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공공관리 정비사업 공사표준계약서 보급

앞으로 서울의 재개발·재건축에선 조합의 전문성 부족을 이용해 시공사에게만 일방적으로 유리하게 체결돼 온 공사계약 관행이 사라져갈 것으로 기대해도 좋을 것 같다.

서울시는 ‘공공관리 정비사업 공사표준계약서’를 제정, 재개발·재건축 현장에 보급해 주민의 권익을 보호하고 공사 시공자에겐 합리적 이익을 보장하겠다고 13일(목) 밝혔다.

그동안 정비사업 계약 체결 시 조합은 계약 전반에 전문성이 부족한데다 시공자는 자금대여라는 무기를 갖고 있어 시공자가 우월한 위치에서 계약체결이 이뤄지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또 최근엔 경기침체로 시공자는 공사비 증액을 요구하고 조합원들은 분담금 증가로 계약해지를 추진하는 등 갈등이 심화되는 사례들이 발생하고 있다.

‘공사표준계약서’는 조합과 시공자의 표준적인 계약내용을 예시하는 가이드라인이자, 설계서, 내역서를 바탕으로 한 입찰결과의 계약문서로서 설계변경이나 계약금액 조정의 기준 역할을 하게 된다.

계약당사자와 이해관계자가 참고해 win-win 하는 공평하고 투명한 계약이 되도록 지원하며, 당사자 간 책임과 의무를 명확히 해 분쟁이 발생할 경우 해결이 쉽도록 했다.

즉, 그동안의 정비사업 공사계약이 시공자와 조합 간에 제각각의 내용으로 원칙과 기준 없이 이뤄졌다면 이제는 합리적인 표준안을 통해 치우침 없이 이뤄지기 때문에 조합에 불리한 계약관행을 타파할 수 있게 됐다.

‘공사표준계약서’의 주요 내용은 ▴산출내역서 근거로 한 계약 체결 의무화 ▴공사계약과 자금대여계약 구분 명확화 ▴기성률에 의한 공사대금 지급 ▴시공자에게서 조합으로 자금관리 권한 전환이다.

첫째, 종전엔 시공사가 제시하던 공사예정금액을 조합이 제시하도록 바꾸고, 그동안 시공자가 첨부하지 않았던 ‘공사비 산출내역서’를 계약 시 의무적으로 제출하도록 했다.

즉, 그동안은 시공자가 일방적으로 주도한 계약이 이뤄졌다면, 앞으로는 주민들도 ‘공사비 산출내역서’ 등의 객관적 정보를 바탕으로 총회에서 시공자를 선정, 계약을 맺게 된다.

또, 설계변경과 계약금액 조정 시엔 시공자가 ‘조정산출내역서’를 제시하도록 함으로써 시공자가 조합원에게 부당한 추가 분담금을 요구할 수 없도록 했다.

그동안은 구체적인 산출내역서 없이 공사계약이 이뤄져 시공자가 추가 분담금을 요구해도 주민들은 분담금 증가내역을 명확히 확인할 길이 없어 주민 간 갈등, 시공자와의 분쟁이 잦았다.

또, 공사설계 및 내역이 없는 사업초기 단계(조합설립 직후)의 가계약에서 제시한 사업비가 집행단계(관리처분 직전)의 본 계약에서 대폭 증가해 분담금이 늘어나는 것이 빈번했지만, 조합원들이 손을 쓸 길이 없었다.

둘째, 당초 공사비에 포함돼 있던 기본이주비 이자를 명확히 구분함으로써 설계변경에 따른 공사비 증액 요인이 생겨도 조합원들이 이자부분에 대한 증액 부담을 지지 않도록 개선했다.

셋째, 시공자가 기성률에 관계없이 분양대금 등 수익금이 생기면 공사비를 우선 지급했던 기존 관행을 타파해 공사대금을 감리자의 확인에 의해 기성률에 따라 지급하도록 했다.

넷째, 그동안 사실상 시공자가 소유하고 있던 자금관리권도 사업주체인 조합으로 전환했다. 이렇게 되면 조합원분담금이나 일반분양금 등 수익 예치로 인한 이자도 시공사에 귀속되지 않고 조합에 귀속되게 된다.

이 밖에도 공사대금을 현물(아파트)가 아닌 현금으로만 지급하도록 ‘공공관리 시공자 선정기준’도 개선하고, 지분제로 공사발주를 할 수 없도록 했다.

공사대금을 현금 지급은 현물로 지급해서 생기는 사업지연, 분양가 하락 등의 조합과 시공자 간의 갈등을 해소하기 위함이다.

또 지분제 공사발주 금지는 조합이 사업주체로서 공사비, 분양가 등을 결정하는 것이 도정법 및 공공관리제도의 취지이지만, 지분제는 이에 부합하지 않고 산출내역서 등이 불필요한 계약방식으로 시민들의 오해를 불러일으킬 소지가 있어 개선하는 것이다.

다만, 일반분양하는 아파트 등이 미 분양될 경우에는 당사자가 협의해 현물(아파트)로 지급할 수 있도록 하고, 조합이 스스로 공사입찰금액과 분양수입 등을 추정하고 주민에게 무상지분율을 제시해 입찰참여업체의 제안비교표를 작성하는 것은 허용된다.

‘공사표준계약서’는 표준계약서 제정 이후 입찰 공고하는 정비사업 부터 적용되며, 시는 공공관리 대상구역 중 시공자를 아직 선정하지 않은 399개 구역에 적용하고 이중에서도 조합이 설립돼 시공자를 선정할 수 있는 20개 구역에 우선 적용할 예정이다.

특히 올 연말 시공자 선정에 착수하는 고덕주공 2단지가 공공관리 ‘정비사업 공사표준계약서’를 적용, 조합이 예정공사비를 제시해 시공자 선정을 위한 입찰에 들어가는 최초의 시범사업이 될 전망이다. 서울시와 공공관리자(강동구청장)은 이를 적극 지원할 예정이다.

즉, 고덕주공 2단지는 지난해 7월 공공관리제도를 본격 시행한 이후 최초로 서울시 공공관리 시공자 선정기준에 따라 시공자를 선정하게 된다.

고덕주공 2단지는 4,103세대를 건립하는 대단위 재건축사업으로 10월말 사업시행인가를 받은 후 11월 말 시공자 선정을 위한 입찰에 착수할 예정이다.

공공관리 시공자 선정절차에 따라 순조롭게 진행될 경우 내년 3월까지 조합 총회에서 시공자를 선정하고 계약해 본격적으로 재건축이 시작될 전망이다.

김효수 서울시 주택본부장은 “서울시가 마련한 ‘정비사업 공사표준계약서’는 정비사업 과정에서 소외돼왔던 주민들을 주체화하고 부당한 피해를 최소화할 것으로 기대한다”며 “갈등과 쟁송으로 인한 거품을 걷어내 주민들에게 이익이 돌아가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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