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워커_국제정세] 홍콩에서는 연일 대규모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 최근 홍콩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범죄인 인도법 개정안’ 심의 때문인데, 주말이었던 지난 9일에는 100만 명 규모의 시위대가 모였고, 법안 심사가 있었던 어제(12일)도 4000명이 넘는 시민들이 모이면서, 홍콩 정부가 법안 심사를 연기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그런데 홍콩의 ‘범죄인 인도법 개정안’ 문제를 놓고, 미․중이 연일 충돌하고 있어 미․중 간의 새로운 갈등으로 부상하고 있다.

◆ ‘범죄인 인도법 개정안’ 반대에 나선 홍콩 시민들

▲ 홍콩의 ‘범죄인 인도법 개정안’ 문제를 놓고, 미․중이 연일 충돌하고 있어 미․중 간의 새로운 갈등으로 부상하고 있다. <그래픽_황성환 뉴스워커 그래픽 1담당>

100만 명 이상의 시위대를 모이게 한 ‘범죄인 인도법 개정안’은 홍콩 정부가 중국을 포함한 대만, 마카오 등 범죄인 인도조약을 체결하지 않은 국가나 지역에도 사안별로 범죄인들을 인도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주요 골자다.

홍콩 정부가 법 개정에 나서게 된 계기는 지난해 발생한 살해사건 때문이다. 홍콩에 거주하는 남성이 타이완에서 여자친구를 살해한 후 홍콩으로 도주하자, 수사를 진행해야 하는 타이완에 이 남성을 인도하지 못했다.

1997년 홍콩이 중국에 반환된 이후 특별행정구가 됐고, 2047년까지 사법자율권이 보장돼 있었는데, 지금까지 홍콩이 중국 본토와 타이완, 마카오 등과 범죄인 인도 협정을 체결하지 않아 범죄인을 인도할 법적 근거가 없기 때문이었다.

홍콩 정부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법 개정에 나선 것이지만, 100만 명 이상의 시민들이 시위에 나설 정도로 적극 반대하고 있다. 시위대에는 교사와 학생들을 비롯, 사회복지사, 예술가, 기업가. 항공사 승무원 등 각계각층이 함께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홍콩 경찰은 시위대를 해산하기 위해 물대포, 최루탄 등을 동원했고, 이들 사이의 충돌로 70여 명이 다친 것으로 13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보도했다.

이렇게 홍콩 시민들이 ‘범죄인 인도인 개정’을 반대하는 이유는 바로 중국 때문인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개정된 법안이 중국 정부를 비판하는 반체제인사나 인권운동가를 중국 본토로 송환하는 데 악용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그만큼 홍콩 시민들은 중국에 대한 불신이 깊다는 의미이다. 그도 그럴 것이 지난 2015년에 중국이 금지하는 금서를 판매하던 홍콩 서점 주인들이 중국에 돌연 납치돼 본토에서 수사를 받는 일이 있었고, 2017년에는 홍콩에 체류하던 샤오젠화 밍톈 그룹 회장의 실종 사건 역시 본토와 연관돼 있었다. 이렇게 중국 공안이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홍콩에서 연행해 갈 수 있는 상황에서, 법적 근거가 생기면 누구든 안심할 수 없다는 불안감 때문에 적극적으로 시위에 나선다는 분석이다.

일단, 시민들의 적극 반대로 법안 심사가 연기되긴 했지만 홍콩 정부는 법 개정을 강행할 계획이어서 당분간 홍콩 정부와 시민간의 충돌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 미․중 간 갈등으로 불똥 튄 홍콩 문제

홍콩 자체만의 문제로만 보였던 이번 법 개정을 둘러싼 홍콩 정부와 시민들 사이의 갈등은 엉뚱하게도 미국과 중국 사이의 새로운 갈등으로 부상됐다. 중국은 100만 명 규모의 시위대 배후에 미국이 있다는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미 국무부가 지난 10일, 홍콩 정부가 개정을 추진하고 있는 범죄인 인도 법안에 대해 반대 입장을 표명했기 때문이다. 모건 오테이거스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미 정부는 홍콩 정부의 개정안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명한다”며 “수십만 명의 시위는 이 법안에 대한 대중의 반대를 분명히 보여준다”고 말했다. 지난 달 16일에는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이 홍콩 민주화 지도자인 마틴 리 전 민주당 창당 주석을 만난 자리에서 이번 법안이 “홍콩의 법치주의를 위협한다”고 언급했다.

뿐만 아니라 미국에서는 홍콩의 범죄인 인도법 개정이 미국의 국가안보와 경제적 이익에도 위협을 초래할 수 있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미국 의회 자문기구인 ‘미․중 경제안보위원회(USCC)’가 7일 낸 보고서를 통해 강한 반발에도 불구하고 법안 통과를 관철하려는 홍콩 정부의 움직임에 심각한 우려를 나타냈다고 보도했다. 이 보고서는 “홍콩인 범죄인 인도법 개정안은 미국의 국가안보와 경제적 이익에 심각한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면서 “이는 미국-홍콩 정책법의 핵심 조항에도 위배된다”고 지적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자 중국은 미국의 이러한 발언에 대해 내정간섭으로 규정하고 나섰다. 지난 9일 겅솽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정례브리핑에서 “중앙 정부는 홍콩특별행정구 정부가 2가지 조례를 개정하는 것을 확고히 지지한다”면서 “어떤 외부세력도 홍콩의 입법 활동에 간섭해 잘못된 언행을 하는 것을 단호히 반대한다”고 미국을 겨냥했다.

중국 입장에서는 미국이 ‘하나의 중국’을 흔든다고 여기고 있는 것이다. 미국의 국방부는 지난 1일 발간한 ‘인도․태평양 전략보고서’에서 대만을 싱가포르․뉴질랜드․몽골 등과 함께 완전한 하나의 국가로 표기한 바 있다. 이는 오랫동안 유지해온 ‘하나의 중국 원칙’을 명백히 깬 것으로 평가됐다.

뿐만 아니라 중국 정부 입장에서는 홍콩의 시위가 시진핑 중국 주석 권위에 대한 도전으로 여길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영국 런던대 소아스(SOAS·School of Oriental and African Studies) 스티븐 창 중국연구소 소장은 “시 주석은 이번 홍콩 시위를 자신의 권위에 대한 도전으로 볼 것”이라면서 “중국은 법안이 통과될 수 있도록 홍콩 정부를 더 압박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이렇듯 이번 홍콩 문제는 중국을 흔들려는 미국과 ‘하나의 중국’을 지키려는 중국 사이의 총성없는 전쟁으로 확대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박경희 뉴스워커<newsworker>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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