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백년의 기업을 가다] 창업 50년 맞은 오뚜기, 동원, 매일유업…초심 잃지 않고 일류기업으로
[반백년의 기업을 가다] 창업 50년 맞은 오뚜기, 동원, 매일유업…초심 잃지 않고 일류기업으로
  • 염정민 기자
  • 승인 2019.08.27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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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소비자에게 친근한 기업 오뚜기, 동원 , 매일유업 반백년의 역사를 가졌다는 것을 아십니까. 세 기업의 매출 또한 이제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는 모양새입니다. 그래픽_황성환 뉴스워커 그래픽 1담당

[기획_뉴스워커] 2019년에 나란히 창업 50년을 맞이하는 오뚜기, 동원F&B, 매일유업 3개 기업의 2000년대 실적은 크게 성장한 것으로 나타났다.

◆ 오뚜기, 동원F&B, 매일유업 2000년대에 크게 성장

오뚜기는 2018년 기준 2조 2468억 원의 매출과 1517억 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는데 2000년에 기록한 6958억 원의 매출, 226억 원의 영업이익과 비교하면 각각 223%, 571% 성장한 것이다.

동원F&B 또한 2018년 기준 2조 8025억 원의 매출과 872억 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하여 2000년에 기록한 매출 736억 원, 영업이익 30억 원과 비교할 때 각각 3708%, 2807% 성장한 것으로 나타났다.

▲ 단위: 원, 출처: 금융감독원

매일유업은 2000년대에 기업 분리가 이뤄져 학술적인 면에서 2000년과 2018년을 단순 비교하는 것은 가치가 덜하다고 볼 수 있지만 기업의 발자취를 대강 더듬어 본다는 면에서는 가치가 있다고 볼 수 있다.

이에 따라 매일유업의 자료를 분석한 결과 2018년 기준 1조 3006억 원의 매출과 744억 원의 매출을 올려 2000년에 기록한 매출 6838억 원, 영업이익 744억 원에 비하여 각각 90%, 171% 성장한 것으로 나타났다.

1969년생 기업으로 동년생인 오뚜기, 동원F&B, 매일유업은 2000년대를 맞아 더욱 큰 기업으로 성장하기 위해 한층 더 도약하고 있다는 평가가 가능하다.

◆ 오뚜기, 진라면과 3분카레 등 친근한 식품기업으로 국민에게 다가와

오뚜기는 1969년 故 함태호 창업주가 풍림상사라는 사명을 내걸고 분말카레 제품을 판매하는 것을 시작으로 식품기업의 첫발을 내딛었으며, 1970년대 들어 사명을 오뚜기식품공업으로 개명한 후 스프, 토마토케첩, 마요네즈 등으로 판매 제품군을 확장했다.

 

풍림상사에서 오뚜기로 사명을 개명한 이유에 대해서는 유아용 장난감인 오뚝이의 절대로 쓰러지지 않는 성질을 차용했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오뚝이가 아이들에게 주는 친근한 이미지를 차용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지고 있다.

1980년대 성장과 발전기에 들어선 오뚜기는 1981년 유명한 ‘3분카레’를 중심으로 국내 즉석식품 분야에 진출했는데 1981년 당시에는 전자레인지 등으로 데우기만 해도 먹을 수 있는 즉석식품이 전무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카레, 짜장, 하이라이스로 이뤄지는 3분요리 제품군은 시장에서 혁명적으로 받아들여졌다.

또한 오뚜기는 1987년 청보식품을 인수함으로써 라면 생산기술을 습득할 수 있었는데 이 기술을 기반으로 현재 단일브랜드 라면 판매량 2위를 기록하는 베스트셀러 ‘진라면’을 1988년 출시하는 등 라면 분야에 대한 본격적인 진출도 시작했다.

