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엔젤투자협회 고영하 회장 인터뷰

▲ 고영하 회장의 손은 유난히 주름이 많아 보인다. 손의 삶의 괘적이라고 했던가. 그의 굴곡진 인생이 궁금해지기도 했다. 하지만 인터뷰 시작에서 과거의 얘기를 잘라 말하는 듯 했다. 과거를 들춰내기 싫었기 때문일까. 아니면 말하고자 하는 논점과 거리가 있기 때문일까.

 
‘고영하’의 손은 주름이 많다. 60이 훨씬 넘은 나이에 주름 없는 손이 어디 있으랴, 하지만 그의 길쭉한 손은 유난히 주름이 많아 보인다.
손은 살아온 삶을 말해준다고 했던가. 그의 삶은 어떠했을지 궁금해지기도 한다. 그는 현재 한국엔젤투자협회의 수장을 맡고 있다. 엔젤투자자는 요즘 인기가 하늘을 찌른다. 특히 스타트업(초기 창업자)에게 그렇다. 스타트업은 아이디어는 있지만 자금이 없다. 사업은 아이디어만으로 승부를 할 수 없다. 사업이 돌아가기 위해서는 자금은 필수적이다. 그 자금을 엔젤투자자에게서 수혈 받으려 하기 때문에 스타트업에게는 “엔젤=하늘”이라는 공식이 성립한다.

 
고영하 회장은 ‘고벤처포럼(GOVENTURE FORUM)’의 중심인물이다. 고벤처의 ‘고(GO)’는 ‘시작하자’라는 의미도 있지만, 고영하의 ‘고’이기도하다. 고 회장이 고벤처포럼을 시작하게 된 때는 약 8년 전의 일이다. 당시 고 회장은 운영하던 회사를 큰 기업에 팔았다. 그 때 나이 54세. 무언가 새롭게 시작하기에는 늦은 나이다. 그렇다고 친구들처럼 산에나 올라가기는 것은 싫었다. 재미가 없어 보였단다.

 
그러면 “재밌는 것은 무엇일까”를 찾아보니 “젊은사람들과 노는 것이 좋아 보였다”고 했다. 비록 나이는 들었지만 젊은 친구들과 어울리면 더 젊어지는 느낌이 들것 같았기 때문이란다. 고 회장은 “나에게는 사업에 대한 경험과 지혜가 있으니 창업을 하는 젊은 친구들에게 좋은 귀감이 될 수 있겠다 싶었다(요즘말로 멘토가 될 수 있겠다…기자 말). 그래서 처음에 일곱 명을 모아 한 달에 한번 저녁을 사주며 얘기하다보니 한명 두명 늘어나 지금은 매월 300여명이 참여하는 고벤처포럼이 된거다”라고 했다.

고벤처포럼은 비록 주름 많은 아저씨에게서 나온 ‘심심풀이’와도 같은 발상이었지만, 결국 이것을 통해 창업을 꿈꾸고, 거대한 공룡을 꿈꾸는 이 나라 젊은이들에게 희망을 주고, 아울러 잊혀질 것 같았던 늙다리 아저씨를 다시 경제사회의 중요한 인물로 만드는데 혁혁한 역할을 한 포럼이기도 해 보인다.

고 회장은 신문사들의 인터뷰 기사도 많고, 방송출연도 많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 사람. 어쩌면 이곳저곳에서 나타나 오히려 싸구려 티가 나기까지 하는 사람이다.
기자와의 인터뷰 불과 30분 전에도 어느 매체와의 인터뷰를 진행하고 사진을 찍고 갔다고 한다.

 
고 회장은 매체와이 인터뷰를 많이 하는 듯 보인다. “무슨 인터뷰를 이렇게 많이 하지~”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그와의 인터뷰를 진행하는 중 그 이유에 대해 이해할 듯 했다.

고 회장은 국내 스타트업에 대한 책임과 의무를 느끼고 있다. 국내 벤처업체는 올해 3만여 곳으로 양적으로 성장했음이 분명하다.

하지만 이들 업체는 상당수가 자금문제로 고통을 겪고 있다. 이들이 손을 벌일 수 있는 곳은 엔젤투자자여야 한다. 하지만 90%가까이가 기술보증기금 등의 정부보증에 얽매여 있다. 이 돈은 투자가 아니라 갚아야 할 돈 즉 융자다. 90%는 사업이 망한다고 한다. 결국 2만7천여 벤처기업은 망해나갈지 모른다.

