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_뉴스워커 진우현 그래픽2팀 기자

[뉴스워커_한주희 기자의 쓴소리] 삼성은 1938년 창립 이후 끊임없이 발전하여 대한민국의 대표적 글로벌 기업이 되었다. 우리는 세계 어디를 가도 삼성 로고를 쉽게 볼 수 있다. 대한민국을 세계에 알리는 우리나라 최고의 기업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삼성은 대한민국의 자부심을 심어주는 기업이다. 그러나 이러한 삼성의 성장에 가려진 어두운 면을 가리켜 ‘삼성공화국’이라는 표현이 있다. 삼성이 언론, 사법기관, 정치인까지 배후에서 관리하며 조종하고, 삼성의 총수 일가와 그 가신그룹을 비호한다고 의심하는 이들이 삼성의 영향력을 과장하며 빗대 만든 표현일 것이다.

대한민국이 ‘삼성공화국’으로 일컬어질 수 있었던 것은 삼성그룹과 관련된 총수 일가와 그 측근들은 어떠한 불법을 저질러도 언론이 옹호하고, 사정당국이 가볍게 처분하고 넘어가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그토록 견고해 보이기만 했던 ‘삼성공화국’도 이제 조금씩 허물어지고 있는 듯하다.

최근 ‘에버랜드·삼성전자서비스 노조와해’ 사건으로 삼성의 최고위 임원들을 포함해 총 26명이 유죄를 선고받았다. 이들 중 이 부회장의 최측근인 이상훈 삼성전자 이사회 의장과 강경훈 삼성전자 부사장 등 7명이 법정구속 되었다. 이외에 아직 수사가 미진하기는 하지만,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사기 사건의 증거인멸 혐의로 임직원 8명이 전원 유죄 판결을 받았다.

나와 관심이 같은 사람이 본 뉴스

이재용 부회장은 ‘박근혜 전 대통령 국정농단’ 사건으로 현재 파기환송심 진행 중이다. 이 부회장은 고 이병철 선대회장과 이건희 회장에 이어 3대째 범죄 혐의로 형사재판을 받았다. 하지만 여태껏 범죄 혐의로 법정 구속된 사람은 이 부회장이 유일하다. 그리고 이렇게 대규모로 삼성 임직원들이 구속되거나 재판을 받는 때도 없었다. 최근 미진했던 삼성바이오로직스 사건의 수사가 진척되면, 이 부회장은 기존의 재판 결과보다 훨씬 높은 형량을 받을 가능성도 있다.

대부분의 기업 관계자들 특히, 최고 경영자의 위치에 있는 기업인들은 자신의 잘못이든, 기업 관계자들의 잘못이든 어떠한 문제가 생겼을 때 즉각적으로 대응한다. 비판적인 여론을 생각해서 자의든 타의든 사과를 하면서 재발 방지 대책을 발표한다. 혹여 기업 이미지에 손상이 갈까 우려해서다. 그러나 삼성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이토록 많은 사람이 수사를 받고, 재판을 받아 구속되고, 정작 기업 총수마저도 횡령·배임이나 뇌물사건에 연루되어 있어도 전혀 부끄러움을 모르는 듯한 행동을 한다.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질책을 받고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 씨의 딸에게 고가의 말을 사주기도 했다. 지난번 ‘노조와해’ 재판에서, 자신의 최측근이 갖은 파렴치한 방법을 동원해 노조를 와해시켰던 범죄 혐의로 구속되는 일이 발생해도, 총수 명의로 사과 한마디 없다.

삼성그룹 수십 명의 임직원과 이 부회장 자신이 범죄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고, 많은 부분 사실로 드러나고 있는 상황에서도 총수는 입 한번 뻥긋 안 하고 있다. 우리는 빌 게이츠의 기부 소식이나 마크 저커버그의 결혼, 제프 베저스의 이혼 소식 따위를 거의 실시간으로 접할 수 있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기업인들의 행보는 많은 사람에게 관심을 끈다. 때로는 단순 가십으로 여겨질 때도 있고, 해당 기업의 주식 가치 판단이나 투자 여부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그러나 이 부회장에 대한 뉴스는 어떠한가. 대부분 재판 소식이다. 삼성바이오로직스 증거인멸 사건은 외신의 조롱을 받기도 하고, 이 부회장 재판 출석 장면은 거의 실시간으로 전파된다. 이 부회장은 가끔 신제품 발표회나 국제회의에 나타나 사진을 찍고 돌아간다.