1980년대의 오뚜기가 광범위한 식품분야에 대한 진출을 했다면 2000년대의 오뚜기는 핵가족화 되는 경향에 맞추어 ‘즉석미역국’ 등 기존에 판매되던 3분요리에 더해 즉석식품 제품군을 다양화하고 케첩 등의 소스를 고급화하는 등 소비자의 기호에 맞게끔 제품을 개발하는데 성공하여 회사의 규모를 확장시켰다.

이와 같이 소비자 수요를 만족시키는 오뚜기의 제품 개발은 해외에서도 맛과 기술력을 인정받을 수 있어 수출확대로도 이어졌다.

오뚜기는 2006년 11월 무역의날 행사에서 5천만불 탑을 수상했고 같은 해 3월 상공의날에는 석탑산업훈장도 수상할 수 있었으며, 최근인 2017년 11월에도 산업훈장을 2018년 10월에는 국가생산성대회 금탑산업훈장을 수상하는 등 오뚜기는 국내 대표적인 식품기업의 하나로써 자타의 인정을 받고 있다.

한편 오뚜기는 일자리 창출에 의한 사회기여 면에서도 2010년 12월에는 고용창출 100대 우수기업으로 선정되었으며 2012년 1월에도 고용창출 100대 우수기업으로 선정된 바 있을 정도로 그 가치가 작지 않다는 평가가 나온다.

창업 50년을 맞은 오뚜기는 앞으로도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최고의 맛을 향한 열정으로 신선한 식재료와 깨끗하고 우수한 시설에서 신뢰받을 수 있는 수준의 식품을 제조하여 국민들에게 제공한다면 국민들에게 한층 더 친근한 기업으로 다가갈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 동원, 참치만 있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1969년 동원산업은 한국 최초의 원양어선 ‘지남호’의 승무원이었던 김재철 창업주의 전문지식에 기반하여 수산업으로 그 첫발을 내딛었으며, 동원이라는 사명은 해양을 통해 동쪽으로 멀리 나아간다는 창업주의 철학이 담겨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김재철 창업주는 수산대를 졸업하고 원양어선 선원으로 일한 경험이 있어 참다랑어 등 수익성이 높은 어종을 선별할 수 있었고 1979년에는 국내 최초로 헬리콥터를 탑재한 원양어선을 도입하는 등 동원산업은 그의 전문성에 기대어 경영되는 측면이 많았다.

어선에 헬리콥터를 탑재하는 것은 헬리콥터의 빠른 기동성을 이용하여 어선에서 멀리 떨어진 장소에 있는 참다랑어 집단 등을 신속하게 탐지하기 위해서인데 당시 국내 수산업계에서는 다소 혁명적인 기술로 평가받을 정도였다.

한편 동원산업 초창기에는 일본을 주요 판매 시장으로 설정했으나 일본이 판매가격 결정권을 전적으로 행사하는 등의 여러 문제가 발생하여 1982년에 동원산업은 한국 국내에 참치통조림을 유통시키기 시작했다.

참치통조림 유통 초기에는 한국 소비자들의 구매력이 높지 않아 당시 1캔당 1천 원 정도로 고가였던 참치통조림 판매가 다소 고전을 했던 것도 사실이지만, 설날과 추석 등 명절을 중심으로 참치통조림 선물세트 판매가 호조를 보이기 시작했으며 한국 경제가 서서히 발전하여 많은 소비자들이 참치 통조림을 구매하기 시작하자 동원산업 또한 크게 성장할 수 있었다.

이를 바탕으로 동원산업은 1987년 냉동만두를 제조하는 동일냉동식품을 설립하는 등 수산업 이외의 분야에도 본격적으로 진출하기 시작했으며 1989년 3월에는 동원산업 주식이 한국 거래소에 정식 상장될 정도로 높은 성장세를 보였다.

한편 1990년대 IMF 시대에 진입하여 동원산업도 시대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지만 1995년 광주에 음료공장을 준공하고 1996년에 진천에 김치 및 육가공 공장을 준공하는 등 동원산업은 판매 제품군의 확대를 멈추지는 않았다.

