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부터 겪어야 했던 고난, 그리고 수업료-
중요한 것은 무엇을 해야 할지도 몰랐다는 것이다. 뒤에서도 말하겠지만 나는 무엇 하나 잘하는 것이 없다. 특별히 출중한 재능도 없으며, 어떤 기술을 가진 것도 아니다. 나는 같은 또래의 아이들보다 생각자체가 어렸으며, 이 때문에 엉뚱하다는 말을 자주 들었다. 내게 있는 기술이라고는 그래픽 프로그램인 포토샵과 일러스트레이션을 조금 다룰 줄 안다는 것이며, 이것으로 돈을 벌 때도 있었지만 결국에는 디자인에 대한 감각 부족으로 접어야만 했다. 그래픽을 다룰 줄 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내가 얻을 수 있는 이익은 회사를 운영하면서 명함을 디자인한다던가, 브로슈어를 제작하는 정도였다.(다른 것을 보고 카피하는 수준이지 독특한 아이디어로 색다른 브로슈어를 만드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관심이 있는 것은 있었다. 바로 IT(정보기술)관련이었다. 스마트폰을 처음 알게 된 때는 2009년 말경이었다. 미국에서는 훨씬 오래 전부터 스마트폰 바람이 불었지만 국내에는 3개 통신사의 완력으로 인해 들어오지 못했다는 것을 나중에야 알게 됐다. 나는 스마트폰이 국내에 도입되면서 세상의 많은 부분이 달라질 것이라는 것을 확신했다. 당시에는 ‘카카오톡’이 출시되지 않은 시기 이었으며, 국내에는 대표할 만한 어플리케이션이 없던 때였지만 속속 등장하기 시작하는 어플리케이션을 보면서 세상은 또 한 번(인터넷 발달 이후) 빠른 속도로 변하게 될 것이라는 확신은 있었다. 문제는 내가 단 한 번도 이 분야에 깊게 종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나는 한 때 웹디자이너로 일을 했다. 앞서 얘기했던 돈을 벌었다는 말도 이 분야에 일을 했기 때문이며, 웹에디터가 아닌 웹코딩을 통해 홈페이지를 만들 수 있을 정도의 스킬을 가지고 있었다. 문제는 감각이 안됐다는 것이 이 분야를 떠나게 한 것이다.

나는 막연하기 IT분야로 승부를 걸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으며, 그 결과 멘토와 멘티를 이어주는 희망적인 메시지를 남겨야겠다는 막연한 생각을 하게 됐다. 나중에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멘토는 사람을 살릴 수도 있다(소셜 싸이 황성진씨의 말).는 말을 들었다.

나의 문제점이자 장점은 생각하면 바로 실행한다는 것이다. 과거 웹사이트를 구축할 때 스토리보드를 작성해본 경험으로 ‘멘토와 멘티와의 대화’에 관한(후에 ‘부크스토리’라는 브랜드명을 만들게 됐지만 그 과정에는 ‘샤우팅’ 또는 ‘소리질러’ 등의 많은 이름이 후보에 오른 바 있다. 샤우팅이나 소리질러는 같은 의미로 ‘세상을 향해 소리를 질러야 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스토리보드를 작성하게 됐다. 어떻게 멘토는 접속하게 되며, 멘티는 멘토를 어떻게 만나게 되는 과정을 모두 수록했다. 여기에 영상을 입히는 과정도 만들었다. 당시 리웍스미디어그룹은 ‘뉴스워커’라는 서비스를 2012년 6월부터 서비스를 시작했는데, 돈 안들이고도 충분히 영상서비스를 할 수 있다는 것을 서비스를 만들고서야 비로소 알게 됐다.

리웍스가 영상을 할 수 있다는 것은 많은 장점을 지니고 있었다. 그래서 멘토를 만나게 될 시작점을 멘토의 영상메시지라고 판단하고 멘토가 될 만한 사람에게 인터뷰를 요청하고 향후 멘토와의 대화 ‘부크스토리’를 개발하게 되면 그 때 접속하여 활동하는 말을 남기고 인터뷰를 요청했다.(인터뷰는 직원들이 했다. 나는 사무실에서 전체를 총괄했을 뿐이다.)

