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의 窓_한주희 기자] 그동안 ‘일감 몰아주기’가 대기업 재벌만의 문제로 여겨졌으나, 어느덧 중견기업으로까지 만연해지는 양상을 보이는 듯하다. 이들은 사회적 합의로 이루어 놓은 대가를 지불하지 않고, 기업을 상속받기 위한 탈법적인 수단으로 ‘일감 몰아주기’를 활용하고 있다.

이번 달만 아모레퍼시픽, SPC그룹, 호반건설, 미래에셋, 한화그룹, 효성그룹 등 공정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 또는 검찰의 조사를 받고 있거나, 제재절차가 시작된 기업들이 수두룩하다. 그동안 관련 규정상 ‘일감 몰아주기’ 대상이었던 대기업의 계열사들도 공정위 제재 대상에서 벗어나기 위해 각종 꼼수를 피우고 있다.

한편, 공정위는 총수 일가 등 특수관계인에 대한 편법·불법 지원을 막기 위해 2016년 제정된 ‘총수 일가 사익 편취 금지 규정 가이드라인’을 대체하는 새 지침을 행정예고 했다.

이에 지난 28일 한국경제연구원은 공정위가 행정예고 한 ‘특수관계인에 대한 부당한 이익제공행위 심사지침’(일명 일감 몰아주기 심사지침) 제정안에 대해 심사기준이 불명확하고, 상위법령보다 강한 규제를 담고 있어 수정이 필요하다는 내용의 정책건의서를 제출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도 심사지침의 일부 내용을 수정·삭제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은 경영계 의견을 공정위에 보냈다.

이러한 경영계의 요구에도 일면 참고해야 할 사항이 있다. 그러나 그동안 대기업집단의 ‘일감 몰아주기’가 재벌 총수 일가의 사익편취 수단으로 활용되어왔다는 사실은 외면 한 듯하다.

총수 일가는 규제의 사각지대를 이용해 교묘히 법망을 피해 내부거래를 하고 있다. 부당한 방식으로 경영권 승계에 이용하거나 상속세·증여세 탈루의 방편으로 쓰기도 한다. 이러한 사례는 대기업과 중견기업 가릴 것 없이 볼 수 있다.

총수 일가는 기업 자체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노력을 하기보다는, 특수관계인이라는 이점을 이용해 ‘땅 짚고 헤엄치는’ 쉬운 길을 좇고 있다. ‘일감 몰아주기’는 대기업의 국제 경쟁력을 낮추고, 중소기업의 성장을 저해하고 있다. 정당한 증세 제도를 왜곡하고, 가업을 물려받는 절세 방법으로 활용하고 있다.

최근 ‘일감 몰아주기’방식은 점점 다양해지고, 규제의 사각지대도 넓어지고 있다. 총수 일가가 차린 작은 회사에 재벌 계열사들이 집중적으로 일감을 몰아주어 그 기업을 성장시키고, 그렇게 성장한 자회사가 모회사와 합병하는 방식으로 기업의 경영권을 승계받는 방법은 이제 상투적으로 보일 정도이다.

이러한 현실을 외면한 경영계의 주장은 설득력이 부족해 보인다. 공정위의 ‘일감 몰아주기’에 대한 과도한 규제가 기업의 성장동력을 감소시킨다는 주장은, 기업 사주 일가가 탈법적인 방법으로 기업을 승계받는 데 방해가 되니 그 장애물을 걷어 달라고 당당히 요구하는 듯하다.

오히려 점점 더 다양한 방식으로 행해지는 ‘일감 몰아주기’ 행태를 엄격히 단속해야 한다. 규제 대상을 명확히 해서 사각지대를 줄여야 한다. 불법행위에 대한 억제력을 높이기 위해 공정위의 과징금도 크게 높일 필요가 있다. 또한, 공정위가 총수 일가가 받은 이익만큼의 적정한 과징금을 부과하고, 실효성 있는 조사를 하기 위해 관련 법령도 조속히 정비해야 한다.

공정거래 관련 규정들은 자본주의의 ‘효율성’과 민주질서의 ‘경쟁성’을 보장하기 위해 제정되었다. 독과점으로 인해 시장 내에서 가격의 자동조절기능이 상실되는 것을 막고, 시민의 실질적 자유와 평등이 침해되는 등의 병폐를 시정 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다. 지속 가능한 경제성장은 공정한 ‘경쟁 질서’ 속에서만 가능하다.

대한민국의 경제는 시장경제질서를 근간으로 한다. 사회적 합의로 이루어 놓은 적정한 규칙 안에서 기업들은 자유롭게 경쟁하고, 이에 따른 합당한 경제적 득실을 누릴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을 파괴하거나 왜곡시키는 행위에 대해서는 제재가 필요하다. ‘일감 몰아주기’로 대변되는 기업 총수 일가의 ‘부의 대물림’은 마땅히 사라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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