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주희 기자의 쓴소리] 최근 배임죄의 존폐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지는 것 같다. 일각에서는 배임죄의 구성요건이 불명확해서 기업인들의 경영활동을 위축시키고, 사정당국이 권력을 남용해 기업인들을 길들이기 위한 방편으로 쓰고 있다고 지적한다. 또 한편에서는 배임죄를 저지른 재벌총수에 대한 솜방망이 처벌을 비판하기도 한다. 이렇게 상반된 시각이 팽배한 가운데 배임죄는 정말 필요한 범죄인지, 배임죄의 남용을 막기 위한 방안은 무엇인지 생각해보자.

배임죄는 다른 사람의 사무를 처리하는 사람이 자신을 믿어준 사람의 신뢰를 배신하고, 자신이 수행해야 하는 의무에 위반하는 행위를 한 사람을 처벌하기 위한 범죄이다. 이때 자신이 재물이나 재산상의 이익을 얻거나, 제3자가 취득하게 해서 신뢰를 준 사람에게 손해를 입히면 성립한다(형법 제355조 2항 참조).

배임죄가 적용된 예를 들어보자. 부도 위기에 빠져 곧 파산이 예상되는 회사에 막대한 자금을 투자한다면 그 투자금을 회수할 가망이 별로 없을 것이다. 총수는 그런 사실을 알고도 그 회사에 투자를 감행한다면, 배임죄가 성립할 수 있다. 이때는 업무상배임죄가 되어 가중처벌 받게 될 것이다.

배임죄는 업무를 맡긴 사람이나 기업과 업무를 수행해야 하는 사람과의 신뢰를 깨뜨렸을 때 성립하는 범죄이다. 즉 막강한 영향력을 갖는 기업의 총수가 기업과 주주들의 신뢰를 깨뜨리면, 건전한 기업문화는 위축되고, 막대한 사회적 비용도 발생할 것이다. 재계 일부에서는 해외 사례를 들면서, 배임죄라는 죄목이 아예 없거나, 사문화되어간다고 주장한다. 사정당국이 권력을 남용하여 기업인들을 옥죄는 수단으로 배임죄를 적용한 억울한 피해 사례도 제시한다.

그러나 미국이나 유럽 같은 선진국에 비해 우리나라는 기업 총수가 저지른 재산 범죄에 대해 굉장히 관대한 문화를 갖고 있다. 총수가 저지른 횡령·배임 행위로 기업과 주주에게 큰 손해를 입히는 사례는 빈번하게 일어난다. 그러나 총수가 기업과 주주에게 제대로 손해를 보상하거나 경영에서 물러나는 사례는 찾기 힘들다. 이런 현실을 외면한 채 해외 사례를 언급하며, 배임죄 폐지를 주장하는 것은 기업과 주주들의 피해를 외면한 시각이다.

최근 국내에서도 배임죄 유무를 판단할 때 기업인의 경영판단을 존중하는 판례들이 많이 나오고 있다. ‘경영상 필요성’에 관한 인정 범위가 늘어나면, 배임의 고의도 그만큼 좁게 인정될 것이다. 수사기관이 배임죄를 적용할 때도 강제수사절차 시작에서부터 법원에 의해 엄격한 판단을 하면 된다. 수사권 남용 문제는 최근 제기되는 검·경 수사권 조정문제와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신설에 대한 문제로 연결하여 논의하면 될 것이다. 배임죄로 총수들이 억울한 일을 당할 수도 있다고 걱정할 게 아니라, 배임죄를 악용하는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제도적인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

배임죄로 인해 기업 총수들이 경영활동에 제약이 받거나, 부당하게 재판에 연루되는 일은 막아야 한다. 그러나 이것이 배임죄 폐지에 대한 근거가 되지 않는다. 배임죄 고의 인정 범위에 대한 명확한 판례를 확립해 가는 노력과 함께, 총수에 대한 솜방망이 처벌이라는 오명을 벗어나도록 적정한 양형기준도 마련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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