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래픽_뉴스워커 황성환 그래픽 1담당

[뉴스워커_오피니언] 지난 4월 30일 글래드 여의도 호텔에서는 ‘바이오헬스 성장동력 제고를 위한 규제혁신의 방향’이라는 주제로 ‘제1회 헬스케어 미래포럼’이 개최되었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이 주관하고 보건복지부, 식약처, 산업자원통상자원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후원한 이 포럼에는 이명화 STEPI 국가연구개발분석단장, 송시영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강성지 WELT 대표, 정형준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 부위원장 등이 참가하여 공공기관, 의학계, 산업계의 입장뿐만 아니라 시민사회단체의 입장도 알아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해당 포럼에서는 세부주제로 DTC 유전체검사와 손목시계형 심전도 장치를 활용한 건강관리 서비스 허용으로 최근 토론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는 ‘규제 샌드박스(실증특례사업) 제도’를 설정하여 각 계의 입장을 들을 수 있었다.

규제 샌드박스란 신제품이나 새로운 서비스가 출시되었을 때 일정기간동안 기존 규제의 적용을 면제, 유예하여 시장에 내놓은 후 문제가 있을 때에만 사후에 통제하는 제도를 의미한다.

규제 샌드박스는 어린아이들이 모래장(샌드박스)에서 아무런 제약 없이 다양한 놀이를 즐길 수 있는 것처럼 규제가 없는 환경을 기업들에게 제공함으로써 다양한 신제품, 새로운 서비스를 창조할 수 있고자 하는 취지에서 시작되었다.

국내에서는 올해 ‘정보통신융합법’, ‘산업융합촉진법’, ‘금융혁신법’, ‘지역특구법’의 발효로 규제 샌드박스 제도가 시행중에 있으며 주요 제도로는 ‘신속처리’, ‘실증특례’, ‘임시허가’가 있다.

신속처리 제도는 기업들이 신제품, 새로운 서비스에 대해서 규제가 존재하는지 정부에 문의할 수 있으며 30일 이내에 회신하지 않는다면 규제는 없는 것으로 간주되는 제도를 뜻한다.

실증특례 제도는 관련 법령이 모호하고 불합리하거나, 금지규정 등이 있어 신제품, 신서비스 등에 대한 시험 검증이 필요하다면 장소, 시간 등 제한적인 요건 하에서 기존 규제의 적용을 받지 않고 검증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이다. 검증 기간은 2년이 기본이지만 2년을 더 연장할 수 있다.

임시허가 제도는 안전성과 혁신성이 검증된 신제품, 신서비스임에도 불구하고 관련 규정이 모호하거나 불합리해 시장 출시가 어렵다면 일정 조건하에서 임시허가를 내주어 임시적으로 시장 진입을 허가하는 것을 말한다. 임시허가 기간 또한 2년이 기본이며 2년을 더 연장할 수 있다.

규제 샌드박스에 대해 긍정적인 산업계, 학계, 공공기관과 신중한 시민단체

포럼에서 산업계, 학계, 공공기관에 속한 인물들은 규제 샌드박스에 대해 보완할 점이 있다고 지적하면서도 대체로 긍정적인 평가를 내린 반면 시민사회단체들은 규제완화에 대해서 비교적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한현욱 차의과학대학교 정보의학과 교수는 정밀의학, 환자맞춤형치료로 대표되는 미래 의학에는 데이터의 활용이 필요하므로 이에 관한 기반시설 확보가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또한 현재 병원 장비의 95%가 외국산 제품일 정도로 국산 제품의 경쟁력이 높지 않아 규제 혁신을 통해 산업경쟁력을 향상하는 것이 환자와 국가에 바람직하며 규제 샌드박스가 도움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다만 그는 무조건적인 규제 완화를 주장하는 것은 아니며 규제 샌드박스를 통해 발견한 문제점들을 끊임없이 시민단체 등과 논의하여 대응해 나가야 한다고 덧붙였다.

강성지 ‘WELT’ 대표는 해외에서 실증이 되었지만 택시업계와의 갈등으로 국내에서 도입이 안 되고 있는 차량공유서비스를 예로 들며 실증특례사업에서는 실증특례보다 사회적합의가 더 중요하다는 주장을 내어놓았다. 또한 그는 향후의 논의가 찬반논쟁으로 흐르기 보다는 조금이라도 합의를 볼 수 있는 접점을 찾는 것에 주력해야하며 규제 샌드박스가 합의 과정을 정립시키는 의미는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반면 보건의료단체연합 전진한 정책국장은 국가가 해야 할 일은 사전예방이지 사후규제가 아니며 DTC 유전자 검사, 손목시계형 심전도 검사가 환자의 생명에 직접 관련성이 없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동의할 수 없고 실증특례는 항목상 제한이 없어 의약품으로 확대될 수 있는 소지가 있어 그 적용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의사를 분명히 했다.

