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워커_기업 진단] 다음 세대로 경영권이 승계되는 과정에서 흔하게 일어나는 일이 ‘형제의 난’이다. 주력 계열사를 두고 서로 차지하려 하거나 지분 싸움이 일어나는 등 형제 간의 경영권 다툼은 우리나라 재벌 업계에서 상당히 일반적인 과정 중 하나이다.

그러나 삼양그룹의 이야기는 다르다. 1975년 창업주 김연수 회장이 물러나며 고 김상홍 회장 체제로 2세 경영이 시작됐다. 김상홍 회장이 별세하며 자녀가 아닌 동생 김상하 회장이 경영권을 물려 받았다. 그리고 김상하 회장은 다시 회장직을 본인의 자녀가 아닌 형의 장남 김윤 회장에 물려주며 잡음 없는 사촌 경영 체제로 이어졌다. 오너 일가가 이끄는 국내 기업에서는 보기 드문 일이기도 하다.

지난해 3월 고 김상홍 회장의 차남 김량 삼양홀딩스(이하 홀딩스) 부회장과 김상하 삼양그룹 회장의 장남 김원 홀딩스 부회장이 삼양사의 사내이사로 신규 선임되어 오너 3세가 직접 계열사 경영에 참여하게 됐다. 그리고 지난해인 2018년 말 김윤 홀딩스 회장의 장남이자 김연수 창업주의 증손주 김건호씨가 삼양사 부장에서 홀딩스 상무로 승진하며 오너 4세가 경영 활동에 본격적인 시동을 걸게 되었다. 95년 전통을 자랑하는 삼양그룹이 4대까지 이어온 형제, 사촌 경영체제로 잡음 없는 경영 이어갈 수 있을지 궁금하다.

◆ 오너 3세의 각 계열사로 분산, 전문경영인 입지 낮아질 가능성 높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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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4년 합자회사 삼수사로 설립된 삼양은 올해로 95세를 맞이하는 장수 기업이다. 현재 삼양홀딩스를 지배회사로 두고 그 아래로 상장사인 삼양사, 삼양패키징, 케이씨아이를 비롯해 비상장사 삼양바이오팜, 삼양데이타시스템, 삼양이노켐 등 총 18개의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다. 현재는 오너 3세가 삼양그룹을 지배하고 있으며 오너 4세인 김건호씨가 지난해 말 삼양사 부장에서 홀딩스 상무로 승진하며 본격적인 4세 경영 체제로 돌입하는 것이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삼양그룹이 특이한 것은 어느 한 곳에 지분이 집중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친인척 관계자 27명이 비교적 골고루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이른바 ‘사촌 경영’체제를 3대째 유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2011년 삼양홀딩스로부터 삼양사와 삼양바이오팜이 분할되어 지주체제로 전환하기 시작했으며 이때만 해도 고 김상홍 회장의 장남 김윤씨와 김상하 회장의 장남 김원씨 두 명만이 사내이사로 이름을 올린 상태였으며 지주회사를 중심으로 계열사에 영향력을 미치고 있었다. 그러던 지난해 3월 김량, 김원 홀딩스 부회장이 삼양사 대표이사직을 맡게 되었으며 김원 부회장의 동생 김정 부회장이 삼양패키징으로 자리를 옮겼다. 주력 계열사로 오너 3세의 경영권이 분산된 것이다. 주력사인 삼양사의 실적이 부진해 신속한 의사결정과 책임 경영 강화의 목적으로 해석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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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까지 매출액은 물론 영업이익과 당기순이익이 계속 상승하다 이듬해 실적이 저하되었다. 2017년 연결기준 영업이익 및 당기순이익은 각각 39.7%, 51.4%씩 감소했다.

현재 삼양사는 식품 사업과 화학 사업 두 부문으로 나뉘어져 있다. 두 사업부문에서 매출이 증가하며 외형성장에는 성공했으나 이익은 줄어들어 수익성이 악화되었다. 이번에 새로 대표이사직으로 선임된 김원, 김량 홀딩스 부회장이 어떻게 직무를 분담했는지 알려진 바는 없다. 그러나 김원 부회장은 연세대 이공대학 화학과 전공, 김량 부회장은 고려대 경제학과 전공으로 각자 그 역할을 다해 책임경영을 수행할 것으로 기대할 수 있다.

