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래픽_뉴스워커 황성환 그래픽 1담당

[뉴스워커_한일경제전쟁] 일본이 반도체 소재를 제3국을 통해 한국으로 오는 우회로조차 차단한데다 추가 보복을 예고한 날짜가 1내일(18일)로 다가오면서 정부는 물론 정계․재계 모두 비상체제에 돌입했다. 문 대통령과 여야 5당 대표가 내일 오후 청와대에서 회동하게 되며, 삼성전자는 불화수소 공급선 다변화를 위한 테스트에 착수했고 SK 하이닉스도 공급선 다변화를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 문 대통령과 5당 대표, 1년 4개월만에 한 자리에 모인다

문 대통령이 지난 15일 수석․보좌관회의에서 일본 정부의 한국 수출규제 조치에 대해 “현명하지 못한 처사, 결국 일본 경제에 더 큰 피해가 갈 것” 이라며 강도 높게 비판하면서 본격 대응 의지를 보였다.

문 대통령은 이날 “일본은 당초 강제징용에 대한 우리 대법원의 판결 조치를 이유로 내세웠다가 개인과 기업 간의 민사판결을 통상 문제로 연결시키는 데 대해 국제사회의 지지를 얻지 못하자 우리에게 전략물자 밀반출과 대북 제재 이행 위반의 의혹이 있기 때문인 양 말을 바꿨다”며 일본의 행태를 지적했다. 그러면서 불편했던 과거사와 미래지향적 한일관계를 분리 대응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이러한 문 대통령의 비판에 대해 스가 요시히데 일본 관장장관은 16일 정례 브리핑을 통해 “수출 규제 조치는 일본의 안전보장을 위해 수출 관리를 적절히 하려는 차원의 운영 방침 재검토”라면서 “(한국인 강제징용배상 문제에 대한) 대항 조치가 아니다”라고 변명했다. 그러나 아베 총리가 지난 3일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으로 종결된 강제징용배상 문제를 법원이 되돌리는 것은 국제법 위반”이라며 “양국의 신뢰가 훼손돼 한국에 대한 무역 우대 조치를 취소한다”고 명백하게 말한 바 있다.

또한 마이니치신문의 야마다 다카오 특별편집위원은 지난 15일 칼럼에서 “이번 규제가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에 관한 작년 10월 한국 대법원 판결을 의식한 것임은 공공연한 비밀”이라고 지적했다. 그에 따르면 일본 정부는 한국 대법원 판결로, 지난 1965년 체결된 한일기본조약과 청구권협정으로 해결된 과거사 문제를 다시 뒤집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문제를 이대로 방치하면 1951년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과 같은 옛 연합국과의 강화나 동남아시아 국가들과의 배상 협정을 뛰어넘는 손해배상 청구를 막지 못할 뿐 아니라 장래 북한과 국교를 맺을 때 터무니없는 배상청구의 구실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일본 정부의 한 고위관계자는 한국에서 정권이 바뀔 때마다 과거사 문제가 거론되는 악순환을 끊고 싶다고도 말했다는 것이다.

진정한 사과와 보상이 있었다면 과거사 문제가 이렇게까지 이어지지 않을 수 있었던 문제를 이제는 경제보복으로 무리하게 대응하는 일본에 대해 문 대통령은 일회적인 무역보복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즉, 일본이 반도체를 콕 집을 것은 근본적으로 우리 경제의 성장을 막고 발목을 잡으려는 의도가 있다면서 일본의 조치를 ‘경제적 공격’으로 규정하고 결코 물러설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그리고 16일 오후 국회에서 더불어민주당과 청와대가 연석회의를 열고 일본의 수출 규제에 따른 국내 기업의 피해 최소화를 위해 범정부적으로 가용 자원을 총동원하기로 했다. 또한 수출규제 영향을 받는 소재․부품 산업에 대한 규제 완화를 부처별로 검토하기로 하는 한편, 필요한 경우 대일 특사 파견도 검토하기로 했다.

이와 같은 내용을 조정식 정책위의장이 회의 후 브리핑을 통해 밝히면서 “대체 수입선 확보 등 기업을 전방위적으로 지원하고, 이번 일이 한국 경제의 체질 개선과 경쟁력 강화를 위한 전화위복의 계기가 될 수 있도록 힘을 모으라고 했다”고 말했다.

한편, 문 대통령과 여야 5당 대표 간의 회동도 내일(18일) 갖기로 했다. 문 대통령이 여야 5당 대표가 한 자리에 모이는 것은 1년 4개월여 만이다.

◆ 삼성전자․SK하이닉스 공급선 다변화 본격 나서

청와대와 정계 뿐 아니라 업계에서도 일본의 반도체 소재 수출 규제 대응에 나섰다. 특히 삼성전자는 일본산 외의 불화수소에 대한 품질성능 테스트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17일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삼성전자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삼성이 새로운 재료를 시험할 때 사용하는 반도체 생산라인에 일본기업 이외의 다른 기업이 만든 불화수소를 투입해 시험을 시작했다”고 보도했다. 이어 “삼성 측에서 조달처를 밝히지 않고 있지만 한국․대만․중국 기업 제품일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중국 상하이증권보는 16일 인터넷판을 통해 화학사 빈화그룹이 한국의 일부 반도체 회사로부터 전자제품 제조급 불화수소 주문을 받는 데 성공했다고 보도했다. 빈화그룹과 계약을 맺은 곳이 어디인지는 밝히지 않았다.

또한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EUV용 포토레지스트 규제 해법을 ‘인프리아(Inpria)’라는 미국 오리건주 국립대학교 연구소에서 2007년 분사한 스타트업에서 찾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는 지난 2014년 삼성벤처투자를 통해 인프리아에 470만 달러(한화55억 원)을 투자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삼성전자는 “현재 EUV 감광액 조달을 위해 인프리아와 협상을 진행하고 있는지는 확인해 줄 수 없다”면서도 “다만, 이번 규제 사태가 발생하기 전부터 삼성전자가 필수 소재 공급처 다양화를 위해 꾸준히 노력해온 것은 사실”이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뿐 아니라 SK하이닉스도 불화수소 공급선 다변화를 위해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렇게 우리 업계가 본격적으로 탈(脫)일본화에 나서자 일본기업에서는 긴장하는 모습이다. 니혼게이자이는 “일본기업들이 삼성의 변화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면서 “한국 반도체 업계의 탈일본화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했다.

일본의 경제보복으로 지금 당장은 한국 기업의 위기처럼 보이지만 결국 일본 기업에 부메랑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커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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