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_황성환 뉴스워커 그래픽 1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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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워커_김영욱 시사칼럼니스트] ‘제2차 세계대전’은 1939년 9월 1일 독일이 폴란드를 전격 침공한 것에 대해 영국과 프랑스가 대독 선전포고로 발발했다.

1945년 8월 15일 일본의 항복으로 종결됐지만 1941년 독일의 소련 공격과 일본의 진주만 공격을 계기로 발발한 태평양 전쟁 등의 과정을 거쳐 세계적 규모로 확대됐다.

전쟁은 독일과 이탈리아, 일본의 3국 조약을 근간으로 한 ‘추축국’(樞軸國·Axis Powers)진영과 영국, 프랑스, 미국, 소련, 중국 등을 중심으로 한 ‘연합국’(聯合國·Allied Powers)진영으로 각각 나눠져 ‘치고 박고’ 싸웠다.

이 전쟁으로 무려 5000만명에 이르는 병사와 민간인이 죽었다. 인류사상 가장 큰 전쟁으로 기록됐다.

이 전쟁이 시작되게 된 폴란드의 중부도시 비엘룬에서 1일 제2차 세계대전 발발 80주년 행사가 열렸다.

이날 기념식에선 1939년 9월 1일 새벽 4시 30분, 공습 사이렌이 울리며 독일 공군기들이 비엘룬을 폭격하는 영상이 상영됐다.

당시 독일의 기습 공격에 비엘룬은 도심의 4분의 3이 파괴됐고, 민간인 1200여 명이 숨졌다.  이후 5년 이상 지속된 전쟁으로 폴란드에선 유대인 300만명을 포함해 600만 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다.

전쟁을 일으킨 독일의 대통령과 총리가 피해국 폴란드를 찾아 다시 한 번 용서를 구했다.

행사에 참석한 프랑크발터 슈타인마이어 독일 대통령은 독일어와 폴란드어로 “독일 압제에 희생된 폴란드인에게 머리 숙여 용서를 구한다”고 사과하고 “절대 잊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안제이 두다 폴란드 대통령은 “비엘룬 공습은 민간인을 겨냥한 전쟁범죄였다”며 “목격자들이 모두 사라져도 2차 대전을 잊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또 “전 세계는 수천만 명이 희생된 이 끔찍한 대학살에서 교훈을 얻었다”고 평가했다.

두 나라 대통령은 당시 폭격 대상이었던 유대인 교회와 병원 등을 잇달아 방문해 희생자 추모비에 헌화했다.

슈타인마이어 대통령은 폴란드 수도 바르샤바에서 열린 본 행사에도 참석해 거듭 과거사를 반성했다. 이 행사에는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도 함께 참석했다.

그간 정치지도자들이 앞장서 과거사를 반성해온 독일은 앞으로도 폴란드와의 화해를 위해서 계속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제2차 세계대전 전범국이던 독일과 일본의 전후 대응 자세는 다시금 대조를 이뤘다.

스가 요시히데 일본 관방장관은 어제 “독도를 전쟁으로 되찾자”는 마루야마 호다카 중의원 의원의 지난달 31일 망언에 대해 “개별 의원 발언에 대해 코멘트를 삼가고 싶다”고 답했다.

쿠릴열도 전쟁탈취론 파문 때와는 달리 스가 장관의 답변을 통해 일본 정부가 마루야마의 발언에 면죄부를 줌으로써 독도 전쟁탈취론을 인정한 게 됐다.

일본 헌법 제9조는 ‘무력행사를 통한 국제분쟁 해결의 수단으로서 영원히 방기(放棄)한다’고 규정하고 있어 마루야마 발언은 위헌 소지가 있다.

그는 오히려 우리나라 국회의원의 독도 방문에 대해 “역사적 국제법으로 일본 고유의 영토로서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망언했다.

일본의 우익 성향 <산케이신문>도 최근 사설에서 “독도를 침략한 것은 한국”이라는 망언을 쏟아내며 일본 정부에 한국에 대한 추가 제재를 요구하기도 했다.

일본 정부가 ‘독도 전쟁 탈취’ 망언에 대해 용인한 것으로 앞으로 한·일 양국관계의 대립은 더욱 격화되지 않겠는가.

잘못된 과거사를 반성하는 독일 정치지도자들의 자세는 같은 전범국가인 일본과는 크게 다른 모습이다.

제2차 세계대전 발발 80주년을 맞아 과거사를 부정하는 아베 신조 정권은 ‘직시하고 사죄’하는 독일 태도에서 배울 것을 권한다.

먼저 아베는 ‘군국주의’ 망령에서 깨야 할 것이다. 그래야 독일의 ‘도덕적 배상’을 배우지 않겠는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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