멘토와의 영상인터뷰를 시작한데까지는 이미 개발자를 구하게 됐고, 개발자로부터 긍정적인 반응을 얻은데서 비롯됐다.

개발자는 2~3년 전부터 알게 된 사람을 통해 소개를 받았으며, 소개받았다는 것 하나만으로 신뢰가 가는 사람이었다. 나는 그 사람을 100% 신뢰했다. 그것이 실수였다는 것을 3개월이 지난 후에야 알게 됐지만.

부크스토리에 관한(당시까지만 해도 ‘소리질러’라고 이름 지었다.)스토리보드를 제작하면서 개발자를 찾았으며, 소개로 만난 개발자는 기획이 좋아 향후 수익을 나누기로 하고 기본 개발비(300만원)만을 주면 나머지는 알아서 처리한다고 말했다. 나는 ‘천군만마(千軍輓馬)’를 얻은 것 같았으며, 실제 그 개발자에게 그렇게 말했다. ‘당신은 나에게 천군만마와 같다고…’

나는 3일 내(휴일이 중간에 끼었기 때문이다.)에 개발자에게 300만원의 50%인 150만원을 입금하고, 개발 이후의 일에 대해 꿈에 부푸는 그림을 그리게 됐다.

이 글을 쓰게 된 ‘마우스드라이버크로니클’이나 ‘하버드 인텔리젼스(빌머피 주니어 작)’를 보면 한번의 아이템이 결국 큰 성공을 거두게 된다는 것이지만 실제는 꼭 그렇게 되지만은 안은 것 같다.

2주일이 지났다. 일주일에 3일 이상은 리웍스사무실에서 작업을 한다던 개발자는 차일피일 미뤘으며, 결국 한 달에 한번도 제도로 사무실을 찾지 않았다. 이 결과 개발자가 얼마나 작업을 했는지 모르게 되었으며, 하고 있는지 조차 모르게 됐다. 나중에는 여러 차례 전화를 걸었지만 전화조차 받지 않는 상황이 발생했으며, 결과적으로 지금 3개월의 시간동안 계약금 50%는 되돌려 받을 수 없는 돈이 됐으며, 3개월 동안 아니 적어도 2개월 동안의 인건비 등을 고스란히 날리게 됐다. 사실 2개월여 동안 부크스토리에 담을 멘토들 ‘마광수 교수, 간호섭 교수, 김수영씨, 덕일스님’ 등 대략 열 다섯 분 정도를 인터뷰 했고, 영상편집을 마무리 했지만 이 분들의 영상은 유투브를 통해 한국건설근로에 싣는 정도로 밖에 남을 수 없었다.

개발이 지연되는 사실 지연이라기보다 개발이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나중에 안 것이지만 개발자는 개발을 완료하기로 한 30일의 절반인 보름정도를 거의 작업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주)리웍스미디어그룹 신대성 대표이사
나는 나의 글이 ‘바람’이었으면 한다. 사람들은 자신의 글이 ‘음악’이거나 ‘노래’이기를 바란다. 오랫동안 뭇사람의 가슴에 머물러 있기를 고대하는 것이다.
난 나의 글이 ‘바람’이기를 원하는 것은 오랜 글쓰기의 습관 때문인지도 모른다. 신문기사는 지나간 글에 대해 추억을 살릴 수는 있지만 가슴을 뭉클하게 하는 울먹임은 갖기 어렵다. 바람은 흐른다. 시대를 풍미했던 기사도 흐른다. 그래서 바람은 추억이 되고, 지나간 추억은 좋았건 나빴건 희미하다.
나는 나의 글에서 바람소리를 들었으면 한다. 바람소리는 때로 산들바람처럼 시원하지만, 격랑의 폭풍우처럼 거세기도 하다. 들녘에 부는 바람은 마른 풀잎사이를 지나며 야릇한 소리를 만든다. 바람은 지나고 다시 오지 않는다. 시대의 글이 그렇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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