정리_뉴스워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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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두 부회장이 삼양사에 경영 참여를 한 후 영업실적이 소폭 개선되었으나 괄목한 성적을 낸 것은 아니다. 2018년연결기준 영업이익 및 당기순이익이 전년 대비 9.1%, 21.4% 상승하는데 그쳤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지난해 사내이사 신규선임으로 삼양그룹이 전통적으로 이어오던 전문경영인체제가 퇴색되는 것이 아니냐는 견제의 시각도 존재한다. 전문경영인의 역할이 줄어들며 결국 오너 일가의 의사 결정를 견제에 문제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 삼양바이오팜, 오너 일가의 지분 취득을 위한 고의적 과다배당인가

비상장사는 상장사에 비해 공시 의무가 상대적으로 낮은 편이거나 전반적으로 규제를 피하기가 용이한 면이 있어 오너일가의 사익 편취 창구로 이용되어 왔다. 삼양그룹의 비상장사인 삼양바이오팜 역시 오너일가의 저렴한 지분 취득을 위해 고의적인 과다배당을 실시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삼양바이오팜은 2011년 11월 1일은 분할기준일로 삼양홀딩스의 의료사업부문을 물적분할해 신규 설립되었으며 2013년 7월 1일을 합병기일로 동일 지배하에 있던 삼양제넥스바이오를 흡수합병했다. 최근 5년간 매출액과 영업이익은 꾸준히 증가해왔으나 당기순이익이 2017년 최고점을 찍은 후 2018년 전년 대비 46.1% 줄어들었다. 삼양바이오팜은 2017년 759억원의 일시적 과다배당을 실시했는데 이는 최근 5년 중 가장 큰 영업이익을 달성한 2018년 172억원의 배당금액보다 무려 44.1배에 달하는 수준이다. 2016년 대비 2017년 당기순이익이 2.2배 늘어났음에도 불구하고 배당금액의 증가속도가 지나치게 빠른 것이 아니냐고 해석할 수 있는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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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양바이오팜의 고배당은 결국 자본총액의 저하로 이어졌고 이는 곧 주당 장부가치을 하락시켰다. 2018년 주당 장부가치가 125.2원 수준으로 2017년 대비 28.3% 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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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회를 틈타 특수관계자 개인주주들이 30% 가량 저렴한 가격인 126억원에 삼양바이오팜의 지분을 취득해 6.29%의 지분을 보유하게 되었다. 장외거래 조차 되지 않는 삼양바이오팜의 지분을 취득하는 과정에서 비상장사라는 이유로 공시 의무조차 없어 오너일가의 사익 편취 수단으로 사용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보낼 수 밖에 없다. 삼양바이오팜은 2014년부터 2018년까지 매년 평균 12.3%의 매출 성장률과 135%의 영업이익 증가율을 기록하는 등 삼양그룹의 새로운 주력사로 떠오르고 있다. 이 같은 실적 성장세가 이어진다면 오너 일가가 취득한 6.29%의 지분 가치 역시 상승할 것으로 예상된다. 저렴하게 지분을 구입한 만큼 지분 가치 증가로 차익을 챙기게 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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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양그룹의 지배회사 홀딩스의 지분을 27명의 친인척이 대체로 골고루 보유하고 있는 사촌경영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또한 홀딩스의 경영권은 김윤 회장이 지니고 있으나 최대주주는 김원 부회장으로 오너십과 경영권 간 일치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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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상황만 고려해보면 경영권 다툼의 여지는 늘 존재한다. 특히 김윤 회장의 장남 김건호 상무가 홀딩스로 옮기며 본격적인 4세 경영체제가 시작된 만큼 4세 경영체제로 옮겨 가는 과정에서 지분 경쟁의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그러나 김윤 회장이 최근 투명경영을 위해 올해 3월 홀딩스 대표이사직은 사임하는 등 100년 가까이 되어 가는 기업으로서 모범을 보이기 위한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삼양그룹이 경영권 확보를 위한 형제간 지분 다툼이 일반적인 국내 오너 일가에 귀감이 될 수 있길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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