망이 끊겨 은행업무나 결제 기능이 마비됐고, 지하철 운행도 중단됐으며, 정전 때문에 주유소의 주유기가 작동하지 않아 차에 기름도 넣지 못하는 사태가 이어지고 있다.

남미 역사상 최대의 정전 사태를 두고 마두로 대통령은 미국의 지원을 받은 과이도 의장 세력이 전력 시스템을 공격해 일어났다며 ‘미국 배후설’을 주장했고, 과이도 의장은 “정부 부패와 수년 간에 걸친 부실 관리 등으로 발생했다”고 반박했다.

실상은 차베스 전 정권과 마두로 정권의 수력발전 의존 시스템이 문제였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베네수엘라는 1960년대부터 발전 용량이 1만235㎾에 달하는 초대형 수력발전소 엘 구리 발전소를 짓고, 석유를 최대한 수출하기 위해 화력발전소를 줄이는 정책을 썼다. 그런데 차베스 정권 때인 2009년 가뭄이 장기화 되면서 전력난으로 정전이 자주 발생하기 시작했다. 에너지 전문가들은 전략 공급 방식을 다양화해야 한다고 조언했지만, 하루 2시간 단전 등 임시방편만 쓸 뿐이었다. BBC에 따르면 베네수엘라는 2007년 전력망을 국유화하면서 투자와 관리 부족으로 이미 전력 사정이 악화됐던 것으로 알려졌다.

차베스 후계자인 마두로가 정권을 잡은 2016년 또다시 가뭄 사태와 전력난이 발생했음에도 근본적인 해결을 외면한 채 비상사태를 선언하고 60일간 전력을 통제하는 것에 그쳤다.

BBC는 이번에 발생한 정전 사태에 대해 “수력 인프라에 전력을 의존하는 베네수엘라의 투자 부족으로 수십 년 동안 주요 댐들이 손상됐다”고 지적했다.

◆ 국가비상사태 선포로 미군 개입 가능성 높아져

그렇지 않아도 극심한 경제난을 겪고 있는 베네수엘라에 설상가상으로 대정전 사태가 발생하자 과이도 의장은 결국 지난 11일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했다.

과이도 의장은 지난 10일 카라카스에서 열린 반정부 집회에서 “국제 원조를 받기 위한 국가비상사태 선포를 국회에 요청할 것”이라면서 “임시 대통령 자격으로 적절한 시기에 베네수엘라 헌법 187조를 발동할 수 있다”고 말한 바 있다. 187조는 ‘국회가 외국군이 국내에 들어와 임무 수행을 하도록 승인할 수 있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이는 미국 등 서방군대를 개입시켜 마두로 정권을 쫒아내고 사태를 수습하겠다는 의지로 읽히고 있다.

이와 관련해 그는 이미 국제사회에 군사개입을 촉구한 바 있다. 지난 달 23일 콜롬비아와 브라질 국경에서 ‘구호품 반입’을 두고 군과 주민들 간 유혈 충돌이 일어나자 과이도 의장은 “국제 동맹국에게 마두로를 해임하기 위한 모든 선택사항이 테이블 위에 올려져야 한다고 정식으로 제안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후 미국은 군사개입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실제로 마이크 펜스 미 부통령은 25일 “모든 선택지가 테이블 위에 올려져 있다”며 군사 개입 가능성을 열어두었다.

그러나 러시아는 미국의 군사적 개입을 반드시 저지하고 나섰다. 발렌티나 마트비옌코 러시아 연방상원의장은 지난 3일 모스크바를 방문한 델리 로드리게스 베네수엘라 부통령과 만난 자리에서 “미국이 베네수엘라에서 유혈 사태를 일으키고 군사 개입 명문을 만들려고 어떤 도발을 꾸미지 않을까 매우 염려스럽다”면서 “우리는 이를 막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 국제사회 간 세력 싸움으로 번진 베네수엘라 사태

이렇게 베네수엘라 사태는 국제사회 간 세력싸움으로 확대되는 모양새다. 미국을 비롯한 유럽연합(EU)등 서방 국가들은 과이도를 지지하고, 러시아를 위시한 이란, 쿠바, 시리아, 터키 등은 마두로를 지지하고 있다.

베네수엘라 사태 해결을 위해 열린 유엔안전보장이사회에서도 이는 확연히 드러났다. 유엔안전보장이사회는 지난 달 28일 뉴욕 유엔본부에서 회의를 열고 미국과 러시아가 각각 제안한 베네수엘라 결의안을 차례로 표결에 부쳤지만 모두 부결되고 말았던 것이다. 결의안이 채택되기 위해서는 우선 미국, 프랑스, 영국, 러시아, 중국 5개 상임사국이 모두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아야 하는데 미국의 결의안에는 러시아․중국이, 러시아가 마련한 결의안은 미국․프랑스․영국이 반대하고 나섰다.

한편, 미국이 마련한 결의안은 마두로 대통령이 재선된 지난해 5월 대선의 불공정성을 비판하고 각국 옵서버의 참관 하에 선거를 다시 치르자는 내용과, 미국 등 국재사회 구호 물품을 받아들일 것을 촉구하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반면 러시아 결의안은 베네수엘라의 위기 상황을 평화적으로 해결하는 것이 급선무라는 내용과 함께 마두로 대통령의 승인을 필요로 하는 원조 물품을 일단 회수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그러나 과이도 국회의장이 자국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외국군 군사 개입을 허용하는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한 이상, 미국 등 서방국가들의 군 개입을 통한 무력으로 사태가 해결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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