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합장 추진위원장이 갖는 문제 중 하나가 무엇인지 아는가. 바로 조합원이 서로를 너무 잘 안다는 것이다. 당신이 살아온 삶이 어느 대기업의 CEO처럼 대단했다면 사정은 다르다. 당신의 상황은 그렇지 못하다. 바로 이 점 때문에 주민들, 조합원들이 당신의 인격을 자신과 같거나 오히려 좋지 않게 본다.

이로 인해 당신과 조합원 사이에는 갈등이 쌓이게 된다. 갈등은 앞서 인터뷰를 진행한 양광모 휴먼네트워크연구소 소장이 말했듯 그릇이 같기 때문에 발생한다.

이러한 갈등은 비단 당신에게만 있지 않다. 사회생활에서 상대를 얕잡아 보는 경우는 부지기수다. 남자가 여자를 얕잡아 보는 경우, 출신이 낮은 경우, 학력이 낮은 경우, 직업이 상대적으로 변변치 않은 경우, 나이가 적은 경우 등 찾아보면 얼마든지 예를 들 수 있다. 그 중 특히 직장에서 상사가 여성이면서 나아가 적은 경우 아무리 아래 직원이지만 얕잡아 보지 않는 경우가 드물다. 느끼는 당사자는 당신의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런 점에서 롯데백화점의 박기정(여, 47)이사의 말을 기억해 둘 필요가 있다. 경쟁이 심한 직장에서 여성이지만 20대에 실장, 30대에 부장과 이사가 되는 초고속 승진을 거듭하면서 많은 어려움을 겪은 박기정 이사. 남자 사장이나 전무가 지시하면 아래 직원은 무조건 “한번 해보겠다.”고 하면서도 박 이사가 뭔가를 지시하면 “안 되는 걸 알면서 왜 무리수를 두느냐”며 아래 직원들이 핀잔을 준다는 것이다. 박 이사는 그 사람 한명 한명을 설득해 밤새워 같이 일하고 회사 내에 내 편을 하나둘씩 만들었다고 한다. 그렇게 신뢰를 쌓고 나니 그 후에는 일이 좀 수월해졌다는 것이다.

당신에게 직무를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은 탁월하다. 문제는 사람을 아우르는 능력을 배양해야한다는 것.

정비사업에 대한 지식이 부족하면 채워줄 수 있다. 당신의 지식을 채워주기 위해 5분대기조처럼 대기하고 있는 협력업체들이 있지 않은가. 법률지식이든, 세무지식이든, 감정평가나 그 어떤 지식을 막론하고 당신의 협력업체 또는 협력사가 되기 위해 학수고대하는 업체는 자정이 넘는 시각이라도 벌떡 일어나 자문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자세가 되어 있다.

하지만 인문은 아니다. 당신은 이 정도 인격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당신을 바라보는 시선은 ‘한참 멀었다’는 반응이다. 강남세브란스병원 최초의 여자 외과 교수인 박윤아(38)교수는 말했다. “당신은 주변에 당신과 같이 있으면 즐겁고 좋은 방향으로 간다고 생각할 수 있도록 사람을 끄는 매력적인 기술을 연마해야 한다.”고 했다.

은평구의 한 재건축 조합장의 얘기다. (가칭)추진위원장 시절 때 만났던 그는 모든 것을 배우려 노력했다. 수첩을 가지고 다니며 재건축 사업에 대한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귀를 곧추세우며 들었다. 5년이 흘렀다. 그는 이미 이 분야의 준전문가라 할 정도로 업무에 대해 많은 사항을 알고 있다. 하지만 그의 인문적 학식은 지식만큼 쌓이지 않았다. 그 사람이 들으면 서운할 지 모르지만 오히려 감퇴했다.

당신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이미 당신은 50대를 넘어섰다. 살아온 인생이 살아야 할 인생보다 더 많다. 당신은 어쩌면 한 번도 신중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어떻게 조합원들을 이끌어 성공적으로 사업을 추진해야 하는지…, 당신은 이제 더 이상 정비사업에 대한 지식은 필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조합원을 당신의 큰 가슴에 담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추진준비위원장부터 청산 후 아파트입주자회 회장으로 추대 받을 수 있도록 당신은 당신 가슴의 넓이를 크게 해야 한다.

멋진 조합장으로는 부족하다. 혼이 있는 조합장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여성처럼 부드러워야 한다. 정비사업이라는 당신만의 분야에서 내일이 없는 것처럼 오늘을 살아야 한다. 열정이 없으면 혼은 사라진다. 그리고 상대를 대할 때 당신만의 넉넉함으로 대해야 한다. 당신은 주변에 많은 친구를 만들어야 한다. 결코 그들 위에 군림하려 하지 말라! 적만 키울 뿐이다.

정비사업에서 조합원은 기업의 주주와 같다. 주주는 CEO가 잘할 때는 아무소리 않다가 기업에 손실을 끼치는 행위가 발견되면 목소리를 높여 자리에서 끌어내리려한다. 늘 위태로운 자리다. 잘 할 땐 아무소리 없다가 못할 땐 심한 말을 해댄다. 서글퍼도 참아야 한다. 그것이 당신이 앉아있는 자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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