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뚜라미그룹이 1962년 신생보일러공업사로 창업한 이후 거듭된 성장을 거쳐, 드디어 작년 11월 지주사로 전환하며, 올해 그룹의 제2 도약기를 준비하고 있다. 이에 귀뚜라미그룹은 글로벌 종합 에너지 그룹으로 성장한다는 기치 아래 귀뚜라미보일러 대표로 최재범 전 경동나비엔 부회장을 선임했다. 업계에서는 경쟁사의 임원을 영입할 정도로 혁신적이며 파격적인 인사라는 평가가 나온다. 다만, 일각에서는 다른 분야도 아닌 동종업계 경쟁사의 최고 임원까지 필요하게 된 귀뚜라미그룹의 절박한 상황을 엿볼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 이에 귀뚜라미그룹의 제2 창업을 위해 그룹이 당면하고 있는 과제와 최재범 신임대표의 역할에 대해 3편에 걸쳐 짚어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그래픽_뉴스워커 황성환 그래픽1팀 기자
그래픽_뉴스워커 황성환 그래픽1팀 기자

귀뚜라미그룹의 창업자는 최진민 명예회장이다. 최 명예회장은 경영일선에서 물러나 전문경영인 체재를 유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방침에 따라 최재범 대표가 선임된 것이다. 그러나 기업 경영에는 관여하지 않는다고 알려진 최 회장이 여전히 귀뚜라미그룹에 남아 있는 자신의 영향력을 활용해 귀뚜라미가 출현한 특허 및 산업재산권을 다량 보유하며 막대한 이익을 취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귀뚜라미가 개발한 기술특허에 대해 최 회장 일가가 독식하는 구조에서, 최 대표가 회장 일가가 아닌 귀뚜라미그룹의 특허권 보유를 늘려갈 수 있을지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이는 귀뚜라미의 실적과 잠재성장력과는 관련이 있는 사안이다. 그러나 경동나비엔에서 부회장을 지내고 은퇴한 최 대표를 귀뚜라미보일러 사장으로 선임하는데 최 회장의 의중이 반영된 것이라는 업계의 전언에 의하면 이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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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진민 회장 일가의 비정상적인 특허권 보유... 기업 성장 가로막고, 배임 소지도 있어

업계에 따르면 귀뚜라미보일러의 특허 및 실용신안은 모두 560여 개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정작 귀뚜라미보일러 명의로 보유한 실용특허는 20여 개 수준에 그친다. 나머지 500여 개는 최 회장과 그 가족 명의로 등록돼 있다는 것이다.

다른 경쟁사인 경동나비엔이 150여 개, 린나이코리아가 180여 개를 회사 차원에서 보유하고 있는 것과는 큰 차이가 난다. 법인이 특허를 보유하지 못하면 특허사용료(로열티)를 내야 하는 비용이 발생한다. 경동나비엔과 린나이코리아는 자체 연구소를 통해 개발한 기술을 법인명으로 출원한다. 그러므로 따로 별도 계약이나 특허사용료를 지급할 필요가 없다.

이러한 구조에서는 귀뚜라미보일러의 영업이익률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귀뚜라미의 영업실적에 따라 최 회장의 급여 및 상여금이 책정될 텐데, 이와 상관없이 매년 막대한 특허사용료라는 명목으로 최 회장의 연봉과 상관없이 비용이 지급되는 것이다.

특허사용료는 광고료, 제품개발비, 마케팅비, 인건비 등과 함께 제품의 원가를 결정하는 비용에 포함되게 된다. 특허권은 귀뚜라미에서 투입한 많은 연구진의 기술력, 자본력이 결합 되어 산출된 결과물이다. 하지만, 현재 귀뚜라미의 시스템 내에서는 이를 최진민 회장 개인과 사주 일가가 독식하게 되는 결과가 발생한다.

