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날로 악화일로를 걷고 있는 한일관계, 하지만 이러한 한일관계 악화는 일본의 몽니에 따른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래픽_진우현 뉴스워커 그래픽 2담당>

[뉴스워커_국제문제] 한․일 정부의 관계가 일제 강제 징용 피해자 배상 판결 문제로 악화 일로를 걷고 있다. 일본 정부는 보복 조치로 지난 1일 한국에 반도체 제조 등에 필요한 핵심 소재 수출 규제를 단행했다. 반도체 소재 분야는 일본 의존도가 높아 우리 기업의 피해가 예상되는 가운데, 일본 내에서도 오히려 부메랑으로 돌아올까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그러나 일본에서는 한국인에 대한 비자발급 엄격화 등 추가 제재까지 구상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맞서 우리 정부는 세계무역기구(WTO) 제소 등의 맞불 작전을 고심하고 있다.

◆ 비상걸린 국내 업계 ‘일본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반도체 소재 탓’

일본 경제산업성은 지난 1일 오전 보도자료를 통해 “수출 관리 제도는 신뢰를 바탕으로 하는데 한국과 일본의 신뢰 관계가 현저하게 훼손됐다”면서 “수출 관리를 적절히 실시한다는 관점에서 한국 수출에 대해 엄격한 제도 운용을 실시한다”고 발표한 바 있다. 이어 수출 허가 신청 면제대상인 이른바 화이트(백색) 국가에서 한국을 제외한다면서 오는 4일부터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리지스트, 에칭가스를 관련 제조 설비와 기술을 포함해 한국으로 수출할 때 ‘포괄수출허가’ 대상에서 제외하고 개별 심사를 실시한다고 밝혔다. 이로써 앞으로 일본에서 반도체 소재를 들여올 때마다 매번 건별로 평균 90일 정도 걸리는 허가 절차를 거쳐야만 한다.

이렇게 일본이 반도체 소재 수출 규제를 한 것은 반도체 강국인 우리의 급소를 노린 의도적 규제라는 평가다. 우리나라 삼성전자와 삼성디스플레이, SK하이닉스, LG디스플레이 등이 모두 거의 전적으로 일본업체의 공급에 의존하고 있는 형편이기 때문이다.

일본 정부가 수출 규제를 시행하는 품목은 TV와 스마트폰 패널의 핵심재료인 플루오린 폴리이미드와 반도체 제조 과정에서 필요한 리지스트, 고순도불화수소인 에칭가스로서 일본이 세계 생산량의 90% 안팎을 차지하는 전자산업의 핵심부품이다. 현재는 국내 반도체․디스플레이 업계가 확보한 비축량은 소재별로 대략 한 달, 최대 3개월 분량 정도인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 정부가 규제한 3가지 소재 가운데 한 가지라도 부족하면 전체 생산공정이 멈출 수밖에 없기 때문에 심사를 차일피일 미룰 경우 당장 8월부터 타격이 있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 국산 소재는?

한국이 반도체 강국이라고는 하지만 사실 완성품 단계에서 선두일 뿐 소재나 장비 부분에서는 일본에 비해 다소 낮은 수준이라는 게 업계 관계자의 평이다. 현재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관련 소재 국산화는 50% 수준이라는 것이다. 여기에 포토리지스트의 경우 국산으로는 대체 불가인 것으로 알려졌다. 포토레지스트 중에서도 불화아르곤(ArF) 레지스트, 극자외선(EUV) 레지스트는 한국에서는 만들지 못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 정부와 산업계가 이번을 계기로 부품․소재․장비 부문 경쟁력 강화작업을 본격화하겠다는 계획이다. 그동안 추진해왔던 ‘탈 일본화’ 작업을 가속화 하겠다는 것인데, 2일 산업통산자원부에 따르면 정부는 지난해 발표한 부품소재장비 자립․글로벌화 대책을 확대 시행하기로 하고 예산 집행을 앞당긴다는 계획이다. 산업부는 소재․부품․장비 자립․글로벌화에 앞으로 매년 1조원을 투자하기로 했다. 이를 통해 2030년까지 100개 핵심 소재․부품과 20개 장비의 자립화율을 높인다는 계획이다.

이 때문에 일본의 수출 규제로 최악의 경우 국내 반도체․디스플레이 제조사들이 단기적으로 생산 차질을 겪을 수 있지만 중장기적으로는 수혜를 입을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 일본 내에서도 우려 목소리 나와

일본의 반도체 소재에 대해 한국에 수출 규제를 단행하자 전 세계 IT 업계들도 긴장했다. 한국의 메모리반도체는 사실상 대체재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당장 세계 IT 업계에도 미칠 영향을 걱정하며 한국의 반도체 공급업체들에 대해 수출 물량이 충분한지 점검하고 나선 것이다.

일본 내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일본 언론들은 “일본 정부의 수출 규제가 결국 한국 국산화 속도만 높일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일본 기업들 역시 한국 기업에 판매하고 있는 비중이 높기 때문에 매출에 타격이 있을까 전전긍긍이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지난 2일 “한국은 일본 반도체 장비업계의 큰 단골”이라면서 “한국에서 제조된 반도체를 수입하는 일본 기업들도 적지 않다. 반도체 소재의 한국 수출이 제한받으면 일본도 피해를 볼 것이라고 지적했다”

일본 언론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 외신들도 일본을 부정적으로 평가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일부 분석가들은 일본이 제 발등 찍는다고 지적했다”면서 “한국산 반도체 및 디스플레이를 이용하는 일본 기업에 부메랑이 될 수 있다”고도 평가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의 경우는 “자유무역에 대한 일본의 위선이 드러났다”고 비판했다. 경제전문가들도 일본의 수출 규제는 WTO가 강조하는 상호호혜와 차별대우 폐지 규정에 어긋난다고 지적했다. 때문에 우리 정부는 WTO에 제소하는 등 국제법에 따라 단호하게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일각에서는 우리나라도 일본산 자동차와 패션 제품의 수입 절차를 까다롭게 하거나 밴드플래시 반도체 등의 일본 수출을 줄여 맞불작전으로 나가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방식은 한일 관계를 손 쓸 수 없을 정도로 악화시킬 수 있기 때문에 우리 정부는 맞불 카드가 있어도 공식화하지는 않겠다는 방침이다.

그럼에도 일본에서는 한국인에 대한 비자 발급을 엄격하게 하는 등 다양한 대항 조치를 강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한편에서는 일본 내에서도 자국 기업의 피해를 우려해 이번 수출 규제를 단순히 ‘협상용 카드’로 활용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하고 있다.

일본의 이번 조치로 한․일 기업뿐만 아니라 세계 IT 기업까지 연쇄적으로 피해가 우려되는 상황에서 과연 일본은 어떤 행보를 걸을지 지켜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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