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기 오아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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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뉴스워커
  • 승인 2014.06.12 0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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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옥란 / 산재보험 수기공모전 대상 수상작

아버지가 다치셨다는 청천병력 같은 전화를 받고 실성한 사람이 되어 병원에 달려갔다.
“에휴, 3년은 잘 버텨 느그들 뒷바라지 좀 하려고 여기까지 왔는데, 이게 무슨 날벼락이니, 병신이라도 된다면… 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인간이 되는 거 아닌지 모르겠다.”

상반신에 칭칭 감겨진 압박붕대와 병실 천장을 번갈아 보며 아버지는 꺽꺽 마른 울음만 삼켰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내 마음도 칼로 에이는 듯 아파왔다. 대학원 공부를 더 하고 싶은 생각에 집안형편을 뻔히 알면서도 한국유학을 택한 자신이 얼마나 이기적이고 못난 딸인가 하는 뼈저린 후회가 밀려왔다. 분명 아버지가 한국에 일하러 온 이유 중에 딸의 공부 뒷바라지를 하려는 이유가 있었으니깐, 모두 내 탓만 같았다.

지난해 여름 아버지는 기울어져 가는 집안을 일으켜 세우려는 일념으로 고향을 떠나 “코리안 드림”의 꿈을 안고 한국행에 올랐다. 대부분 중국동포들의 삶이 그러하듯 한국에서의 아버지의 삶은 결코 녹록하지 않았다. 반백을 훌쩍 넘긴 연세에 처음 해보는 일에 대한 적응이 느린 탓에 변변한 일자리 하나 구하기 힘들었고, 마른일 궂은일 가리지 않고 일용직 허드렛일을 하며 돈을 모았다. 하지만 아무리 힘든 일을 하고 탐탁지 않은 시선을 받더라도 아버지는 박사공부를 하는 딸에 대한 자부심 하나로 버티셨고 불평 없이 열심히 일하셨다. 그러던 중 한 아파트 공사현장에서 일하다가 크레인 기사의 과실로 1톤가량의 짐에 깔려 늑골 골절 부상을 당하게 됐던 것이다.

전치 5주라는 진단을 받고 몸이 부서질 듯 밀려오는 아픔을 참으며 아버지는 압박붕대로 몸을 고정한 채 움직이지도, 뭘 드시지도 못하고 꺼이꺼이 신음소리를 참아갔다.

하지만 아버지는 하루에도 몇 번씩 혼잣말로 “혹시라도 병신이 된다면… 이건 뭐 죽기만도 못하지…”를 입에 달고 있었다. 당신이 아픈 것보다 두 딸의 뒷바라지를 끝내지 못했다는 생각에, 혹시나 자식들에게 짐이 될 것 같은 불안감에 떨고 있었다.

“아버지는 뭐 그런 걱정을 하세요. 딸들이 둘씩이나 되는데 아버지 하나 책임지지 못하겠어요? 참, 걱정 붙들어 매세요.” 위로를 한다고는 했지만 사실 상의할 사람 하나 없는 외국에서 막상 큰일을 당하고 보니 나도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하기만 했다.
그것도 그럴 것이 병원에 입원한지 한 주가 넘도록 사고를 낸 기사도 전혀 연락이 없었고 현장 관계자들도 사고처리에 대한 성의를 보이지 않았다. 현장사업소장에게 전화를 하니 모르는 사항이라며 시공사에 확인 후 연락을 준다고 답했을 뿐 감감무소식이었다.

무엇보다 어마어마한 치료비용에 대한 부담감이 밀려왔다. 아버지는 한사코 중국에 들어가서 치료를 받겠다며 퇴원을 시켜달라고 간청을 했고, 간호사는 5주 전치 판정을 받은 환자를 무책임하게 퇴원시킬 수 없다고 설명하면서 산재보험 처리가 될 테니 잘 알아보라고 귀띔해 줬다.

이방인들이 느끼는 외로움 중 제일 큰 외로움이 아마 도움이 필요할 때 상의 할 사람이 없다는 외로움이 아닐까 싶다. 끈질기게 통화를 시도한 결과 결국 시공사 관리자와 어렵게 통화를 하게 됐다. 하지만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관리자의 목소리는 또 한 번의 절망을 안겨줬다. 50이 넘은 아저씨는 현장작업을 못하도록 규정이 돼 있었는데 결국 아버지가 나이를 속이고 일을 했고 안정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았기에 사고를 당했다는 것이다. 또 회사 소속이 아니고 일용직으로 일하러 왔기 때문에 회사 측에서 나서서 처리해줄 문제는 아니지만, 사정이 딱하니 어느 정도 현금 보상은 주겠다고 했다.

