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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워커_국제정세]한국과 이스라엘이 자유무역협정(FTA)을 21일 체결했다. 이스라엘은 인구 900만 명의 작은 나라이지만 하이테크 산업에서 강력한 경쟁력을 갖춘 나라이다. 따라서 우리로서는 일본 수출 규제로 위기에 처한 반도체 소재, 부품, 장비, 분야 수입선을 다변화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또한 우리나라는 중동지역에 처음 진출하는 것일 뿐 아니라 아시아 국가로서는 이스라엘과 처음 FTA를 체결함으로써 이스라엘 시장을 선점할 수 있게 됐다.

◆ 첨단기술의 나라, 이스라엘과 협력한다.

산업자원부 유명희 통상교섭본부장은 21일 이스라엘 예루살렘에서 엘리 코헨 이스라엘 경제산업부 장관과 ‘한국-이스라엘 FTA’ 협상이 최종 타결됐음을 공식 선언했다. 한-이스라엘 FTA는 협정문 정식 서명과 국회 비준을 거쳐 이르면 내년 상반기에 발효될 예정이다. 발효 이후에는 한국은 이스라엘 제품 99.9%에 대해 관세를 철폐하고, 이스라엘은 한국 제품 전체에 관세를 매기지 않게 된다.

이렇게 이스라엘과의 FTA 체결로 가장 수혜를 입을 것으로 예상되는 품목은 우리의 주요 수출품목인 자동차, 섬유, 화장품 등이다. 특히 자동차의 경우 자국 자동차 브랜드가 없는 이스라엘에서 한국산 자동차가 점유율 1~2위를 기록하고 있다. 우리의 이스라엘 수출액에서 자동차가 절반을 차지할 정도로 비중이 높은데, 현재 자동차 관세 7%에서 무관세로 바뀌게 된다.

반면, 이스라엘의 주요 수출품인 반도체 제조용 장비와 전자응용 기기 등에 관세는 최대 3년 이내에 철폐될 예정이다. 이로써 일본 의존도가 높은 반도체 장비 부문(2018년, 45%)에서 수입다변화를 꾀할 수 있게 됐다. 이스라엘의 경우 장비 개발업체를 포함해 150여개의 반도체 관련 업체를 보유하고 있으며, 특히 반도체 생산에 필요한 투과 전자현미경(TEM) 장비를 만드는 기술력은 세계적 수준으로 알려져 있다.

이 외에도 한-이스라엘은 FTA 체결로 서비스 투자분야에서 네거티브 자유화 방식을 도입해 세계무역기구(WTO) 서비스 협정 이상의 개방에 합의했으며, 2003년에 발효된 기존 한-이스라엘 투자보장협정을 대체하는 투자보호제도가 마련됐다. 원산지는 기업편의를 위해 단순한 품목별 원산지 기준(챕터별 공통원칙)을 도입하고, 개성공단 등 역외가공 허용 근거 규정을 마련했으며, 이스라엘 지역 한류 확산을 위해 디지털 환경의 영화, 음악 등 한류 콘텐츠 보호와 산업재산권 보호 등 지식재산권 전반에 대한 보호권도 확보했다.

한편 이스라엘이 강한 항공, 보건․의약, 가상현실(VR), 빅데이터, 재생에너지, 정보기술, 인공지능(AI) 등 다양한 분야에서 기술협력이 확대된다. 즉, 이스라엘은 스타트업 생태계가 발달돼 있는 만큼 국내 중소기업들과의 협력이 원활해질 것으로 보이며, 양국간 기술협력 기반이 됐던 한-이스라엘 산업기술연구개발기금도 현재 연간 200만 달러에서 400만 달러로 2배 증액돼 산업기술 공동연구개발(R&D)이 확대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이에 따라 한국생산기술연구원과 이스라엘 와이즈만연구소 기술사업단은 소재부품․장비 협력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와이즈만 연구소는 세계 5대 기초과학연구소 중 하나로 생화학, 생물학, 화학, 수학․컴퓨터공학, 물리 등 5개 분야에서 250개 연구실을 운영하고 있다.

유 본부장은 “원천기술 보유국인 이스라엘과의 상생형 산업 기술 협력 증진이 소재․부품․장비의 경쟁력 강화를 위한 국내 생산기술 선진화의 기틀을 마련하는데 일조할 것”이라고 밝혔다.

◆ 우리 기업들, 발 빠르게 움직여

한국과 이스라엘 양국은 FTA 체결을 위해 2016년 5월 협상을 개시해 약 3년 간 6차례의 공식협상을 거쳤다. 특히 지난 달 루벤 리블린 이스라엘 대통령이 방한해 문재인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통해 FTA를 조속히 타결하기로 합의하면서 협상이 급속히 진전돼 한 달만에 FTA가 최종 마무리 됐다.

그런데 우리 기업들은 FTA 체결 전부터 발 빠르게 움직였던 것으로 보인다. 리블린 대통령은 지난 달 한국을 방문할 당시 현대․기아자동차 기술연구소인 남양연구소를 찾은 바 있는데 우리로서는 매우 고무적인 일이었다. 현대․기아차가 현재는 이스라엘 자동차 시장에서 1,2위를 달리고 있긴 하지만, 미래를 내다봤을 때 이스라엘과 협력하는 것이 유리해지기 때문이다. 즉 이스라엘 자동차 관련 스타트업 기술들이 미래 차 기술 분야를 선도하고 있어서 현대기아차 입장에서는 이스라엘 업체와의 기술협력을 통해 자율주행과 같은 미래차를 빠른 시일 내에 완성하겠다는 입장인 것이다. 따라서 현대차는 이스라엘 업체에 다양한 투자하기 위한 방안을 미리 모색해 왔다.

롯데그룹 신동빈 회장은 한-이스라엘 FTA 타결을 앞두고 이스라엘 투자를 위해 지난 12일 이스라엘을 방문하고, 엘리 코헨 경제산업부 장관을 만나 이스라엘 첨단기술 기업 및 스타트업에 대한 투자 방안을 논의했다. 이날 신회장은 “이스라엘의 혁신 농업, 로봇, 인공지능 기반의 기업들과 협업할 기회를 모색하고 있다”면서 “세계 최고 수준의 스타트업에 투자할 기회를 찾고자 한다”고 말했다. 그러자 코헨 장관도 “전 세계 글로벌 기업이 이스라엘에 R&D 센터 설립 등을 통해 현지 스타트업에 활발하게 투자하고 있다”면서 “롯데에도 이를 위한 충분한 지원을 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우리 정부는 이스라엘 외에도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필리핀 등 성장 잠재력이 큰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이 신남방 3개국과도 FTA 체결을 위한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 이렇게 우리 정부는 미․중 무역갈등, 일본의 수출 규제로 닥친 경제 파장을 극복하기 위해 분주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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