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워커_국제정세] 반도체 소재 수출 규제에 대북 논리 끌어들인 일본 아베, 왜?
[뉴스워커_국제정세] 반도체 소재 수출 규제에 대북 논리 끌어들인 일본 아베, 왜?
  • 박경희 기자
  • 승인 2019.07.08 14:45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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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_황성환 뉴스워커 그래픽 1담당

[뉴스워커_국제정세]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한국에 대한 반도체 소재 수출 규제 조치와 관련해 한국의 ‘대북 제재 위반’을 이유로 들었다. 일본에서 수출한 에칭가스, 즉 고순도불화수소 등 화학물질이 한국을 거쳐 북한으로 유입됐기 때문에 수출을 규제했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그러나 명확한 근거를 제시하지 않은 터여서, 이번 수출규제로 국내외에서 일고 있는 일본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분산 시키고 한국 내 거센 반일 여론도 분열시키겠다는 노림수로 분석되고 있다.

◆ 대북 제재를 끌어들인 아베

한국에 반도제 소재 수출 규제를 했던 일본의 아베 총리는 강제징용 배상 판결 등으로 양국 신뢰관계가 훼손됐고, ‘수출 관리를 둘러싸고 부적절한 사항’도 발생했기 때문이라고 말한 바 있다.

아베 총리는 그 ‘부적절한 사항’이 ‘대북 제재’와 연관 있음을 밝혔다. 지난 7일 BS후지TV의 참의원 선거(21일) 토론을 위해 출연하면서 “한국은 대북 제재를 지키고 있고, 북한에 대해 제대로 무역관리를 확실히 하고 있다고 말하지만, 강제징용 문제에 대해 국제적인 약속을 지키지 않은 것이 명확하게 됐다”면서 “무역관리도 지키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아베 총리의 측근인 하기우다 고이치 자민당 간사장 대행도 지난 4일 같은 방송에서 “한국에 수출한 화학물질의 행선지를 알 수 없는 일이 있었다”고 하면서 “군사 전용이 가능한 물품이 북한으로 흘러갈 우려가 있다”고 언급했다. 특정시기에 한국기업에서 에칭가스 관련 물품의 대량 발주가 급증했는데, 군사 전용 물품이 전달됐을 우려가 있다고 주장한 것이다.

◆ 왜 대북 논리인가

이러한 일본 측의 주장에 대해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에칭가스는 화학물질 특성상 오래 보관하기 어렵기 때문에 공급 즉시 소진하기 바쁘다”면서 “업체 내부적으로 소진한 물량 등에 대해서도 철저히 관리하고 있기 때문에 흘러나갈 가능성이 사실상 없다”고 말했다.

그런데도 왜 이런 주장을 할까. 일본의 이번 수출 규제에 대해 일본 안팎에서 ‘근거가 부족’하다는 지적이 쏟아지고 있다. 세계무역기구(WTO) 기준 위반이자 자유무역주의에 반하는 것이라는 지적이 일자, 수출 규제 조치의 정당성을 확보하면서 이러한 비판의 분위기를 반전시키기 위해 대북 제재 위반 카드를 들고 나왔다는 분석이다.

상황 돌파를 위해 안보 문제를 들고 나온 것인데, 아베의 궁극적 목적은 선거에 활용하기 위함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아베 총리는 항상 그랬듯 이번에도 향후 정권 장악력 등을 좌우할 참의원 선거를 앞두고 한국 때리기를 선거에 활용하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아베 총리는 ‘대북 제재 위반’ 발언에 나름대로의 힘을 싣기 위해 국내 반도체 소재 수입 및 가공업체들로 하여금 ‘일본에서 수입한 소재를 무기 생산용으로나 일본의 적성국가로 반출하지 않는다’는 서약서까지 일본 거래처에 제출하도록 한 것으로 알려졌다. 게다가 반도체 사용 목적 등을 상세히 기재한 서류를 달라는 요청까지 받았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일본 정부는 강제 징용 판결 문제 해결을 위해 ‘제 3국에 의뢰해 중재위를 꾸리자’고 요구하고 있고, 그 답변을 18일까지 달라고 한국 정부를 압박하고 있다. 결국 대북 제재 운운하면서도 ‘강제 징용 판결’에 대한 보복임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오늘자 NHK는 한국 측 대응이 없을 경우 추가 규제에 나설 것이라고 보도했다. “일본 정부가 이번 조치를 계기로 한국 측에 원자재의 적절한 관리를 촉구할 생각”이라면서 “개선을 위한 움직임이 없으면 규제 강화 대상을 일부 공작 기계와 탄소 섬유 등 다른 품목으로 확대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하고 있어 한국 측 대응을 신중하게 지켜볼 방침”이라고 보도한 것이다.

◆ 위기감 느끼는 기업들

일본이 우리 산업의 급소를 노려 경제 보복을 하면서 반도체 뿐만 아니라 정보기술(IT) 등 국내 첨단산업 분야에 전체적으로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7일인 어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급히 일본 출장길에 올랐다. 우리 정부 대응을 기다리기엔 사안이 급박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재계에서도 “그룹 총수가 휴일에 직접 일본으로 건너갔다는 건 삼성이 이번 사태의 심각성을 무겁게 인지하고 있다는 의미”라고 분석하고 있다.

실제로 지난 4일 삼성전자․SK하이닉스 고위급 인사, 한국반도체산업협회 간부와 에칭가스업체의 대표가 국회에서 더불어민주당 이인영 원내대표를 비공개 면담해 재고량이 한 달 치도 없는 것으로 알려진 불화수소 등 일본 규제 품목이 고갈됐을 때의 심각성을 얘기했다.

“최악의 상황”이라고 표현한 것으로 알려졌다. 에칭가스 등 일본 소재 공급이 중단이 장기화되면 반도체 공장이 멈춰서는 것도 문제지만 연구개발(R&ad)이 중단돼 세계 1위 반도체 기술력이 경쟁국에 따라잡힐 여지가 있다는 것이다.

이에 삼성전자, SK하이닉스는 일본의 경제보복 선언 직후 일본에 구매팀을 급파해 스텔라화학, 모리타화학 등 현지 업체를 찾아 공급을 요청했지만 추가 재고 확보에 어려움을 겪은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이 부회장이 직접 7일 일본 인맥을 만나 돌파구 마련에 나선 것이다.

이번 이 부회장의 행보를 두고 한일 양국의 외교 갈등에서 기인한 것이라는 점에서 이 부회장의 보폭에 한계가 있을 것이라는 우려와 일본 내에서 탄탄한 네트워크를 갖고 있는 만큼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올 것이라는 엇갈린 목소리가 있다.

이 부회장이 들고 올 결과물은 물론 향후 한일 관계에 촉각이 곤두설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