사실 그때 우리가족은 한국에서의 산재보험 처리 절차나 혜택에 대해 전혀 무지한 상태였다. 또 주위에 있는 조선족 동포들에게 문의를 해봐도 산재보험에 관련해 아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가장 걱정되는 부분은 치료비에 대한 부담이었다. 의사는 전치 5주라는 판정을 내렸고 입원치료가 끝나서도 계속 재활치료를 받을 것을 권장한 상태에서 어마어마한 치료비를 어떻게 감당해야 할지 막막하기만 했다. 당장 휴학을 하고 취직이라도 해야 되나 심각하게 고민이 되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병원 측으로부터 뜻밖의 정보를 얻었다. 어떠한 경우든지 국적을 막론하고 산재보험처리 혜택을 받을 수 있다는 감격의 정보였다. 회사에서 계속 공상합의를 유도하면서 산재를 처리하지 않을 경우라도 본인이 병원에 소견서를 받아 산재신청을 하면 된다는 것이다. 더 감격스러운 것은 산업재해보상보험에 따라 치료비에 해당하는 요양급여, 치료를 받는 기간 일을 못한 데 따른 손해를 보장해주는 휴업급여도 받을 수 있다는 점이었다. 또 사고로 인해 몸에 장해가 남을 경우에는 노동능력 상실률로 평가하여 이에 해당하는 장해보상도 받을 수 있다는 했다.

이국타향에서, 그것도 한없이 약자의 입장에 놓일 수밖에 없는 외국인 일용직 근로자에게까지 산재보험 처리가 적용된다는 소식은 우리 가정에 가뭄의 단비가 되어 감동으로 전해왔다. 나는 절차에 따라 병원의 소견서를 받아 산재처리 신청을 했다. 얼마 뒤 근로복지공단 담당자가 직접 병원에 찾아왔다. 사실 산재처리 신청을 했을 때만 해도 우리 가족은 반신반의했다. 혹시라도 절차상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고 외국인이라 불이익을 당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걱정으로 마음만 졸이었다. 또 아버지가 중국에 계실 때 전기공 일을 하셨는데 감전 사고를 당했었던 일이 있다.

하지만 그때 산업재해로 인정받지 못했고 회사에서 약간의 배상처리를 하는 것으로 마무리를 지었던 기억이 있었기에 이번에도 반신반의하는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었다. 산재처리 소식을 기다리면서도 우리는 회사 측에서 일정한 보상금을 받고 산재처리를 취소할까하는 부질없는 생각도 했었다. 만의 하나, 산재처리가 안될 경우 근무하던 곳에서도 미운 털이 박히면 아무런 보상도 없이 100% 우리가 감당해야 하는 거 아닌가 하는 불안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근로복지공단에서 내려온 담당자의 위로를 받고 마음을 놓게 됐다. 담당자는 회사가 가입하지 않아도 산재처리가 가능하며 외국인, 내국인 상관없이 100% 산재보험처리를 받을 수 있다고 아버지를 안심시켰다.

감격스러웠다. 아버지가 다친 건 불행한 일이지만, 사막의 긴 터널을 지나가는 것만 같았던 우리에게 한줄기 오아시스가 나타났던 것이다. 가장이라는 무거운 책임감에 짓눌려 그늘졌던 아버지 얼굴에 화색이 돌기 시작했다. 결국 아버지는 산재보험 혜택을 받아 5주간의 병원치료를 받고 재활치료까지 받을 수 있었다. 또 치료를 받는 동안 일을 쉬었던 날짜만큼 70%의 월급보상을 받을 수 있었고 장애11등급 판정을 받고 보상금까지 받게 됐다.

사실 아직도 한국에서 일하고 있는 많은 외국인 근로자들이 위험에 노출된 일에 종사하면서도 꼭 필요한 산재보험 제도에 대해 잘 모르고 있다. 이번 산재처리 과정을 통해 불법체류 중인 근로자들도 법적인 보호를 받아 산재처리를 할 수 있고 여러 가지 노동법적인 권리를 받을 수 있다는 등 구체적인 혜택에 대해서도 알게 됐다. 더 많은 외국인 근로자들에게 산재보험의 혜택을 알려주고 싶은 욕심이 솟구쳤다.
재활치료와 산재보험 처리가 끝난 뒤 아버지는 귀향길에 올랐다. 인천공항에서 아버지는 두툼한 편지봉투 하나를 전해줬다. 공항철도를 타고 돌아오는 길에 나는 편지봉투를 펼쳐보았다. 두툼한 수표와 함께 한통의 편지가 있었다.

“끝까지 뒷바라지 하고 싶었는데 이렇게 그냥 들어가게 되었구나. 보험에서 받은 보상금이다. 아버지가 주는 마지막 소비돈(용돈)이라 생각하고 생활비에 보태라”
코끝이 찡해났다. 아버지는 산재보험금의 일부를 나에게 남겨두고 귀국하셨다. 가을날의 쓸쓸함과 함께 아버지의 애틋한 사랑이 전해졌다. 어깨가 굽어 흔들리는 가을들판의 갈대를 바라보니 아버지 사랑이 더 느껴졌다. 먼지만 수북히 쌓이던 아버지의 뽀얀 어깨를, 그 무게 때문에 일찌감치 등이 굽으셨던 아버지 생각에 자꾸 목이 멘다.

고향에 돌아가신 아버지는 외곽진 곳에 자그마한 땅을 붙이며 지내신다. 가끔 사고 후유증 때문에 날씨가 흐린 날은 몸이 시큰시큰 해오기도 하지만 열심히 운동도 하고 농사도 지으시며 평온하게 보내고 계신다.

※ 이 작품은 근로자를 위한 신문 뉴스워커에서 고용노동부 산하 근로복지공단의 제공으로 게제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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