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콩에서 ‘범죄인 인도 법안’, 소위 ‘송환법’ 반대 시위가 연일 벌어지고 있다. <황성환 뉴스워커 그래픽 1담당>

[뉴스워커_국제정세] 홍콩에서 ‘범죄인 인도 법안’, 소위 ‘송환법’ 반대 시위가 연일 벌어지고 있다. 지난 16일(이하 현지시간) 200만 명 이상이 시위를 위해 거리로 쏟아져 나오자 홍콩 정부는 당일 긴급 성명을 통해 사과하고 연기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그럼에도 다음 날 시위가 이어지자 18일 캐리 람 행정장관이 시민들에게 직접 사과하고 나섰다. 이로써 송환법은 사실상 폐기되는 분위기지만 시민들은 자치권을 지키기 위해 끝까지 시위를 이어가겠다는 각오다.

이는 중국과의 일체화를 추진하는 시진핑 정부에 대한 반발이기도 해 시진핑의 정치력이 심각하게 타격 받을 것으로 보인다.

◆ 홍콩 시민, “끝까지 시위하겠다”

행정수반 캐리 람 홍콩 행정장관은 18일 오후 4시 정부 청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번 사태가 사회 논쟁과 분란, 불안을 야기했다”면서 “홍콩 모든 이들에게 진심으로 사과한다”고 말했다. 또 “(송환법은) 신뢰를 얻지 못하면 입법 절차를 더 이상 진행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 16일 200만 명 규모의 시위가 다음 날 오전 1시에 대부분 해산됐지만 일부 시민들은 홍콩 의회인 입법회 주변에 남아 시위를 계속하자 결국 홍콩 정부가 백기 투항한 것이다.

람 장관이 ‘철회’라는 표현을 쓰지는 않았지만 ‘송환법’은 사실상 폐기다. 람 장관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입법회 의원들은 임기가 내년 7월에 끝나는데 어차피 이 법안을 추진할 시간표가 없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시위대는 자치권을 위해 끝까지 싸우겠다는 입장이다. 게다가 지난 2014년 ‘우산혁명’을 이끌었던 조슈아 웡이 구치소에서 풀려나면서 시위에 힘을 보탰다. 그는 지난 2014년 79일 동안 ‘행정장관 완전 직선제’를 요구하며 대규모 시위를 주도한 바 있다. 우산 혁명은 당시 시위대가 우산으로 경찰의 최루액 등을 막아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인데, 그럼에도 경찰의 강경진압에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다. 당시 정무장관이었던 친중 성향의 캐리 람은 강제 진압으로 우산혁명을 무산시킨 공로를 인정받아 행정수반에 올랐다. 이번에도 2014년 당시처럼 강경대응 방침을 이어가면서 민심에 불을 질렀고, 결국 사퇴 압박까지 받게 됐다.

소슈아 웡은 이번 시위에 참여하면서 “더욱 많은 시위가 일어나고 더 많은 사람이 시위에참여할 것”이라면서 “특히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와 홍콩 주권 반환 22주년 전에 더 많은 시위가 벌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끝까지 싸우겠다는 입장인데, 왜 이렇게까지 홍콩 시민들이 ‘송환법’에 격렬하게 반대하는 것일까.

이에 대해 ‘중국의 독재주의 확장’이 원인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18일 대만 언론에 따르면, 우자오셰 대만 외교부 장관은 전날 대만 정치대 국제사무학원과 미국 싱크탱크 브루킹연구소가 ‘아시아 평화에의 위험’을 주제로 대만에서 공동 개최한 세미나 기조연설에서 이같이 분석했다는 것이다.

또 홍콩의 시위를 보도하는 매체들은 홍콩 정부가 범죄인 인도 법안 입법 시도를 철회한 상황에서도 시민들이 거리로 나온 것에 대해 중국과의 일체화를 추진하는 시진핑 정부에 대한 반발을 드러낸 것이라고 분석했다.

중국은 1997년 영국으로부터 홍콩을 넘겨받으면서 최소 50년간 고도의 자치와 사법독립, 언론의 자유 등 ‘일국양제’에 체제를 약속 받았다. 그런데 2012년 시진핑 중국 주석이 집권하면서 ‘일국’을 강조하면서 홍콩뿐만 아니라 마카오, 대만 등에도 중화사상을 강요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에 홍콩에서는 반발하며 2014년 우산혁명까지 벌였던 것인데, 이번 시위를 계기로 끝까지 투쟁하려는 이유는 일국양제 원칙이 사라지는 2047년에는 무슨 일어 벌어질 지 모른다는 생각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 스스로 정치․외교력 흠집 자초한 시진핑

시진핑 정부에서는 한족과 여러 소수민족을 통합하여 하나로 나아가자며 ‘중국몽(中國夢)’을 강조해왔다. 그러나 홍콩에서 200만 명 규모의 홍콩시민들이 ‘송환법’에 반대하며 시위에 나서면서 시 주석에게 위기를 안겼다.

우선 헌법까지 수정하며 장기 집권의 길을 열었던 시 주석의 정치력에 흠집이 생겼다. 뉴욕타임스(NYT)는 “법안 추진 중단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2012년 집권 이후 가장 큰 정치적 후퇴”라고 지적했다. NYT가 이렇게 지적한 이유는, 홍콩 람 장관이 송환법 추진 중단을 밝힌 계기와 관련있다. 홍콩 업무를 총괄하는 한정 중국 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이 홍콩 시위 발생 이후 홍콩과 인접한 광둥성 선전시로 내려와 대책회의를 열었고, 14일 밤 람 장관에게 법안 중단을 지시했기 때문이다. 이는 ‘송환법’ 추진에는 중국이 깊숙이 관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는 부분이며, 결국 중국 정부에 대한 홍콩 시민들의 강력한 저항이라고 볼 수 있다. 이로써 시 주석 입장에서는 홍콩의 중국화, 그리고 대만까지도 하나로 통합하려던 계획도 실패했다고 볼 수 있다.

이번 일이 시 주석에게 타격이 되는 또 하나의 부분은 G20 회의에서 열릴 미중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홍콩 문제를 의제로 삼을 가능성이 있어 중국이 불리한 상황에 놓이게 됐다는 점이다.

미국이 홍콩 시위를 지지하자 중국은 ‘내정간섭을 중단하라’며 반발했지만, 이번 문제가 ‘인권문제’로 치부되면서 미국에 개입여지를 주었다. 실제로 미국은 이번 홍콩 문제를 미중 무역협상 카드로 활용할 의지를 보였다. 미국 의회는 홍콩 시위를 기점으로 해마다 홍콩에 대한 일국양제와 자치가 잘 지켜지고 있는 지를 재평가하도록 하는 법안을 제출했다. 미국은 현재 비자나 법 집행, 투자를 포함한 국내법을 적용할 때 홍콩을 중국과 달리 특별대우 하도록 하고 있지만 재평가를 통해 이를 철회하겠다며 중국을 압박하고 있다.

결국 무리한 중국몽 추진으로 시 주석 스스로 자신의 정치․외교력에 흠집을 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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