이외에도 효용성 평가를 엄격히 해야 한다는 지적, 실증특례 등 규제 샌드박스가 대기업, 대형병원의 이익만을 향상시킬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복잡한 첨단 사회로 갈수록 토론을 통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

트레이드 오프(Trade-off)란 단어의 사전적 의미는 어느 하나를 얻기 위해서 다른 것 하나를 희생해야 하는 관계로 정의된다.

예를 들어 비행기를 만들 때 안전성을 높이기 위해서 금속재료를 많이 투입할수록 비행기의 중량이 증가하여 연비가 안 좋아지거나 적재할 수 있는 화물의 양이 적어지는 것을 생각할 수 있다.

이런 측면에서 규제 개선도 일종의 트레이드 오프 관계를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규제가 강화될수록 위험도가 낮아지므로 안전성은 높아지지만 반대로 새로운 시도를 하려고 하는 경향은 약화된다. 반면 규제를 완화시킬수록 위험도는 높아지므로 안전성은 하락하지만 반대로 새로운 시도 즉 혁신하려고 하는 경향은 강화된다.

따라서 규제를 어느 수준까지 강화 혹은 완화할 것인지에 대한 결정이 필요하게 된다.

다른 말로 하면 사회가 어느 정도 수준까지 위험을 감수할 수 있는지에 대한 결정이 필요한 것이다.

그런데 복잡하고 전문화된 첨단 사회로 진입할수록 규제담당 공무원 혼자서 이와 같은 결정을 하는 것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날로 세분화되는 전문 지식도 문제지만 일개 개인이 규제 관련 결정의 광범위한 파급효과에 대해서 전부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양한 전문가들과 시민단체들의 의견을 들어보고 사회가 수긍할 수 있는 정도의 규제 개선을 제시하는 것이 중요하다.

산업계, 학계 등 전문가 의견으로만 결정짓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산업계와 학계는 규제를 완화시키는 방향으로 의견을 제시하기 쉽다. 산업계는 회사의 이익을 창출해야하며 학계는 개인의 명예, 학문적 욕구 등등 새로운 시도를 통해 이익을 얻는 쪽이므로 이익 획득에 방해가 되는 규제를 좋게 받아들이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바로 여기서 시민단체들의 역할이 요구되는데, 시민단체들은 산업계와 학계의 전문가들이 사회적으로 수긍할 수 있는 규제완화의 범위를 일탈하지 않도록 감시하고 반대의견을 제시해야 한다.

마치 차량에 있어서 가속을 담당하는 엑셀레이터와 감속을 담당하는 브레이크가 함께 존재하는 것처럼 사회에서도 규제개선에 대해 대립되는 의견이 동시에 존재하면서 서로 의견 교환을 통해 하나의 접점을 찾아가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다만 규제완화에 찬성하건 반대하건 하나의 대전제를 잊어서는 안 된다.

그건 바로 자신의 의견을 고집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가 규제개선을 통해 어느 정도까지 위험을 감수할 수 있는지 결정하는 것이 토론의 목적이라는 것을 말이다.

마치 비행기의 안전성을 높이기 위한다는 명목 하에 무거운 강철을 있는 대로 가져다 쓴다면 안전성은 좋을지 몰라도 중량이 무거워서 이륙 자체도 불가능할 수 있는데 이는 이미 비행기라고 할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즉 토론의 목적이 무엇인지 망각한 채로 자신의 주장, 특히 찬반 토론에만 매몰된다면 논의는 한발자국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따라서 그런 무의미한 논쟁보다는 상대가 무엇을 이야기하는지 듣고 내 의견이 수정될 수 있는지 보면서 어느 정도 선에서 규제 개선이 이뤄져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살피는 것이 필요하다 하겠다.

규제개선에 대한 의견은 다르지만 산업계, 학계, 시민단체 모두 궁극적인 목적은 개인, 사회, 국가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에, 결론을 도출하기 어렵고 시간이 다소 걸리겠지만 앞으로도 토론을 통해 안전성과 혁신성의 밸런스를 갖춘 규제 개선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는 것이 바람직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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