만약 귀뚜라미에서 개발한 대규모의 특허 및 산업재산권을 최 회장 자신과 가족 명의로 등록한 것이, 최 회장이 회사에 미치는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한 결과라면, 도의적인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기술 개발이 이루어지고 특허권이 등록되기까지 회사는 막대한 투자를 한다. 그러나 이에 대한 권한과 기여도가 미미한 회장과 가족이 회사에 대한 지배력을 이용해 특허권을 보유하고, 매년 막대한 액수의 특허사용료라는 비용을 발생시킨다면, 배임의 소지도 있다는 것이 업계의 분석이다. 철학과를 전공한 최성환 전무도 이미 20세부터 보일러, 에어컨 등에 다수의 실용특허를 등록한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에서는 “최근 보일러 기술은 전자공학, 기계공학, 연소공학, 재료공학 등 여러 분야의 전문가가 협업을 통해 개발하는데, 오너 일가가 기여도에 상관없이 특허권을 가져가게 되면, 기업으로서는 불필요한 비용이 발생하게 되고, 사주 일가는 과도한 이익을 취하게 되는 구조가 된다”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귀뚜라미는 현 체제를 바꿀 움직임이 전혀 없어 보인다. 이와 관련 귀뚜라미 관계자는 “정상적인 과정에 의해 특허권을 신청해서 최 회장이 보유하고 있는 것”이라며, “일각에서 제기되는 특허권 빼가기는 사실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나노켐·귀뚜라미홈시스, 편법적 일감 몰아주기 의혹... 최 회장 간섭 극복하고 실질적 전문경영 가능할까?

최진민 회장은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 명예직만 보유한 채 각종 사회복지 사업에만 전념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사주 일가의 가족회사로 보이는 일부 계열사에 편법으로 일감을 몰아주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 겉으로는 전문경영인을 내세우고, 뒤에서는 가족회사 몸집 키우기에만 집중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있다.

귀뚜라미그룹은 귀뚜라미보일러를 비롯해 범양냉방, 신성엔지니어링, 나노켐, 센추리, 귀뚜라미냉동기계 등 18개 계열사가 있다. 이중 ‘일감 몰아주기’ 의혹을 받는 계열사는 나노켐과 귀뚜라미홈시스다.

나노켐은 1991년에 설립된 보일러 관련 부품 회사다. 현재 기준으로 나노켐은 귀뚜라미보일러가 52.81%, 귀뚜라미문화재단이 23.35%, 최진민 회장 외 3인이 23.84%의 지분을 보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나노켐의 경영진은 최 회장과 부인인 김미혜 씨가 공동 대표이사로 있으며, 최 회장의 장남인 최성환 전무가 사내이사로 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나노켐은 내부거래를 통해 2018년 513억 원의 매출 중 99.81%에 달하는 512억 원의 매출을 달성했다. 2016년과 2017년에도 내부거래율이 각각 95.97%, 99.57%에 이르렀다.

귀뚜라미홈시스도 매출 대부분을 귀뚜라미와의 거래를 통해 올리고 있다. 귀뚜라미홈시스는 2010년 감사보고서 이후 주주 구성을 공개하지 않지만, 당시 기준으로 귀뚜라미 16.70%, 귀뚜라미문화재단 21.34%, 최진민 외 2인이 61.96%의 지분을 갖고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2018년 매출액 3647만 원 중 33.62% 규모인 1226만 원을 내부거래를 통해 벌어들였다. 2016년과 2017년에는 내부거래율이 각각 87.50%, 74.51%에 이르렀다.

귀뚜라미그룹이 나노켐과 귀뚜라미홈시스에 일감을 몰아주는 것이 현재까지는 관련 법률상 불법적인 사항이 없어 보인다. 다만, 지주사 전환에 나노켐이 이용될 경우 편법 승계 논란이 나올 수 있다. 나노켐의 확인되지 않은 지분 47.2% 중 전부 혹은 일부를 아들 최성환 전무나 다른 자녀들이 소유하고 있다면, 자녀 회사에 일감을 몰아주는 방식으로 증여가 이루어지고 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증여세 탈루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법조계에서는 “가족회사에 그룹 계열사들이 일감을 몰아준 뒤 기업을 성장시켜 합병하는 방식으로 경영 승계가 이루어 지면, 공정거래법상 일감 몰아주기 제재 대상이 안 될지라도 상속 및 증여세 관련 법률상 증여세 탈루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업계 관계자는 “최재범 대표가 경동나비엔의 성공 사례를 귀뚜라미에 적용하고 싶겠지만, 사주의 특허사용료나 일감 몰아주기 논란을 극복하지 못하면, 성공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분석했다.

귀뚜라미그룹 관계자는 “최 회장 일가의 일감 몰아주기 의혹은 관련 법상 문제가 없다”라고 해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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