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이 스스로 법을 지키겠다는 다짐으로 준법감시위원회를 구성해 운영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본지의 취재 결과 아직까지 위원들의 내정 외에는 구체적으로 정해진 사항이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그래픽_황성환 뉴스워커 그래픽1팀 기자>
삼성이 스스로 법을 지키겠다는 다짐으로 준법감시위원회를 구성해 운영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본지의 취재 결과 아직까지 위원들의 내정 외에는 구체적으로 정해진 사항이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그래픽_황성환 뉴스워커 그래픽1팀 기자>

[뉴스워커_이슈진단] 이재용 부회장 파기환송심 정준영 재판장이 요구한 준법감시방안에 따라 삼성그룹이 준법감시위원회 위원장으로 김지형 전 대법관을 내정했다. 그러나 이 부회장 재판을 앞두고 제대로 된 조직을 갖추지 않고 서둘러 내정 사실을 발표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이에 준법감시위원회 출범이 이 부회장이 집행유예를 받기 위한 일환으로 출범했다는 논란과 배경에 대해 2편에 걸쳐 짚어본다. <편집자 주>

①준법감시위, 위원 내정 외에 구체적으로 정해진 사항 없어

삼성그룹 준법감시위원회(이하 준법감시위) 위원장으로 내정된 것으로 알려진 김지형 전 대법관이 9일 자신이 대표변호사로 있는 법무법인 지평 사무실에서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준법감시위 출범 배경과 운영의 독립성에 대해 설명하는 자리였다. 하지만, 김 전 대법관의 설명과 달리 준법감시위의 독립성과 실효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시각이 많다.

◆이재용 부회장 다음 공판 전 긍정적 여론 위해 서둘러 발표했다는 비판 일어

김 전 대법관은 위원회의 구성부터 운영까지 자율성과 독립성이 보장된 위원회라는 점을 강조했다. 하지만, 김 전 대법관의 발표에 의하면 삼성의 준법 조사와 감시역할을 담당할 실무진 등이 구성되지 않았고, 위원회 사무소의 위치와 운영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이 없다.

삼성 관계자는 “9일 있은 김 전 대법관의 기자간담회는 삼성과 협의가 없었다”라며, “준법감시위 관련 어떠한 사항도 알고 있지 않고, 언론 보도를 보고 알게 되었다”라고 밝혔다. 또한, “준법감시위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지평 사무실로 문의하는 것이 빠를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 전 대법관은 준법감시위가 다음 달 중으로 출범한다고 발표했는데, 실무진과 예산에 대한 실행계획도 나오지 않은 상황에서 서둘러 준법감시위 출범을 발표한 것으로 보인다. 이 때문에 다음 주에 있을 이재용 부회장의 4차 공판을 염두에 두고, 긍정적 여론을 조성하기 위한 간담회였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파기환송심 재판부는 삼성그룹이 저지른 범죄도 아닌데, 삼성 측을 향해 ‘준법감시제도를 마련하라’는 요구를 했다. 횡령·배임 등의 범죄로 재판을 받는 피고인을 향해 장황한 훈계를 늘어놓으며, 기업인 이재용의 미래 비전을 묻기도 했다. 재판부는 이 부회장을 향해 당당하게 기업인으로서의 역할을 하라고 당부하기까지 했다. 또한, 피고인 이재용을 향해 앞으로 뇌물요구를 받았을 때 어떻게 대응할지도 고민하라는 주문도 했다.

이번 준법감시위 내정 기자간담회가 이러한 재판부의 요구에 성실히 준비하고 있다는 증거로 쓰일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이다.

법조계에서는 “이 부회장의 재판부는, 이번에는 용서해 줄 테니 앞으로 어떻게 할지 반성하라며 타이르는 듯한 인상을 받았다”라며, “김 전 대법관이 삼성과 어떤 협의도 없이 위원장 내정 사실을 밝히는 것은 사회적 관심도에 비해 발표 내용이 너무 부실했다”라고 지적했다.

◆준법감시위, 삼성그룹 계열사의 기존 감시기구 허수아비로 만들어

삼성 고위 임원들과 이 부회장이 형사재판을 받는 것이, 그동안 삼성 안에 감시·견제기구가 없었기 때문일까. 준법감시위가 생기면 삼성의 임원들과 이 부회장은 더 이상 범죄를 저지를 수 없는 것일까. 준법감시위가 앞으로 삼성 내 각종 범죄 관련 사항을 감시하고 견제하게 되면, 이전 이 부회장의 죗값은 사라지는 것인가. 이러한 의문에 준법감시위는 적합한 답을 하지 못한다.

또한, 이번에 김 전 대법관이 준법감시위의 독립성을 그토록 강조한 이유는 그동안 삼성전자와 계열사에 있는 기존의 감시기구를 신뢰하기 어렵다는 것을 방증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번 간담회 발표 내용으로는 준법감시위와 기존 이사회 및 감사기구 사이의 관계와 위상 정립이 분명하지 않다.

삼성그룹 관계자에 따르면, “9일 기자간담회에서 발표한 내용은 전적으로 김 전 대법관의 구상이며, 설립 독립성을 강조하다 보니 그룹 내에서는 아는 것이 없다”라며, “오직 계열사 사장단이 지원을 약속하고 협력해서 운영해 나가겠다는 방침만 정해졌다”라고 전했다.

김 전 대법관은 또한 준법감시위 활동의 실효성을 강조하기 위해 이 부회장을 직접 만나 확실한 약속을 받았다고 전했다. 그러나 그것뿐이다. 이사회 차원에서 의결하고, 회사 내규를 고치는 등의 절차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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