망할 때 빚은 없어야 재기가 쉽다. 하지만 쉬운 정부보증은 결국 이들의 재도약을 발목 잡는다. 도약하기에도 바쁜 창업가의 인생을 빚 갚는데 낭비하는 것이다.

고 회장과의 인터뷰엔 이런 말은 없다. 기자 혼자가 느끼는 것인지도 모른다. 다만, 그토록 바쁜 시간에도 쪼개고 쪼개어 인터뷰 또는 방송출연을 자청하는 것은 바로 이런 스타트업의 고통을 이해하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스타트업을 한다는 것은 자신을 위해서지만 나라의 경제발전을 위해서이기도 하다. 이런 충심의 젊은이를 산업의 현장으로 빨리 가도록 도와주는 곳이 정부의 보증이지만, 실패할 때의 가혹한 현실은 정부와의 공동책임이 아닌 오롯이 혼자의 몫으로 돌아온다.

고 회장은 스타트업이 필연적으로 맞아야 할 현실을 조금이라도 완충하고자 하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 정부는 보증으로 끝내지만 엔젤은 갚지 않아도 될 투자와 함께 기업의 ‘멘토’라는 듬직한 역할도 아울러 병행한다. 성공의 확률이 더 높아지는 것이다.

 
협회에 따르면 국내 엔젤투자자는 500여명이라고 한다. 고 회장은 이 숫자를 1만으로 끌어올리려 한다. 불과 5~6년밖엔 남지 않았는데 20배를 올리려하는 것으로 불가능해 보인다.

한데 고 회장은 “가능하다”고 한다. 어떤 사업이든 성공사례가 있으면 팔로워들이 생긴다는 것이다. 그것도 빠르게. 3~4년 내 엔젤투자에서 성공사례가 나올 때가 됐다고 고 회장은 전했다.

※ 미국의 경우 엔젤투자자가 30만 명이라고 한다. 창업에 대한 안정적 시스템이 갖춰진 것으로 이곳에서의 창업은 융자가 아닌 투자를 받아서 이뤄진다. 한국도 이러한 시스템이 이뤄지려면 최소 1만 명이 엔젤은 있어야 한다고 고 회장은 보는 것이다.

 
고 회장과의 인터뷰에서 기자가 던진 첫 질문이었다. 앞서 언급했듯 벤처기업 3만 시대를 열었지만, 이는 양적인 성장이지 질적으로는 성장하지 못했는데도 여전히 젊은이들을 창업으로 몰아가야만 하는가가 질문의 의도였다.

고 회장은 두 가지 측면으로 질문에 답했다. 하나는 국가경제이며 다른 하나는 개인경제이다.
국가경제 측면에서 지난 50여년의 경제흐름을 이야기 했다. 모방경제부터 패스트 팔로우(빠른 추격자)까지, 한국경제는 이렇게 성장해 왔는데 지금은 중국이라는 거대국가에게 지금까지의 경제발전 패턴을 빼앗기고 있다는 거다.

▲ 고영하 회장의 업무용 책상은 어지럽다. 서류들로 뒤덮여 있으며, 바삐 움직이다보니 정리할 시간이 없어 보인다. 이 책상을 보고 누가 회장의 책상이라고 할까. 과장급 실무진의 책상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 고 회장은 그 만큼 많은 업무를 혼자서 처리하는 듯 보였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은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을 답습하게 될 우려가 매우 크다는 것이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서는 오픈이노베이션(Open Innovation, 개방형 혁신)이 자주 일어나야 하는데 대기업에서는 기대하기 힘든 구조라는 거다. 이 때문에 모토로라, 노키아, 캐논 등이 망해갔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했다.

개방형혁신을 잘 일으킬 수 있는 곳은 작은 기업이라고 했다. 특히 창업기업에서 잘 일어난다. 이들 기업은 창의력과 상상력 이외는 볼 것이 없는 기업으로 이들은 절박한 상황에서 집요하게 집중하다보면 혁신이 일어나는데 그 혁신(역량)을 대기업들이 M&A(기업인수합병)을 통해 제값을 주고 사들이게 된다. 대기업은 사들인 혁신을 전 세계에 걸쳐진 유통망과 마케팅역량을 통해 성장 동력으로 키워나가는 것이다. 이렇게 많은 창업가에 의해 개방형혁신이 일어나는 구조가 초기창업기업도 그리고 대기업도 함께 살아가는 바람직한 경제구조라고 했다.

