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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워커_국제정세] 미국이 보조금 지급 등 불공정 무역관행을 이유로 EU를 상대로 112억 달러(약 12조 5000억원) 상당의 제품에 관세를 부과하기로 했다. 이에 EU도 보복을 예고하면서 미․EU간 무역전쟁이 예고됐다.

9일(이하 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자신의 트위터 계정을 통해 “세계무역기구(WTO)는 EU의 에어버스에 대한 보조금이 미국에 불리하게 영향을 끼쳤다고 판정했다”면서 “미국은 이에 110억 달러의 EU 제품에 관세를 부과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EU는 수년간 무역에서 미국을 이용했으며 그것은 곧 중단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는 전날(8일) 미 무역대표부(USTR)의 “무역법 301조를 토대로 EU로부터 수입하는 제품에 추가 관세를 물리기 위한 절차를 시작한다”는 발표에 이은 후속탄이다.

무역법 301조는 교역 상대국이 합의를 준수하지 않거나 불공정한 행위를 저질렀을 때 미국이 이를 수정을 요구하고 그에 응하지 않으면 보족 조치를 취하도록 하는 미 연방의 법률이다.

USTR은 이 ‘무역법 301조’를 들어 미국 항공 업체 보잉의 경쟁 상대인 유럽 항공사 에어버스에 대해 EU가 보조금을 부당 지급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 관행이 철회될 때까지 고율의 관세를 부과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또 USTR은 EU의 보조금 혜택 덕분에 에어버스가 자국 기업인 보잉의 경쟁업체로 성장할 수 있었다면서 EU내 시장뿐만 아니라 미 보잉의 시장이었던 호주, 중국, 한국, 싱가포르, 아랍에미리트(UAE) 시장을 잠식했다고 지적했다. 이 때문에 미국이 무역에서 입는 피해는 연간 112억 달러라고 하면서 그에 상응하는 제품에 추가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고율의 관세를 부과할 목록도 발표했다. 에어버스 보조금에 개입한 프랑스․독일․스페인․영국 등 4개국에서 수입하는 물품과 EU 28개국 회원국에서 수입하는 물품으로 나누었고, 구체적인 물품으로는 항공기, 헬리콥터와 같은 공산품을 비롯 와인․치즈 등 농축산물, 각종 해산물 등이 포함됐다.

◆ 14년 전, 유럽 항공사 에어버스 보조금 지급 문제 다시 수면 위로

미국이 지적한 ‘에어버스’의 보조금 지급 문제는 약 14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만큼 해묵은 문제라는 것인데, 지난 2004년 미국은 EU가 에어버스에 부당하게 보조금을 지급하고 있다며 WTO에 제소한 바 있다. 오랜 공방 끝에 WTO는 2011년, EU가 1968~2006년에 총 180억 달러의 보조금을 에어버스에 지급한 사실을 확인했고, EU는 이후 항공기 보조금을 폐지했다.

그러나 미국은 이에 그치지 않고 EU가 신형 기종을 개발할 때마다 착수보조금을 지급하는 등 보조금 지급 관행을 개선하지 않았다고 다시 문제 제기를 했고, 이에 WTO는 EU의 보조금이 에어버스의 신형 여객기 출시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밝혔다. 이 때문에 경쟁사인 미국 보잉 항공기 판매가 300대 이상 줄었다면서 지난해 5월 또 미국의 손을 들어줬다. 미국은 WTO가 산정한 수치를 인용해 EU가 에어버스에 지급하는 보조금 때문에 미국이 연간 112억 달러의 피해를 보고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러나 EU는 미국의 112억 달러 피해 추산액에 이의가 있다며 WTO에 제소를 했고, 현재 조정 심리를 진행하고 있다. 이에 대한 최종 결과는 올 여름쯤 나올 것으로 USTR은 전망하고 있다.

◆ 무역전쟁 2라운드 불붙나

USTR의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대표는 EU에 고율의 관세를 예고하면서 “EU가 대형 민항기에 대해 WTO 규정에 어긋나는 보조금 지급을 전면 중단하는 합의를 하게 만드는 게 궁극적 목표”라면서 “EU가 해로운 보조금을 중단하면 고율의 관세를 철회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EU는 에어버스 보조금으로 미국이 입었다고 주장하는 피해 규모가 상당히 과장됐다면서 “미국의 움직임에 대응해 독자적으로 보복 관세를 부과할 목록을 작성하고 있다”고 밝혔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국제사회에서는 미국과 EU의 무역전쟁을 우려하고 있다.

미국은 지난해 4월, 유럽․한국․일본 등에서 미국으로 수입되는 철강과 알루미늄에 각각 25%와 10%의 추가 관세를 부과한 적이 있다. 이에 EU는 미국 제품에 28억유로(약 3조 6000억원)어치의 보복관세를 부과하면서 무역 전쟁을 예고했다. 물론 이는 3개월 만에 휴전했지만 미 상무부가 올 2월 ‘무역확장법 232조’에 따라 ‘수입차 영향 보고서’를 트럼프 대통령에게 제출하면서 EU산 자동차에 대해서도 관세 부과 계획을 검토함에 따라 무역전쟁 불씨를 되살렸다. 게다가 미국이 이번에 또 112억달러의 고율의 관세 부과 계획을 발표하면서 미국과 EU간 무역전쟁 점화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는 것이다.

미․EU 간 무역전쟁을 두려워하는 이유는 앞서 있었던 미․중 무역전쟁이 이미 세계 경제에 먹구름을 드러운 요인이 됐기 때문이다. 실제로 국제통화기금(IMF)는 지난 9일 ‘2019 4월 세계경제전망’을 통해 세계경제가 2017년 2018년 상반기까지 견조하게 성장하다가 지난해 하반기부터 빠른 속도로 둔화되고 있다고 밝히면서, 가장 큰 원인으로 미국과 중국의 무역갈등을 꼽았다. 결국 IMF는 지난해 7월 ‘올 세계경제 3.9% 성장’ 전망에서, 이번에는 성장률 전망치를 0.6%포인트 내려서 발표했다.

물론 빌 레인쉬 국제전략연구소 선임연구원 등 일부 전문가들은 이번 일이 단순히 에어버스 보조금 문제일 뿐 무역전쟁으로 비화되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을 내놓고 있지만 미․중 무역협상이 마무리 되지 않은 상태에서 불거진 미․EU 간 무역갈등은 글로벌 경제를 살얼음판으로 밀어 넣는 요인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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