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정된 특경법 시행령, ‘취업제한’ 대상 기업 확대에 따라 기업 총수들 더욱 경각심 가져야

[한주희 기자의 쓴소리] 기업 총수들이 업무상 배임·횡령 등의 범죄를 저지르고 징역형의 선고유예 이상의 형이 확정되면, 이제 본인이 총수로 있는 기업에 일정 기간 근무할 수 없게 될 전망이다. 지난 11월 8일부터 이와 같은 내용으로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이하 특경법) 시행령’이 개정되어 시행되고 있다.

현행 특경법 및 시행령은 형법상 배임·횡령 등으로 취득한 이득액이 5억 원 이상인 특정 재산범죄에 대해 일반법보다 가중된 형벌을 부과하고 있다. 특히 시행령이 개정되기 전에는 횡령·배임죄 등 중한 경제범죄를 저질러 유죄판결을 받은 사람이, 기업에 재산상 손해를 끼치고도 다시 그 기업에 취업할 수 있었다. 이번 개정안은 이러한 불합리한 사례가 되풀이되지 않고, 경제사범에 대한 ‘취업제한’ 제도의 실효성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다.

이를 구체적으로 보면, 횡령·배임·공갈·사기 등의 재산범죄로 취득한 이득액이 5억 원 이상인 경우, 징역형의 선고유예만 확정되어도 일정 기간 해당 기업에 취업이 제한된다. 만약 징역형의 실형을 선고받는다면 집행이 종료되거나 집행을 받지 않기로 확정된 날부터 5년까지, 집행유예가 확정된 경우에는 집행유예 기간이 종료된 날로부터 2년간, 선고유예는 그 기간 만큼 취업을 할 수 없다.

기존에는 주로 공범이나 범죄행위로 재산상 이득을 얻는 ‘제3자’와 관련된 기업체에 대해서만 취업을 제한했다. 이 때문에 자신이 총수로 있던 회사로 다시 복귀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동안 포함되지 않았던 ‘유죄판결된 범죄행위로 재산상 손해를 입은 기업체’까지 적용을 받는다.

예를 들면, 최근 국정농단 사건으로 재판을 받는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이 만약 원심대로 징역 2년 6월에 집행유예 4년이 확정되면 어떻게 될까. 이재용 부회장은 ‘취업제한’ 규정의 대상이 되므로 집행유예 4년이 지난 후 2년, 확정판결 후 총 6년이 지나서야 다시 삼성전자에서 일할 수 있다. 단, 취업제한이 이뤄지더라도 법무부에 신청해 승인을 받으면 예외적으로 취업할 수 있다.

한편, 국내 보수성향 변호사단체인 ‘한반도 인권과 통일을 위한 변호사모임(이하 한변)’은 지난 11월 7일 이러한 특경법 시행령 개정안에 대해, 헌법위반이라며 폐기를 촉구했다. 한변 측은 특경법 시행령이 ‘이중처벌금지원칙’에 위반되고, ‘직업선택의 자유’를 침해하며, ‘과잉처벌금지원칙’에도 위반되어 이를 전면 개선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한국경영자총협회(이하 경총)도 개정 특경법 시행령에 대해 ‘이중처벌금지 원칙’과 ‘위임 입법의 한계위반’ 문제로 위헌 소지가 있으니, 이를 개선해야 한다는 의견을 지난 11월 8일 법무부에 제출했다. 지난 30여 년간 특경법 적용 기준인 범죄 이득액 ‘5억 원, 50억 원 이상’이라는 기준이 달라진 경제 규모를 반영하지 못하므로 대폭 상향 조정해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총수와 그 일가를 비롯한 CEO 등 임원들이 주주와 기업에 막대한 피해를 주는 범죄를 저지르고도 해당 기업에 다시 경영자로 복귀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사회적 공감대와 정면으로 배치된다.

자신이 재직하는 회사에 횡령 등의 범죄로 ‘5억 원’ 이상의 피해를 입혔다면, 이는 결코 적은 액수가 아니다. 재계와 일부 법조계가 이 기준을 높이자고 주장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수백억, 수천억의 수익을 창출하는 기업의 총수를 5억 정도의 손해를 입혔다고 처벌하는 것은 지나치다고 생각하기 때문일까. 그런 논리대로라면 기업의 직원이 횡령이나 배임을 저질렀을 때, 회사 측에 이바지해온 금전적 이익을 평가하여 징계 정도를 결정해야 할 것이다.

임원과 직원은 격이 다르니 다르게 적용되어야 한다고 주장할 수도 있겠다. 그렇다면, 때에 따라서는 기업의 존망을 결정할 수도 있는 기업의 고위 임원에 대한 죗값은 더욱 엄하게 다루는 것이 합당할 것이 아닐까. 일반 폭행죄보다 존속폭행을 더 무겁게 처벌하는 이유는 죄를 저지르는 사람의 신분에 따라 비난의 정도가 다르기 때문이다. 말단 직원이 저지르는 범죄와 고위 임원급 이상이 저지르는 범죄 중 어느 쪽을 더 무겁게 처벌하는 것이 합당할까.

회사에 재산적 피해를 준 직원은 회사로부터 해임될 뿐만 아니라 민·형사상 고소를 당할 수도 있다. 그러나 기업 총수는 어떠한가. 자신의 변호사 비용을 회사 자금으로 내게 하거나, 총수 개인회사에 회사 자금을 투입하기도 한다. 때로는 경영권 승계에 유리하도록 정부의 지원을 받고 싶어 회사 비용으로 ‘말’을 사서 뇌물로 주기도 한다. 이러한 범죄를 저지르고도 회사를 위해 일하다 벌어진 일이니,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다시 경영에 복귀한다. 지난날을 반성하고 있으니, 앞으로는 기업 활동에만 전념해 국가 경제에 더욱 이바지하겠다는 거창한 포부까지 밝힌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가. 총수 일가는 기업을 가문의 재산으로 여기는 듯하다. 또한, 범죄로 인해 기업에 손해를 입혀도 이는 경영상 발생할 수 있는 비용 정도로 보는 것 같다. 여론을 의식해 다소 반성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지만, 이는 잠깐일 뿐이다. 이로 인해 범죄를 저질러 발생한 피해는 결국 주주와 국민 몫으로 돌린다.

기업이 성공하기까지 창업주와 그 일가가 기울인 노력과 헌신을 폄훼하는 것은 옳지 않다. 하지만, 한 기업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창업주 일가의 능력만으로는 가능하지 않다.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기까지 임직원 모두의 노력과 국가적인 법률적·재정적 지원이 필요했다. 이것이 없었다면 지금과 같은 삼성, SK, 현대자동차 같은 대기업도 존재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동안 총수 일가가 경제범죄를 저지르고도 제대로 처벌받은 전력이 없다는 점을 고려했을 때, 시행령이 위헌적인 규정이라고 단정 지어서는 안 될 것이다. 개정 취지도 고려해야 할 것이다.

이제는 기업 총수들도 자신의 범죄로 인해 기업과 주주에게 끼친 손해에 대한 합당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 더는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서라든지, 그동안 경제발전에 많은 기여를 해왔다든지 하는 변명을 들어줄 수는 없다. 기업 총수가 범죄를 저지르고도 은근슬쩍 경영일선에 복귀하는 것을 내버려 둬서는 안 될 것이다. 이는 국내 대기업들이 글로벌 기업으로서 경쟁력을 높여 가기 위해서도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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