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개발사업이 일반인에게 알려져 있지 않던 1980년대에 동네를 재개발하고자 추진위원회에 가입을 한 것이 계기가 되어 오늘날까지 정비사업과의 인연을 이어오고 있다.
재개발관련법이 정비되지 않고 제도적인 뒷받침 또한 바랄 수 없던 혼란스럽고 암울했던 시기에 본의 아니게 시공사 부도 등 사고조합의 조합장직을 맡게 되어 당시 최연소 조합장으로 겪었던 필설로 다할 수 없는 고통이 어제의 일처럼 생생하다.
물론 난마처럼 얽혀있는 조합을 재정립하기 위하여 젊은 사람이 나서야 한다는 동네 어른들의 요청을 외면하기 어렵기도 하였지만 돌이켜보니 나름대로의 소명의식이 없었다면 아무리 간곡히 설득을 하여도 절대 조합장직을 수락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결국 마음만 바쁘다보니 불합리한 제도에 맞서서 삭발단식투쟁을 하는가 하면 분을 참지 못하여 손톱이 빠지도록 물어뜯어 혈서를 쓰는 불상사를 만들어 재개발역사에 이야깃거리를 남기었다. 하지만 사명감 하나로 제 몸 돌보지 않고 조합장직을 수행하던 날들의 상처가 아직도 아물지 않고 있다.
20여년의 긴 세월동안 만났던 수많은 조합장이 겪고 있는 고통이 늘 남의일 같지 않아 동병상련하며, 힘들어하는 조합의 대표자에 작은 힘이라도 보태고자 총회운영에 대한 기획과 사회자로 나서기를 이제 700회가 넘는다.

조합장과의 대화중에 가끔씩 묻는 말이 있다.
“본인의 의사로 조합장에 나섰나요?”
모든 사람들이 조합장은 누구나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조합장직에 연연하는 것으로 생각하지만 의외로 대답은 한결 같이 단호하다.
“내가 미쳤나? 당장이라도 그만두고 싶소!”
아무리 점잖은 조합장이라 하여도 이 대답만큼은 원색적이다.
감정이 실린 것이며 피폐해진 마음속의 내적갈등을 한숨을 쉬듯 토해내는 것이다.

정비사업은 낙후되어있는 도시기능을 회복하고 노후 되어 불량한 주거환경을 개선시켜 쾌적한 주거환경을 조성하는 공익사업이며, 정비사업의 대표인 조합장은 궁극적으로 조합원의 재산권을 재창출하기 위하여 헌신봉사하고 있음에도 모든 조합장들의 현실적인 고뇌가 예사롭지 않다.
분명한 것은 개인적인 영달을 위하여 나선 자리가 아니며 그 또한 본인이 원해서가 아닌 주변사람의 권유 등 타의에 의해서 선임되었음에도 몇몇 조합장이 비리에 연루되어 법적인 제재를 받았던 사례가 조합장에 대한 사회적인 시각을 곱게 하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비리의 내용을 살펴보면 이권을 취하기 위하여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외부인사로부터 비롯된 것으로 조합장 스스로 문제를 일으킨 경우는 찾기 어려우며 조합장에게 그만한 권한이 있는 것도 아니다.

정관규정에 정하고 있는바와 같이 조합장은 조합을 대표하고 조합의 사무를 총괄하며 총회와 대의원회의 의장이 된다.
따라서 조합장은 조합의 대소사를 결정하기 위한 공식기구의 의장으로 일반적인 의사규칙에 따라 의결권을 행사하지도 않고 결정된 사항을 집행하는 대표일 뿐이다.
그러나 조합의 대표이기 때문에 만약 집행결과에 대한 책임문제가 대두되었을 경우 혼자서 화살을 맞아야 하며 조합의 최고 의결기관인 총회에서 결정한 사항이 소송으로 비화되었을 경우에도 조합장은 피고소인이 된다.
다시 말하면 권한은 없고 책임만 지는 자리에서 외롭게 고통을 받는 것이 조합장이라 아니할 수 없다.      
 
모든 조합장들은 낙후되어있는 동네를 발전시키기 위하여 소명의식이 있었기에 나선 것이며 사업의 성공과 조합원의 권익을 위하여 헌신하고자 하는 사명감 없이는 버틸 수 없는 것이 조합장 직이다.
정비사업은 건강한 조합이 바탕이 되어야 하며 조합장이 소명의식과 사명감을 바탕으로 한 강한 의지로 사업을 추진할 때 조합원의 권익이 보장되며 성공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작금의 조합실정은 어떠한가.
내우외환이란 말 그대로 밖으로는 규제일변도의 정책이 입안되고 있고 행정편의적인 행태로 인하여 사업은 한없이 지연되기 일쑤이며 안으로는 생각을 달리하는 조합원이 무리를 지어 호시탐탐 조합을 무너뜨릴 궁리를 하고 있다.
따라서 조합장은 각종 규제에 대응하며 법과 행정당국의 견해차이로부터 비롯된 현실적인 문제를 해결하고자 동분서주하는 한편 사사건건 소송을 일삼는 세력화된 무리의 끈질긴 공격에 시달리게 된다.

현 경제여건으로 볼 때 정비사업이 활성화되기가 어렵다 판단된다.
추진위원회가 구성되고 발 빠른 설계업자가 제공한 조감도가 부동산사무소에 나붙을 때부터 주택가격이 요동을 치던 시절에야 모두들 넉넉한 마음이었지만 시중의 부동자금이 주택시장을 외면하고 있는 현 실정에서 조합원들은 선택의 폭이 좁을 수밖에 없다.
정비사업의 추진하여도 부동산경기 침체의 여파로 좋은 가격에 주택을 팔 수 있는 기회가 없다보니 조합원들은 사업완료 후 입주 시 분담금을 걱정하게 되며 임대수입에 의존하거나 상가에서 영업을 하는 조합원의 경우 정비사업을 근본적으로 반대하게 된다.
각 조합마다 반대파가 수시로 각종 민원과 소송을 제기하다 보니 조합을 공격하는 방법 또한 다양하며 정비사업이 무산되기를 바라는 불순세력들이 어렵지 않게 타 조합의 사례를 인용하여 체계적으로 조합을 압박하고 있다.

물론 일부이지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극성을 부리는 반대세력의 무분별한 행태가 나날이 도를 더하고 있는 실정이며, 상대적으로 조합장직에 대한 회의 또한 깊어만 간다.
사명감하나로 버티고 있는 조합장이 심기일전할 수 있는 힘의 원천은 조합원의 성원과 격려뿐이며, 조합원들은 만약 조합장이 의지를 잃게 될 경우 정비사업의 파탄으로 재산상 손실이 적지 않을 것을 간과해서는 아니 될 것이다.

열악한 사업여건 속에서 악전고투하며 답답한 속내를 털어놓지 못하고 고통스러워하는 조합장과 어려움을 함께 하며 조합의 현안문제를 슬기롭게 해결해 나갈 수 있는 지혜를 공유하고자 하는 “리웍스리포트”지 창간소식이 반갑기 그지없다.
조합장이 건강하여야 정비사업이 성공할 수 있다.
조합장 만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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