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 노버트 쉐나우어
분류 : 인문
페이지 : 584p
출판사 : 다우출판
가격 : 35,000원

이 책은 선사시대를 시작으로 21세기 오늘날까지도 진화하고 있는 집의 역사’를 갈무리한 책이다. 인류 문명의 역사는 곧 의식주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닐 터인데, 그 가운데 특히 ‘집(주거)’은 인간 삶의 진보를 가장 여실히 보여주는 테마라 할 수 있다. ‘건축’이야말로 인간의 손으로 완성해낼 수 있는 가장 완벽한 예술을 드러내는 도구이며, 특히 ‘주거건축’은 당대 사람들의 생활사와 당시 사회의 사회 심리적·경제 문화적 요소까지 담고 있기에, 더더욱 깊이 통찰해볼 만한 의의를 갖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내는 물론 세계적으로도 대부분 사람들의 눈과 귀는 ‘세계의 유명 건축물, 즉 기념비적 건축물(일상생활과는 어쩌면 무관한 듯 보이는)’에만 쏠려왔던 것이 사실이다. 이 책의 저자 노버트 쉐나우어는 그러한 학계의 풍토에 대해 문제점을 지적하고 그 대안으로서 자신의 40년 연구업적을 압축한 책을 내놓았다. (이 책의 최신 개정판은 2000년에 나왔고, 저자는 이 완결편을 내놓은 지 얼만 안 된 2001년 작고했다.)

저자는 자신이 직접 발로 뛰며 찾아낸 방대한 자료와 세밀한 연구 성과, 그리고 저자가 직접 그린 프리핸드 도면이 함께 담겨 있다. 이 책은 현재까지 주거사 분야의 선구적인 저술이자 ‘고전’으로서 인정받고 있다.

우리는 지금 왜 ‘집의 이야기’에 주목하는가?

집과 도시야말로 인간 삶의 내력을 가장 잘 증명해주는 ‘도구’이기 때문이다. 부동산이라는 이름의 ‘재산’이 아니라, 본래 ‘집’이라는 공간이 갖고 있는 본질과 회복되어야 할 의미를 되새겨보고 싶기 때문이다. 집은 단순한 ‘건축기계’도, ‘부동산’만도 아닌, ‘가족의 영원한 은신처’라는 사회학적 함의를 담은 대상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은 이 책이 보여주는 6,000년간의 동서양을 망라한 집의 역사를 살펴봄으로써 분명히 확인할 수 있다. 맨 처음에는 추위와 재난, 야생동물로부터 피하기 위한 ‘은신처’에 불과했던 집은, 점차 인간의 공적이고 사적인 생활을 영위하게 해주는 중요한 공간이 된다. 이 책에는 바로 이러한 변화의 결절점들을 중심으로 한, 유기체로서의 집의 변천사가 담겨 있다.

저자는 또한, 집의 역사와 주거건축을 설명함에 있어서, 기존의 고루한 방식을 탈피한다. 즉, 저자는 ‘집’이야말로 자연적인 환경과 사회경제적인 환경에 대응하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건축행위의 산물이라고 말하면서, 바로 그러한 이유로 집의 역사를 ‘공간의 유형’이나 ‘구조의 양식’의 관점에서만 보아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다시 말해 그것은 사회적이고 문화인류학적 관점에서 다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일부 건축사가들이 그러했듯이, 현학적인 건축이념이나 양식을 운위하기에 앞서 (그런 이야기들을 다루더라도) 보다 본질적인 것들을 자신의 논의의 그물망 안에 두루 포섭시킨다. 예컨대 그 집 안에서 살았던 사람들의 삶의 풍경을 묘사하고, 각종 실(室)들이 시대와 나라, 공간에 따라 어떤 용도로 다르게 쓰였는지, 사람들의 사고방식의 변화에 집은 어떤 양태로 대응해나갔는지, 그리고 주거건축에 담긴 건축가의 의도는 무엇인지까지 읽어내고자 노력한다.

파리에 ‘아파트’가 많은 까닭은?

아파트는 ‘최고의’ 주거가 아니다, 그러나 매우 ‘유용한’ 주거임에는 틀림없다!