※ 하지만 한국은 아직 그 단계까지 가지 못했다는데 아쉬움이 남는다. 고 회장에 따르면 미국의 GE나 구글은 한 해 동안 30~40여 개의 회사를 인수합병한다. 하지만 삼성전자는 작년에 3곳을 인수하는데 그쳤다. 삼성이니까 3곳이지 다른 대기업은 한 곳도 인수하지 않는 곳도 있다. 한국은 창업의 생태계가 다르다. 미국과 비교하기에는 아직 멀었다. 다만 ‘씨앗을 뿌리지 않으면 열매도 없다’ 그런 씨앗을 지금 고회장이 뿌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개인경제의 측면에서 고 회장은 인지하기 쉬운 예를 들었다. 지금 태어나는 아이는 수명이 120세까지다. 하지만 30년 동안 배우고 오래가야 겨우 30년 먹고산다. 나머지 60년은 먹고 살길이 막막해진다.

안전한 직장이라고 하는 공기업이나 대기업에 입사해야 20~30년 버틴다. 그 다음엔 무엇을 할 것인가. 어느 때보다 능동적으로 살아야 할 젊은 시절, 수동적인 행동만 하다가 나이 50세 넘어 밖으로 나오게 되는데 이때부턴 거친 삶의 현장에서 능동적인 인생을 살아야 한다. 평생의 한번은 창업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이 때 선택하는 것이 프랜차이즈인데 많이 무너져 내리는 곳도 이곳이다.

부모세대는 자신의 틀 안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인도하려한다. 그렇다보니 대기업이고 공무원만을 안정된 직장이라고 인정한다. 하지만 아이들 세대에 안전한 길(직장)이란 없다. 그래서 젊은이들에게 창업을 해보라고 권한다. 젊어서부터 인생을 능동적으로 사는 법(스스로 돈을 버는 법)을 터득하는 것이다. 지금의 한국은 단군 이래 최고의 창업조건을 갖추고 있다.

 
고 회장의 말대로 창업의 분위기는 달구어져 있으며, 많은 똑똑한 청년들이 대기업이 아닌 창업으로 길을 열고 있다. 하지만 창업을 하겠다고, 아이디어가 있다고 해서 기업을 꾸려나가기는 어렵지 않나하는 생각이 든다. 결국 누군가는 돈을 대야 하지만 쉽지 않다. 벤처기업 90% 이상이 정부 대출에 의존하는 것도 이런 연유다. 국내에도 벤처캐피탈(VC)이 있지만 이들은 초기 기업에게 투자하지 않는다. 이들이 돈을 대는 곳은 코스닥 상장 1~3년 전의 기업이다. 이미 매출이 몇 십억 또는 몇 백억씩 내는 기업이라는 얘기다. 창업기업과는 거리가 멀다.

고 회장은 이 때문에 엔젤투자가 있는 거라고 했다. 엔젤이 아주 초기 단계에서 투자를 하고 그 투자금이 새싹에 물이 되어 키워나가는 것이란다. 그러면 문득 엔젤은 언제 투자를 결정하는 가가 궁금했지만 이 질문은 이미 한 방송에서 한 바 있다. 고 회장은 방송에서 창업기업에게 투자를 결정하려면 최소 7~8개월은 알아가는 과정을 겪는다고 했다. 고 회장은 “부모도 자기 자식을 오랜 세월 알기 때문에 돈을 맡기고 하지 않는가. 말썽만 부리는 자식이라면 부모도 돈을 맡기지 않을 것이다. 투자자 또한 아이템만 보고 투자하지 않는다. 결국 사람에게 투자하는 것이다”라고 했다.

뉴스워커가 고 회장을 만나기 전 많은 인터뷰 질의들을 작성했다. 실제 초기 창업가들이 자금을 모으기 위해 어떤 행동들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부터 투자받은 이후의 모습까지 A4 두장에 걸쳐 빽빽한 질문을 만들었다. 하지만 고 회장이 그 동안 했던 매체와의 인터뷰나 방송사의 영상자료(유투브)를 보면서 질문 하나하나를 지워갔고 지우다보니 결국 남는 질문은 몇 안됐다. 이미 많은 질문을 고 회장은 받았고 답변해 왔던 것이다.

고영하 회장과의 인터뷰는 사진 촬영을 포함해 65분간 이뤄졌다. 고 회장은 인터뷰 내내 밝은 표정과 진지한 표정을 번갈아가며 기자를 대했고, 기자도 그 대답 한마디 한마디를 놓치지 않으려 노력했다. 그리고 그의 손이 움직이는 것과 눈이 바라보는 곳을 보았다.

그런 시선을 바라보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고 회장이 가려는 곳은 어디일까. 고 회장이라면 어디를 갈까.

▲ 고영하 한국엔젤투자협회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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