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래픽_황성환 뉴스워커 그래픽 1담당

유럽연합(EU)은 21일(이하 현지시간), 오는 29일로 예정된 영국의 브렉시트(EU 탈퇴)를 5월 22일까지 연기하는 데 동의했다. 다만 영국 의회가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와의 브렉시트 합의안에 승인해야만 한다는 조건부가 있다. 만일 승인하지 않으면 4월 12일까지만 연기되고 ‘노딜’로 EU를 떠나야 한다. 결국 영국의 미래는 의회의 손에 달린 셈이다.

◆ 4월 12일, 영국 미래 결정의 날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는 지난 20일 도날드 투스크 EU 정상회의 상임의장에게 서한을 보내 브렉시트를 오는 6월 30일로 연장해 달라는 요청을 했다. 이에 EU는 21일 브렉시트 연기안을 논의하기 위해 브뤼셀에서 28개국 회원국 간 정상회의에서 먼저 영국 의회의 합의안 승인한 후 브렉시트를 연기하는 방안을 결정했다. 그러니까 당초 오는 29일로 예정된 브렉시트를 일단 4월 12일로 연기하고, 다음 주 영국 하원에서 브렉시트 합의문을 승인하면 5월 22일까지 연기하는 것에 동의하겠다는 것이다. 

메이 총리가 요청한 6월 30일과는 다른 날짜이다. 이는 차기 유럽의회 선거가 5월 23일~26일까지 실시되기 때문에 영국의 유럽의회 선거 참여 문제가 발생할 수 있어 그 전에 모든 것을 결정하겠다는 의도다. 영국은 브렉시트를 할 경우 이 선거에 참여할 필요가 없어진다. 그래서 EU는 4월 11일까지 영국이 차기 유럽의회 선거 참여 여부도 결정하도록 했다. 

따라서 영국 의회가 브렉시트 합의안에 승인하고 유럽의회 선거에 불참을 결정하면 5월 22일까지 연기되고, 합의안 승인과 유럽의회 선거 참여로 결정하면 연기 기간이 길어질 수 있으며, 합의안 승인조차도 이뤄지지 않으면 4월 12일 ‘노딜’로 EU를 떠나게 된다.

사실상 EU는 영국에게 여러 가지 선택지를 제시한 셈이다. 도날트 투스트 의장은 정상회의를 마친 뒤 기자회견을 통해 “오는 4월 12일까지 모든 옵션은 열려 있고, 데드라인은 연기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영국 정부는 합의에 따른 탈퇴, 노딜, 긴 브렉시트 연기, 브렉시트 철회 등 사이에서 여전히 선택권을 가질 수 있다”고 말했다. 

◆ 영국 의회 합의안 승인할까, 노딜을 선택할까

EU는 영국에 여러 가지 선택사항을 제시하면서도 영국의회에 최후통첩을 날렸다. 이에 대해 과연 의회는 어떤 선택을 할까. 영국 정부는 제3차 브렉시트 합의안을 다음 주 월요일에 제출하고 26일~27일 사이에 투표에 부치겠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이미 부결된 합의안을 재상정하는 것이라 반대표를 던졌던 의원들이 마음을 바꾸지 않는 한 변화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보수당 내 브렉시트 강경론자는 브렉시트 연기보다는 ‘노딜’이 낫다는 입장이다. 특히 보수당 내 유럽회의론자 모임인 ‘유럽연구단체(ERG)’ 소속 의원 20명가량은 어떠한 경우에도 메이 총리의 합의안에 반대표를 던지겠다고 말하고 있다. 또한 보수당과 연립정부를 구성하고 있는 북아일랜드 연방주의 정당(DUP)도 그동안 '백스톱(안전장치)'에 대한 반발로 계속 반대표를 던졌었다. 그런데 ‘노딜’로 브렉시트가 결정 날 경우 특히 북아일랜드 경제에 큰 타격이 예상되기 때문에 DUP 소속 의원들은 예전처럼 강경한 태도를 보이기 어려울 수 있다. 다만 제러미 코빈 대표를 비롯한 노동당만 영국에 타격이 큰 ‘노딜’만큼은 배제해 달라고 메이 총리에게 요구해 왔었다. 

노동당뿐만 아니라 영국 내 기업 고용주와 노동자들을 대변하는 단체들은 메이 총리에게 ‘노 딜 브렉시트’만은 피해 달라고 호소하고 나섰다. 21일 영국 로이터 통신 보도에 따르면 영국산업연맹과 영국노동조합총협의회는 이날 메이 총리에게 보낸 공동서한에서 “우리가 국가적 비상사태에 직면해 있다”면서 “영국 전역의 회사와 단체들은 이런 결과에 준비돼 있지 않다”면서 “우리 경제에 미칠 충격은 후세에도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런 가운데 영국 의회 사이트에서는 브렉시트 취소를 요구하는 청원에 100만 명이 넘게 서명을 했다. 21일 로이터 통신은 ‘리스본 조약 50조 철회 및 EU 잔류’ 청원 서명자가 이날 오후 2시 50분 기준 100만128명으로 집계됐다고 보도했다. 이 청원에서는 “정부는 그동안 EU 탈퇴가 국민의 뜻에 따른 것이라고 밝혀왔다”면서 “이제는 EU잔류에 대한 대중의 지지를 증명할 때”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렇게 당초 브렉시트 날짜였던 3월 29일을 열흘을 채 남겨두지 않은 상황에서도 영국 정국은 혼란스러운 모습이다. 안타깝게도 영국이 브렉시트를 두고 혼전을 거듭하는 동안 영국의 금융자산은 1500조원, 일자리 7000개가 이탈했다는 보고가 나왔다.

지난 20일 미국 CNN방송이 자문회사 EY의 자료를 인용해 보도한 바에 따르면 영국 금융서비스기업들은 1조 파운드(1조3000억 달러)를 EU로 이전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는 것이다. 이는 기업들이 브렉시트 결렬에 따른 급격한 규제 변화와 시장 변동으로부터 고객들을 보호하기 위해 자산을 이동하고 나선 것이라는 분석이다. 또한 영국 밖으로 이전된 금융 일자리 수는 7000개로 추산되고 있으며 이로 인해 영국 정부가 감당할 세금 손실은 최소 6억 파운드(약9000억원)에 달한다는 것이다. 이 상황에서 노딜 브렉시트가 될 경우 2008년 금융위기보다 더 심각할 것으로 영국 은행은 우려하고 있다. 

EY가 이번에 분석한 것은 영국의 금융산업 측면에서만 살펴본 것인데, 노딜 브렉시트 이후 사회 전반적인 산업에서 영국이 입을 직․간접적인 손실과 그로인해 파생되는 글로벌 피해까지 감안하면 그 손실액은 기하급수적으로 커질 것으로 보인다. 

상황이 이러한데도 영국 의회는 여전히 입장이 제각각이고, 메이 총리는 영국 의회가 EU와의 합의를 또다시 거부하면 브렉시트를 긴 기간 연기하는 것보다는 합의없이 EU를 떠나는 노딜 브렉시트를 선택하겠다고 공언했다. 

영국의 상황이 정치 분열로 ‘바람 앞의 촛불’처럼 위태로워 보인다. 

저작권자 © 뉴스워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