2000년대에 들어서 동원산업은 2013년에 세네갈 공장을 준공하고 2014년에 중국 공장을 준공하는 등 적극적인 해외진출을 모색했으며 지속적인 사업 다각화로 인해 식품가공분야 계열사인 동원F&B 뿐만 아니라 포장재분야 계열사인 동원시스템즈도 2018년 기준 연간 매출이 1조 263억 원을 기록할 정도로 큰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즉 1969년 창업 초창기 김재철 창업주의 개인능력에 의존했던 동원산업은 2000년대 들어서 참치통조림 산업뿐만 아니라 음료, 육가공, 포장 분야까지 다소 광범위한 식품 관련 분야를 아우를 정도로 성장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 매일유업, 유가공업계의 강자

1969년 故김복용 창업주가 설립한 매일유업은 ‘한국낙농가공’이라는 사명으로 기업의 첫 발걸음을 내딛었다.

1972년 매일우유 생산을 시작했는데 이듬해인 1973년 업계 최초로 유제품의 부패를 막기 위해 멸균 처리된 테트라팩에 우유를 담아 판매하기도 했으며, 1974년에는 준공된 중부공장에서 생산된 조제분유인 매일분유를 판매하여 ‘매일’이라는 브랜드가치를 쌓아가기 시작했다.

한국이 한창 경제발전을 위해 노력하던 시기인 1970년대에 좋은 품질의 우유와 분유를 생산하여 시장에 공급한 공로로 1978년 김복용 창업주는 축산부문 산업훈장을 수여받게 된다.

한국낙농가공은 1980년에 이르러서 회사명을 ‘매일유업주식회사’로 개명했으며, 1981년에는 사우디를 포함한 5개국에 분유를 수출하는 등 해외에서도 그 기술력과 품질을 인정받게 되는데 1987년에는 분유 수출규모가 100만관에 달할 정도였다.

한편 매일유업의 1990년대는 기존 우유, 분유에 한정되던 제품분야를 요구르트, 초콜릿, 커피 등의 유가공제품으로 확대하는 시기로 평가받는다.

매일유업은 1996년 9월 ‘키세스 초콜릿 밀크’, ‘키세스 초콜릿 아몬드’ 등을 출시하여 초콜릿 관련 초기 사업을 시작했으며 1997년에는 ‘카페라떼’를 출시하여 커피 음료 사업에도 진출했는데 당시 일본 경제지 ‘닛케이’의 자매지에 히트상품으로 선정될 정도로 인기가 좋았다.

1980년대에 이미 독일의 ‘스트로만’사로부터 기술 협력을 제공받는 등 요구르트 관련 분야 진출을 모색했으나 1997년에 비피더스균을 특허등록하고 1999년 미국에 65ml 요구르트를 수출하는 등 1990년대에 본격적인 진출을 시도한 것으로 평가된다.

2000년대 들어서 매일유업은 기존 분유, 우유 제품의 품질을 한층 더 업그레이드한 프리미엄 전략을 채용하여 2002년 ‘앱솔루트명작’, 2003년 ‘매일우유ESL’을 연이어 출시하여 시장의 호평을 받은 바 있다.

이와 같은 호평을 발판으로 해외 판매도 급성장할 수 있었는데 매일유업은 2013년 무역의날에 국내 유업계 최초로 3천만불 수출탑을 수상했으며 2015년에도 5천만불 수출탑을 수상할 정도로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그 역량을 인정받았다.

한편 매일유업은 기업 성장 외에 사회적 기여에 있어서도 기여도를 인정받고 있는데 다문화 가정에 분유 및 육아를 지원하는 한편 진암 장학재단을 통해 장학금을 전달하는 등의 활동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같이 2019년으로 창업 50년을 맞이한 오뚜기, 동원, 매일유업이 창업주가 회사를 설립한 초심을 잃지 않고 꿋꿋이 이제까지 해왔던 대로 기업 발전과 사회기여를 계속해 나간다면 국내의 대표기업 뿐만 아니라 세계에서도 인정받는 일류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