먼 미래를 내다보는 건축가들은 한국의 경우 인구가 확연히 감소하게 되는 어느 순간이 되면, 현재 지어놓은 아파트를 죄다 허물어야 할 것이라고 예언한다. 그때에는 현재의 아파트값은 말 그대로 휴지 값밖에 안 될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여전히 현재의 한국에서는 아파트가 최고의 주거로 군림하고 있다. 아파트는 말할 것도 없이 근대적 주거유형이다. ‘지구’라는 한정된 땅에서 살 수밖에 없기에 수평적 확장이 불가능한 시점부터 아파트가 탄생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아파트’에 대한 수용양식 또한 국가마다 다르다. 이 책에서는 영국과 파리, 뉴욕 등의 아파트 주거개념을 잘 비교해서 보여주고 있다.

<책 속에서>

19세기 동안 전례 없는 도시인구의 증가로, 영국 대도시 주거지의 확장은 유럽대륙과는 다른 양상으로 전개되었다. 예를 들어 교외지역의 빌라에 살려는 가구들이 점점 증가한 런던에서는 대부분의 주거 확장이 수평적으로 이루어졌다. 반면 유럽 대륙은 상대적으로 땅이 비좁고, 과거 전쟁에 대비해서 만들어놓았던 방어시설의 이전 비용이 엄두를 못 낼 정도로 비싸서 수평적 도시 분산은 줄어들었다. 이러한 이유로, 런던 시민들과 달리 대부분의 파리 시민들은 교외의 단독주택보다는 도시의 아파트에 살기 시작했다. 19세기 말, 파리의 아파트는 단순한 공동임대주택과는 분명히 구분되는, 도시 속의 세련된 다층 건물로 진화하였다. 새로운 아파트는 넓은 실내공간과 함께 나무가 늘어서 있는 가로수길을 따라 호화로운 가로입면을 자랑했으며, 중앙난방 시스템과 엘리베이터 같은 기계적 편의시설을 갖추고 있었다. 그래서 중산층뿐만 아니라 상류층에게도 바람직한 주거 대안으로 자리잡았다. (중략) 아파트를 바람직한 대안으로 받아들이게 된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었다. 첫째, 엘리트들이 선호한 넓은 오텔 파르티퀼리에가 과도한 토지를 필요로 한다는 점은 차치하더라도 개인의 타운 하우스에 필요한 도시 용지의 값이 오스만에 의해 파리 시 재개발(1809~1891년)이 이뤄진 후에 엄청나게 올랐기 때문이다. 둘째로, 당시는 자가용이 사용되기 이전이었으므로 많은 부유한 가정은 교외 빌라가 도심에서 너무 멀다고 느꼈다. 그러나 부유층이 아파트 생활을 받아들이도록 하는 데 무엇보다도 가장 큰 영향을 준 요인은 아마도 파시와 같은, 소위 ‘보 카르티에)’가 가진 풍부한 가로수길, 대로, 로터리, 산책로 등에 있을 것이다. 오스만이 남긴 이 널찍하고 푸른 공공 가로들은 아파트 전면에 좋은 전망을 제공했다. 이와 같이 호화로운 건물 외관과 넉넉한 크기의 방 등이 상류층의 생활조건에도 부합하고 유행에도 앞서는 아파트 생활을 만들어낸 것이었다. …· 임대주택인 ‘메종 아 르와예’가 파리에서는 주거의 중요한 부분을 이루었음을 명확하게 보여주는 것이었다. 이러한 다가구 주거는 대부분 혜택받지 못한 사람들이 사는 밀집한 공동임대주택이었지만 상당수는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초반의 벨 에포크 동안 그 호화스러움으로 인해 파리의 명물이 되었던 ‘아파트’였다.

비올레 르 뒤크에 따르면, 메종 아 르와예같이 “여러 가족을 수용하는 주거건물을 세우는 관습은 17세기부터 시작된 것이다(White 1875, 1101).” 예를 들면 루이 14세의 통치기간 중에는 상가들 위에 2층 높이의 주거들을 지었고 거기에 덧붙여 거주 가능한 다락층을 그 위에 설치하였다. 상가들에는 발코니풍의 ‘메자닌 층’이 있었는데 이것은 중세 상인주택의 연장선인 것으로 생각된다. - 본문 369~370쪽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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