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성환 뉴스워커 그래픽 1담당_경국술치 그래픽

[뉴스워커_김영욱 시사컬럼니스트] 1910년 8월 29일은 대한제국이 ‘통치권을 일본에 양여함’을 규정한 한일병합조약을 강제로 체결하고 이를 공포한날, 즉 ‘경술국치일(庚戌國恥)’이다.

우리나라 역사상 처음으로 국권을 상실한 치욕의 날인 것이다. 국권피탈(國權被奪)이라고도 한다.

한국민족백과대사전 등에 따르면 일본제국은 조선의 국권을 침탈한 자신들의 행위에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 ‘한일합방(韓日合邦)’, ‘한일합병(韓日合倂)’ 등의 용어를 썼다.

1910년 8월 22일, 대한제국과 일본 제국 사이에 합병조약(合倂條約)이 강제로 체결됐다. 대한제국의 내각 총리대신 이완용과 제3대 한국 통감인 데라우치 마사타케(寺內正毅)는 형식적인 회의를 거쳐 합병조약을 통과시켰다.

8월 29일 이 조약이 공포되면서 대한제국은 국권을 상실했다. 이로써 1905년 을사늑약(을사조약) 이후 실질적 통치권을 잃었던 대한제국은 일제에 편입됐고, 일제강점기가 시작됐다. 이 조약은 1945년 8월 15일 종결됐다.

8개조로 된 이 조약은 제1조에서 ‘한국 전부에 관한 일체의 통치권을 완전히 또 영구히’ 일제에게 넘길 것을 규정하고 있다.

이로써 한국은 조선왕조가 건국된 지 27대 519년 만에, 그리고 대한제국이 성립된 지 14년 만에 망국했다.

반만년 역사동안 되풀이된 그 숱한 외침(外侵)에도 나라가 망한 적은 없었다. 그 비극은 남북분단의 원인이 돼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이때부터 일제는 통감부를 폐지하고 총독부를 세워 한국 통치의 총본산으로 삼았고, 초대총독으로 데라우치를 임명했다.

그 동안에도 일제 자본가들은 통감부의 보호와 원조를 배경으로 한국에서의 경제적 지배를 확립, 금융·광업·임업·어업·운수·통신 등 산업의 모든 분야를 완전 독점했다.

경술국치일인 오늘 학교 및 기관에서는 우리 주권을 빼앗기 슬픔과 아픔을 기억하기 위해 태극기(조기)를 게양하고 있다.

109년이라는 세월이 흐른 지금, 일본은 경제전쟁을 일으켰고, 북한은 무력시위를 벌이고 있다. 미국과 중국 러시아 등 열강들은 ‘강 건너 불구경’하고 있다.

일본은 조선침략과 강제동원 등 과거사 반성 없이 경제보복을 벌였다.

우리가 강경하게 맞서는 것은 당연하다.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파기한 것은 당연하다.

청와대와 정부는 28일 한국을 겨냥한 화이트리스트(수출절차 간소화 우대국) 제외 조처를 이날부터 시행한 일본 정부에 강한 유감을 표시했다.

김현종 청와대 국가안보실 2차장은 이날 청와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그간 우리 정부가 대법원의 강제징용 판결과 관련해 일본이 취한 경제보복 조치를 철회하라고 지속적으로 요구했음에도 오늘 부로 우리를 백색국가에서 제외하는 조치를 시행했다”며 유감을 표했다.

우리 정부가 지소미아를 종료함으로써 수출규제 조처를 안보 문제와 연계시켰다는 일본 정부의 주장도 반박했다.

청와대는 또 “안보·수출규제 연계하고 한미일 관계 저해한 건 일본”이라고 했다. 외교부는 “공은 일본에 넘어갔다”며 태도변화 촉구하며 일본 대사 불러 항의했다.

일본은 사태를 더 악화시키지 않으면서 한일 관계 복원을 위한 대화에 성의 있게 임할 것을 거듭 촉구한다.

한편 유감스럽게도 일본 정부는 이날 0시를 기해 한국을 화이트리스트 국가인 에이(A) 그룹에서 비(B) 그룹으로 떨어뜨리는 내용의 수출무역관리령 개정안을 시행하기 시작했다.

두 나라 기업들 모두 커다란 불편과 애로를 겪게 돼 한국은 물론, 일본 사회에서도 우려가 나온다. <아사히신문>이 “양국의 민간경제가 상처를 입는 소모적인 상황이 됐다”며 두 나라 정상 간 회담을 촉구한 배경이다. 아베 정부는 경청해야 할 것이다.

과거 침략사를 반성하기는커녕 힘으로 자신의 잘못을 정당화하려는 아베 정부의 태도에 개탄을 금할 수 없다.

우린 지혜와 단결이 필요한 때다. 경술국치일을 결코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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