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과 일본의 경제전쟁이 갈 수록 심화되는 모습이다. 일본은 한국을 백색국가에서 제외시키기 위해 무리수를 두고 있는 모습이다. <황성환 뉴스워커 그래픽 1담당>

[뉴스워커_국제정세] 일본 정부가 한국을 ‘백색국가’에서 제외할 가능성이 커지면서 글로벌 투자은행(IB)들은 한국의 성장률 전망을 당초 일본의 3개 품목에 대해 수출규제를 할 때보다 더 하향될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뿐만 아니라 미국의 IT업계와 미국 기업연구소(AEI)는 글로벌 전자업계 공급망을 파괴를 우려하고 나섰다.

◆ ‘미래 모빌리티 산업’ 집중 공격할 듯

일본정부는 예고한대로 8월 중에 한국을 백색국가에서 제외할 것으로 보인다. 일본 경제산업성은 한국을 백색국가에서 제외하는 내용의 정령 개정안에 대한 국내외의 각계 의견을 지난 24일까지 받았다. 이와 관련해 오늘(26일) 요미우리 신문 보도에 따르면, 일반적인 의견공모에서는 보통 수십 건 내외였는데 이번에는 이례적으로 3만여 건이 접수됐으며, 이 가운데 90% 이상이 한국에 백색국가 혜택을 주지 말아야 한다는 내용이었다는 것이다.

일본 정부는 이르면 내달 2일에 열리는 각료회의(국무회의)에서 수출무역관리령 개정안을 처리하는 방향으로 최종 조율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개정안이 각의를 통과하면 세코 히로시게 경제산업상이 서명하고 아베 신조 총리가 연서한 뒤 나루히토 일왕이 공포하면 21일 후에 시행된다.

일본이 한국을 백색국가에서 제외하면 한국은 반도체뿐 아니라 모든 전략물자 품목에 대해 개별 수출허가를 받아야 하기 때문에 거의 전 산업에서 수출규제가 강화된다. 전략물자관리원이 발표한 ‘일본 수출통제 전략물자 목록’에 따르면 반도체, 디스플레이, 첨단소재, 전자, 통신, 수소차 배터리, 인공지능(AI) 분야 등 핵심 산업 활동에 필수적인 1,112개 품목이다.

즉, 1차에서 반도체, 디스플레이 우리 핵심기업인 반도체를 타격했다면 백색국가 제외를 통한 2차 공격에서는 한국의 미래성장 동력이라고 할 수 있는 첨단산업군 특히 2차 전지와 수소․전기차로 대표되는 미래 모빌리티 산업을 공격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 IB, 한국 경제성장률 하향 조정

우리 정부는 대일의존도를 줄이기 위한 소재 장비 분야 육성과 수입선 다변화, 수출 규제 피해 기업 지원 등 대책마련에 분주한 모습이다. 그러나 단기적인 피해는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IB들도 한국 경제성장률 전망을 낮추고 있다. 일본의 수출 규제로 인한 피해를 기정사실화하는 것이다.

한국은 이미 미․중 무역전쟁으로 올 상반기 수출 분야에서 타격을 입은 상태다. 작년 12월부터 7개월째 수출액이 감소했고, 6월 수출액은 1년 전보다 12.3% 줄어 3년 5개월 만에 최대 감소폭을 보였다. 여기에 일본이 반도체 소재 3개 품목에 수출규제까지 가하면서 IB들은 한국의 성장률 전망을 2% 가깝게 낮췄다. 문제는 일본이 한국을 백색국가에서 제외하면 경제성장률은 추가 하향 조정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옥스퍼드 이코노믹스는 보고서를 통해 현재는 한국의 성장률을 2.0%로 전망하지만, 양국이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전략으로 맞서 공급 체인이 심각하게 망가질 경우 성장률이 더 하락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 美 기업들, 글로벌 공급망 붕괴 우려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경제에도 악영향을 미친다. 라지브 비스와스 IHS마킷 아시아태평양지역 수석 이코노미스트도 ‘한일 무역 긴장은 새로운 무역 전쟁의 방아쇠가 될 것인가’라는 보고서에서 “아시아국가의 수출이 이미 미․중 무역협상과 글로벌 전자기기 신규주문 감소로 강력한 역풍을 맞은 상태에서 일본의 조치가 세계 교역에 긴장을 더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김규판 선진경제실장은 한국이 일본 의존도가 높은 만큼 일본 기업들도 타격을 받으며, 글로벌 가치 사슬이 촘촘하게 연결된 만큼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라도 모든 국가에서 영향을 받는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미국의 산업계와 미국 업계를 대변하는 보수 성향의 싱크탱크인 미국기업연구소(AEI)는 일본을 직접적으로 비판하는 목소리를 냈다.

미국 반도체산업협회(SIA), 국제반도체장비재료협회, 전미소비자기술협회 (CTA) 등 미 전자 협회 6개 단체는 지난 23일(현지시각) 일본의 대(對) 한국 수출규제 해결을 촉구하는 서한을 한․일 양국에 보냈다. 6개 단체는 세코 히로시게 일본 경제선업성 대신(장관)과 유명희 한국통상교섭본부장에게 보낸 서한에서 “글로벌 ICT(정보통신기술)와 제조업은 복잡한 세계 공급 체인과 부품․재료 등을 적시에 공급하는 시스템에 의존하고 있으며, 한국과 일본은 이러한 글로벌 벨류체인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이어 “불투명하고 일방적인 일본의 수출 규제 정책의 변화는 공급망 붕괴, 출하 지연 등으로 이어질 수 있고, 장기적인 피해를 줄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러므로 “전 세계 ICT와 제조업에 대한 장기적인 악영향을 피할 수 있도록 한국과 일본이 신속한 해결을 모색하고, 상황을 더 악화시키는 행동을 하지 말 것을 촉구한다”고 전했다. 그도 그럴 것이 미국 IT업체들은 한국산 반도체 D램에 87% 이상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AEI도 공식 홈페이지에 “일본, 한국에서 물러서라. 삼성과 하이닉스는 화웨이가 아니다”라는 제목의 글을 게재했다.미국 주택도시개발청 부차관보를 역임하고 미국무역대표부(USTR) 자문위원을 지낸 클로드 바필드 연구원이 작성한 이 글은 “한․일 과거사와 관련해 어느 편을 들겠다는 것이 아니라 일본이 도발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위험하고 파괴적인 보복을 했다는 점을 다루려고 한다”면서 “이는 글로벌 전자업계 공급망을 매우 혼란에 빠뜨릴 뿐 아니라 5G 이동통신 산업에서 지배력을 키우려는 중국을 강화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비판했다. 또한 “중국과의 중요한 경쟁에서 동맹 파트너를 분열시키는 것은 용납될 수 없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그리고는 이 글 끝에 “그렇다고 이 모든 것이 문재인 대통령의 책임을 면책하는 것은 아니다”며 “문 대통령은 한국인들의 이해 가능하나 자기 패배적인 감정을 자극하기보다 누그려 뜨려야한다”고 덧붙였다.

즉, 경제․안보상으로 위기에 처해 있는 현재의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감정적으로 접근하지 말아야 한다는 조언을 새겨들을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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