기업의 주요 임원들이 재판을 받고 있고, 본인도 다시 구속될 위기에 처해있는 상황에서 임원인사를 결정하거나 내년 주요 사업계획에 집중할 수 있을까. 무엇보다도 국민이 자부심을 느끼고 자랑스러워하는 글로벌 기업 삼성의 이미지를 이토록 대놓고 훼손하는 사람이 기업 총수로 있으니, 이 부회장의 심정도 괴롭겠지만, 국민이 보기에도 민망하고 부끄럽기 짝이 없다.

삼성전자 브랜드 가치는 약 611억 달러(한화 약 71조 원)에 달한다고 글로벌 컨설팅 업체인 인터브랜드가 지난 11월에 발표했다. 순위로는 글로벌 100대 기업 중 6위를 차지했다. 이러한 삼성전자의 총수가 세계인들의 눈에 자신이 어떻게 비칠지 부끄러운 줄을 모른다. 애써 티를 내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줄은 모르겠으나, 언론에 비친 모습을 보면 형사 피고인처럼 보이지 않으려고 애써 당당한 모습을 보이려고 노력하는 것 같기도 하다.

지난 20일에는 특이한 언론 보도가 있었다. 이 부회장이 빨간색 아웃도어 점퍼를 입고 혼자 부산으로 떠나는 사진이 보도되었다. 마치 연예인들이 공항에서 취재진을 피해 가는 듯한 모습이다. 하지만, 이 부회장의 동선은 철저히 베일에 싸여 있으므로, 취재진이 어딘가에 진을 치고 있다가 사진을 찍기는 힘들다. 기자가 미리 알고 있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해당 언론의 논조는 이상훈 의장이 구속된 것에 대해 피로감이 쌓여 혼자 여행을 가는 것 같다고 보도했다. 이 부회장에 대한 동정심을 유발하고 싶었을까.

하지만, 우리가 한가하게 이 부회장의 나들이를 걱정해줄 때인가. 세계 경제 위기 속에서도 기업을 혁신하고 성장시키기 위해 갖은 애를 쓰고 있는 타 기업들의 행보에 비춰보면 안타까운 모습일 뿐이다. 국내 대기업 대부분은 연말 인사를 매듭짓고, 2020년을 준비하고 있다. 삼성은 아직도 국정농단 사건 당시 2016년에 갇혀 있는 듯하다. 이 부회장은 자신의 경영 승계를 위해 분식회계를 저지르고, ‘말’을 사다가 뇌물을 제공할 때도 자신이 형사처분을 받으리란 생각은 꿈에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국민은 기업 총수 때문에 삼성이 흔들리는 것을 보고 싶지 않다. 이 부회장이 아직 유죄가 확정되지 않았다고 옹호하는 견해를 가진 사람들도 많으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이 부회장은 이미 유무죄를 다투고 있지 않다. 어찌하든지 집행유예를 유지해서 인신구속만 피하길 바라고 있다. 집행유예가 확정되면 어차피 관련 법률상 삼성의 경영일선에 몇 년 동안 복귀할 수도 없다.

이재용 부회장은 삼성 자체가 아니다. 삼성도 이재용 부회장과 별개의 법인이다. 삼성에 포진해 있는 수없이 많은 엘리트 경영전문인들은 이 부회장의 들러리가 아니다. 2019년이 며칠 남지 않았다. 이제는 이 부회장 스스로 거취를 결정할 때로 보인다. 이 부회장이 구속되어 있던 기간 삼성전자의 주가는 연일 고공행진을 이어갔던 것을 뼈아프게 생각해야 한다. 더는 삼성의 발목을 잡지 말고, 삼성의 미래를 위해 용단을 내려야 한다.

자신이 구속될 위기 때문에 임원의 정기 인사도 무한정 미루고, 2020년 사업계획 수립을 위한 사장단 회의에도 참석하지 않는 이 부회장은 삼성에 부정적 요인이 너무 크다. 이제 자신이 저지른 범죄와 자신이 기업 총수로 있을 때 저질러진 임직원의 범죄에 대해 진정으로 반성하고, 삼성을 임직원들과 국민에게 돌려줘야 할 때인 것 같다. 국민은 삼성을 더 이상 부끄러워하고 싶지 않다. 2020년에는 부끄러움을 국민 몫으로만 돌리지 말고, 이 부회장 스스로 깨닫길 당부하고 싶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뉴스워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